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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옆 전파사·연탄가게 … 70년대로 떠나는 시간여행

중앙일보 2018.08.17 00:33 종합 18면 지면보기
전남 보성에는 영화에나 나올법한 간이역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주민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인 무궁화호 열차가 오고 가는 득량역이다. 이곳에 도착하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기차역과 인근 거리가 1970년대처럼 꾸며져 있다. 보성에 왔다면 반드시 들러볼 만한 곳이다.
 

전남 보성 득량마을 가보니
곳곳 페인트칠 벗겨진 낡은 건물에
풍금·개표기 등 추억의 물건 전시
역전이발관·행운다방은 아직 성업

득량역은 화려하진 않지만,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낡은 풍금이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실에서 볼 수 있던 추억의 물품이다. 역사(驛舍) 앞마당에는 작은 텃밭이 깔끔하게 조성돼 있다.
 
기차역과 주변 거리를 1970년대처럼 꾸민 득량역. [프리랜서 장정필]

기차역과 주변 거리를 1970년대처럼 꾸민 득량역. [프리랜서 장정필]

득량역은 ‘작은 철도박물관’이다. 역에 들어서면 이름도 생소한 통표폐색기(열차의 신호장치)라는 장치가 전시돼 있다. 손때 묻은 빨간색 장치에는 군데군데 녹이 슬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주변에는 개표 가위와 기차표에 날짜를 찍는 기계인 일부기가 전시돼 있다. 역무원·역장·기관사 등 직책별 모자와 복장도 볼 수 있다.  
 
벽면 한쪽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열차 시간표’와 ‘운임표’가 적혀 있다. 모두 과거 기차역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들이다.
 
하루 4차례(왕복 8차례) 무궁화호 열차가 운행하는 득량역은 1930년 12월 문을 열었다. 햇수로 89년이 된 곳이다. 현재의 역사는 95년 새로 지어졌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보성군은 2014년 간이역 활성화 프로젝트로 1970년대 테마로 역을 꾸몄다.
 
실제로 운영 중인 역전이발관. [프리랜서 장정필]

실제로 운영 중인 역전이발관. [프리랜서 장정필]

옛 기차역을 복원해 놓은 외형만 봐서는 이용객이 없을 것 같지만, 마을 주민 등 하루 평균 30여 명이 이 역을 이용한다. 득량역 심정욱(48) 역장은 “도심에는 고속열차(KTX)가 달리지만, 시골의 간이역에는 여전히 무궁화호 열차만 운행된다”며 “인근 순천으로 장을 보러 가거나 광주에서 일을 봐야 하는 노인들이 득량역의 주요 고객”이라고 말했다. 역에서 만난 주민 최금순(87·여)씨는 “주로 집안일로 광주에 갈 때 득량역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득량역을 빠져나오면 추억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득량역을 등지고 좌측에 위치한 거리다. 차량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도로 양쪽에 자리 잡은 낡은 건물들은 70~80년대를 연상케 한다.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 외관은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을 준다.
 
득량역 안에서 사진을 찍는 어린이. [프리랜서 장정필]

득량역 안에서 사진을 찍는 어린이. [프리랜서 장정필]

거리 내 건물 중 하나인 ‘득량마을 안내소’에 들어서면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과거 전국에서 판매됐던 소주 등 수십 가지의 술병이 한쪽 벽면에 전시돼 있다. 주변에는 ‘새마을’ ‘은하수’ ‘아리랑’ 등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담배가 낡은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박물관처럼 잘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점방’에 온 것처럼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인근에는 ‘은빛 전파사’ ‘백조 의상실’ ‘새마을 연탄·석유 가게’ 등도 재현돼 있다. 이들 공간 내부에는 낡은 텔레비전과 전축 등 보는 것 만으로도 추억을 자극하는 물품들이 놓여 있다. 실제 운영되는 곳은 아니어서 내부로 들어갈 순 없고 밖에서만 구경이 가능하다.
 
득량역 추억의 거리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운영되는 곳들도 있다. 쌍화차 등 차를 마실 수 있는 행운다방이 대표적이다. 키 작은 소파 위에는 ‘화랑 성냥’이 올려져 있는 등 과거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고 있다. 바로 옆 ‘역전이발관’도 실제 운영되는 곳이다.
 
추억의 거리는 국비와 군비 등 2억여원을 들여 2012년 5월부터 조성됐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낡은 건물에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간판을 달고 물품을 전시했다. 건물을 매입하는 대신 건물주들로부터 사용 승낙을 받고 거리를 조성한 것도 특징이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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