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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386’ 집권 전에 유학 다녀왔으면 정치 달라졌다

중앙선데이 2018.08.18 01:00 597호 27면 지면보기
[배명복의 사람속으로]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함재봉 원장은 ’좌나 우나 너무 극단으로 가 있는 게 우리 정치의 문제“라며 ’자유민주주의는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함재봉 원장은 ’좌나 우나 너무 극단으로 가 있는 게 우리 정치의 문제“라며 ’자유민주주의는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영어 잘하는 한국 사람은 많다. 하지만 수준 높은 영어를 잘하는 건 다른 얘기다. 내 기억 속의 함재봉(59) 아산정책연구원장은 최고급 영어를 원어민보다 잘 구사하는 드문 한국인 중 한 명이다. 그렇다 해도 단지 영어 때문이라면 그를 따로 만날 이유는 없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까닭은 따로 있다. 인생의 거의 절반을 미국에서 생활했음에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그만큼 고민하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책 '한국사람 만들기 1.

책 '한국사람 만들기 1.

그는 거의 30년 전부터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학문적 탐구에 매달려 왔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1992년 연세대(정치외교학) 교수가 됐을 때부터 특강 형식으로 ‘한국 사람론(論)’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2년간 미 서던캘리포니아대(USC) 한국학연구소장을 맡기도 했다. 2010년 아산정책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그의 한국 사람 특강은 연구원 산하 청년 사숙(私塾)인 아산서원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오랜 연구와 강의 결과가 지난해 가을 책으로 엮여 나왔다. 1, 2권을 합해 거의 1000쪽 분량의 『한국 사람 만들기』(사진)다.
 
함 원장은 83년 미얀마 아웅산테러 사건으로 순직한 함병춘 박사의 큰아들이다. 당시 함 박사는 전두환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함 원장은 부친이 하버드대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58년 보스턴에서 태어나 부모 품에 안겨 한국 땅을 밟았다. 부친이 66년 예일대 연구교수로 가면서 미국에서 초등학교 3, 4학년을 보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과 고민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고 한다. 73년 부친이 주미대사로 부임하면서 그는 고교와 대학, 대학원(석·박사) 과정을 미국에서 마쳤다. 함 원장 개인에 관한 가벼운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다섯 가지 틀로 한국인 정체성 연구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할 것 같다.
“용도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아이들 야단칠 때는 한국어가 편하다.”
 
미 중북부 사립명문인 칼튼대를 나왔다. 본인의 선택이었나.
“부모님이 결정했다. 내 성격에는 종합대학보다 그런 작은 대학이 낫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즉 인문학 중심의 전인적 교양 교육에 치중하는 학교였다. 그 혜택을 지금도 보는 것 같다.”
 
학부를 마치고 바로 대만으로 갔다. 어떻게 된 건가.
“그 역시 아버님 판단이었다. 앞으로는 중국이 중요해질 거라며 중국어를 배우라고 하셨다. 중국과 수교하기 훨씬 전이었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에서 대만 국립사범대에 들어갔다.”
 
부친은 어떤 분이셨나.
“51세에 돌아가셨는데, 그 연세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하셨나 싶다. 내가 그 나이 때는 이룬 것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평생 술을 한 모금도 안 드셨다. 시간 관리를 아주 잘하셨다. 바쁜 중에도 저녁 식사는 꼭 집에서 가족과 함께했다.”
 
우리 역사에서 ‘한국 사람’이란 말은 1897년 12월 2일 자 ‘독립신문’에 처음 등장한다. 대한제국이 선포된 직후였다. 하지만 일반적 호칭은 ‘조선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이란 용어가 보편화하기 시작한 것은 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다. 조선 사람에서 한국 사람으로 변했지만, 그 정체성은 여전히 모호하다. 어디까지가 한국 사람인지도 불분명하다. 함 원장이 말하는 한국 사람은 남한에 사는 한국 사람만 가리키지 않는다. 북한과 해외에 살고 있는 ‘코리안(Korean)’도 다 포괄한다.
 
함 원장은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담론의 틀(terms of discourse)’로 친중(親中)위정척사(衛正斥邪)파, 친일(親日)개화파, 친미(親美)기독교파, 친소(親蘇)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 등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100여 년 전 외세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고, 새로운 이념을 가진 새 나라를 세워보려는 치열한 문제의식과 지난한 노력이 이 다섯 가지 유파(流派)를 중심으로 전개됐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인의 정체성에는 이 다섯 가지 성향이 혼재돼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들 유파의 역사적, 정치적, 국제정치적, 이념적 배경과 맥락을 입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조선 사람이 한국 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전개한 다섯 갈래 분투에 대한 심층탐구 결과가 전 5권으로 완간될 『한국 사람 만들기』의 각 권을 구성하게 된다. 제1권 ‘친중위정척사파’와 제2권 ‘친일개화파’가 출간됐고, 이르면 연내 제3권 ‘친미기독교파’가 나올 예정이다. 흡인력 있는 내러티브와 풍부하고 진기한 고증이 매력이다.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너무 모른다는 문제의식이 제일 컸던 것 같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배운 한국 근대사에 팩트는 많이 나열돼 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란이 일어난 날짜도 있고, 주요 인물도 있지만 어떤 맥락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 왜 그렇게 전개됐는지 도대체 꿰어맞춰지지가 않았다. 개별 사건에 대한 아전인수식 설명만 있을 뿐이다. 너무 답답했다.”
 
