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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총리 3차례 역임 '핵실험' 강행한 바지파이 별세

중앙일보 2018.08.16 22:28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전 인도 총리. [사진 위키피디아]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전 인도 총리. [사진 위키피디아]

 
13억 인구 대국 인도를 3차례에 걸쳐 총리로서 통치하며 핵보유국 위상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받는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전 인도 총리가 1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94세. BBC 등 외신은 그가 숙환으로 입원해 있던 델리의 병원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94세 지병으로 숨져…집권 인도국민당 공동 창당
파키스탄과 핵실험 경쟁… 2004년 평화협정 치적도

 
바지파이 전 총리는 현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바라티야 자나타 당)의 창당 멤버로 인도의 손꼽히는 정치 거물이다. 1996년 처음 총리직에 올라 중간의 일시적인 공백을 포함해 2004년까지 재임했다.  
 
특히 두 번째 총리 재임 중에 일련의 지하 핵실험을 감행해 세계를 경악케 했다. 인도는 1974년 핵 실험을 통해 5대 핵강국 외의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었지만 핵실험을 더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바지파이 총리 산하에서 98년 5월 11일과 13일 파키스탄 국경에 가까운 포크란에서 다섯 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에 파키스탄도 같은 달 28일 발루치스탄주(州)에서 여섯 차례에 걸친 지하핵실험을 시행하는 등 맞불을 놓았다. 주요 각국이 비난 성명을 내고 미국과 일본 등은 양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선포하였지만 양국이 '핵보유국 선언'을 하는 걸 막지 못했다.
 
하지만 바지파이는 결자해지를 하듯 파키스탄과 평화 정착에 앞장서기도 했다. 2004년 1월 페르베즈 무샤라프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과 역사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은 그의 대표적인 외교 치적으로 꼽힌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인도의 고속성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2003년 6월 인도네시아 발리의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국.인도 정상회담에 앞서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총리가 노무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3년 6월 인도네시아 발리의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국.인도 정상회담에 앞서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총리가 노무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1924년 12월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괄리오르에서 중상류계급(브라만)으로 태어났다. 42년 국민회의당 가입으로 정계에 입문, 영국의 압제에 저항했다. 51년 BJP의 전신인 우파 힌두정당 BJS를 공동 창당하고 57년부터 40년 동안 하원의원을 지냈다.
 
힌두민족주의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인에 대한 비자발급제한을 완화하고 인도 회교도의 성지순례를 용이하게 해주는 등 진보적 인물로 존경받았다. 92년 12월 BJP의 지지 속에 자행된 힌두교도들의 회교사원 파괴를 비난하는 등 인종·종교·지역을 초월해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바지파이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을 애도하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연속해서 올린 트윗. [트위터 캡처]

바지파이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을 애도하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연속해서 올린 트윗. [트위터 캡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바지파이의 모범적인 리더십이 인도가 21세기에 강하고 번영하면서 폭넓은 나라가 되는 데에 토대가 됐다"며 애도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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