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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유시민과 ‘나쁜 제도’ 국민연금

중앙일보 2018.08.17 00:11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어쩔 수 없지만 미안할 때가 있다. 국민연금 문제다. 국민연금은 후대들이 이 제도를 이어가야 성립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선 피라미드 판매와 비슷하다. 가입자가 계속 늘어나면 문제없다. 하지만 우리 인구 구조상 그럴 수는 없다. 피라미드 판매는 “사기였다”고 끝낼 수 있지만 국민연금이 그랬다간 국가의 의미가 없어진다. 후대가 떠맡아야 하는 제도를 지금 우리가 결정하는 데서 미안함이 생긴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 결정은 현재 세대에 유리하기 마련이다. 우리 노후가 안온해질수록 정책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후대들의 고통은 커진다.
 

연금 개혁은 미래에 대한 책임
노무현 정부처럼 적극 나서야

연금 개혁은 후손에 대한 이런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자는 노력이다. 노무현 정부 때 연금 개혁을 주도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출발점도 이 지점이었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연금 구조는 진보·보수를 떠나 ‘나쁜’ 제도다. 후세대를 착취하는 연금이기 때문이다”(국민연금공단 『실록 국민의 연금』중 인터뷰). 연금 문제에 대해 유시민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차라리 보수에 가깝다. 2015년 공무원 연금 개혁 문제로 여야가 맞붙었다. 새누리당은 ‘더 내고 덜 받는’ 안을, 민주당은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주장했다. 작가로 전업한 유시민은 방송에 출연해 새누리당 편을 들었다. “누가 살림을 하더라도 다른 방법이 없다. 이건 돈 문제니까.”
 
그가 앞장선 노무현 정부의 연금 개혁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정부 안은 보험료율을 9%에서 15.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60%에서 50%로 낮추는 것이었다. 결국 반발이 큰 보험료율은 그대로 두고 소득대체율만 40%로 낮췄다. 개혁안이 4년 가까이 여의도를 맴돈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유시민은 사표를 썼다. 연금 개혁은 그만큼 어렵다. 그래도 연금 고갈 예상 시기는 13년가량 늦춰 놓았다.
 
유시민을 거론한 것은 노무현 정부와 같은 뿌리를 지닌 현 정부의 자세가 사뭇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개혁을 놓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들끓자 문재인 대통령이 진화에 나섰다. “노후 소득 보장 확대가 우리 정부 복지정책의 중요한 원칙이다.” 뜻은 좋지만 ‘돈 문제’ 대책이 없으면 공허할 뿐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확정된 정부 안도 아니고, 연금 개시를 늦추는 안은 고려한 적도 없다”고 발을 뺐다. 연금 관련 위원회가 1년 넘게 머리를 맞대고 짜낸 안이 아니라면 어떤 안이 정부 안이 될 수 있을까.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곤란한 문제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자세처럼 느껴진다.
 
40년 뒤쯤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나면 연금 지급은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바꿔야 한다. 적립식은 가입자가 낸 돈을 쌓아 놓은 기금에서 주는 방식이고, 부과식은 근로 세대에게 돈을 거둬 은퇴 세대에게 주는 방식이다. 그때가 되면 생산가능인구(15~64세) 10명에 65세 이상 노인은 8명꼴이 된다. 근로 세대는 소득의 4분의 1 가까이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할 판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부터 현재 20대 초반까지 해당하는 세대다.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상황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미래는 모른다. 40년 뒤 베이비붐 세대들이 사라지면 가파른 역피라미드 인구 구조는 비교적 아래위가 고른 안정형으로 바뀔 수도 있다. 출산율이 높아질 수도 있고, 경제가 좋아질 수도 있다. 미래 세대가 방법을 찾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고 충격을 덜어주는 것이 우리 세대가 쌓고 있는 기금의 역할이다.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지만 유시민이 연금 개혁을 위해 뛰던 그때보다는 훨씬 높다. 난제를 풀 힘이 있다는 이야기다. 책임감과 용기만 더해지면 된다. 청와대는 청원 게시판만 볼 게 아니라 미래도 봐야 한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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