다섯 개의 틀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진 않을 것이다. 예컨대 문화인류학 적으로 접근하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다만 정치학자 입장에서 조선 사람이 한국 사람이 되는 과정과 배경을 설명하는 틀로서는 크게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한국인의 정체성이 다섯 가지 중 어느 하나로 수렴되고 있다고 보나.
“전혀 아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여러 가지가 다 섞여 있다. 어떤 때 보면 굉장히 개방적인 것 같다가도 어떤 때 보면 지극히 폐쇄적이다.”
 
 
북한은 혈통 중심 인종적 민족주의
 
함 원장 자신은 어떤가. 아무래도 친미기독교파일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다. 친중위정척사파적 성향도 굉장히 강하다. 아버님도 그랬다. 그래서 나 보고 중국에 가서 중국어 공부하라고 하셨던 것 아니겠나.”
 
한국의 진보 정부는 어떤가.
“어느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사회정책에서는 미국이나 영국의 진보주의자들처럼 개방적인 것 같다. 하지만 대외정책에서는 폐쇄적 성격이 굉장히 강하다. 어느 나라나 우리 것을 지키자는 사람이 있고, 외국 걸 배우자는 사람이 있다. 그 두 파가 어떻게 대립하고 화해하느냐가 국운을 좌우한다. 조선에 위정척사파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존왕양이(尊王攘夷)파가 있었다. 똑같은 쇄국파였지만 일본의 존왕양이파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외국 것을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닫고 문명개화로 돌아섰다. 일본에서는 쇄국파가 개화파로 변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쇄국파와 개화파가 싸우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집권한 ‘386(80년대 운동권 세력)’이 정치에 참여하기 전에 유학부터 다녀왔더라면 우리나라 정치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김정은의 북한을 친소공산주의의 틀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 아닌가.
“그렇다. 북한은 단군릉을 조성해 성역화하면서 완전히 혈통 중심의 인종적 민족주의로 갔다. 북한은 남한의 다문화주의에 대해 잡탕화, 미국화 놀음이라고 욕하고 있다.”
 
통일 이후 북한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란 호칭을 수용할까.
“남한 체제로 수렴하는 통일이 불가피하다고 보면 결국 그 호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함 원장의 전공은 정치사상과 철학이다. 한국의 정치 현실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보수의 위기는 일시적 현상인가, 근 본적 문제인가.
“근본적 문제라고 본다. 64년 배리 골드워터가 린든 존슨에게 참패하면서 미 공화당은 ‘강한 개인주의(robust individualism)’로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경제는 물론이고, 심지어 교육까지도 국가의 개입에 반대하는 강력한 개인주의를 통해 보수를 완전히 재구성했다. 이를 통해 집권한 사람이 로널드 레이건이다. 젊은 층을 잡으려면 한국 보수도 강한 개인주의로 가는 수밖에 없다.”
 
공동체 정서가 강한 우리 국민성과 잘 안 맞을 것 같은데.
“물론 그런 면이 있다. 기독교적 개인주의와 달리 유교적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더라도 개인주의를 앞세우지 않고서는 젊은 세대를 끌어들일 수 없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택할 우리나라 젊은이는 거의 없다고 본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나.
“좌나 우나 너무 극단으로 가 있는 게 문제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은 인식론적 회의주의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민주주의는 작동한다. 그런데 우리는 주자성리학부터 친중위정척사파, 대형교회 기독교까지 전부 근본주의다. 미국의 보수와 진보는 중간으로 상당히 수렴해 있다. 가끔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이 나와 이상한 극단으로 끌고 가지만 결국은 중간으로 회귀한다.”
 
 
유럽처럼 젊은 감각 사람들 나와야
 
우리 정치에 희망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서 희망을 본다. 그들은 확실히 다르다. 굉장히 개방적이다.”
 
‘386’부터 빨리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그것이 내 책에 숨어 있는 메시지 중 하나다. 일본 ‘메이지(明治) 유신’의 주축은 20~30대였다. 미국 건국 때도 그랬다. 나이든 세대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으면 나라가 제대로 안 돌아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세대교체가 안 되면 한국 정치 발전이 어렵다는 뜻인가.
“어렵다고 본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은 젊은 사람들 흉내라도 낼 줄 안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한국당의 홍준표 전 대표에 관해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철학과 정책을 떠나 스타일이 그냥 싫다는 거다. 유럽처럼 젊은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는 수밖에 없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bae.myungb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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