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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후보 이긴 1%의 기적… '고시엔'엔 요물이 산다

중앙일보 2018.08.16 15: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2)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같이 가자. 학교 응원단으로 고시엔(甲子園)에 간다는 것은 두 번 다시 올까 말까 한 일이야. 나도 50평생 이번이 처음이야. 그것도 개막식 첫 경기라니까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친구들의 설득에도 나는 쉬이 도쿄에서 오사카까지의 비행깃값을 지출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 아들이 야구부원인 것도 아니고, 백 보 양보하더라도 아들이랑 친한 친구가 선수도 아닌데 뭐하러 효고현(兵庫県)까지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에 뭐하러?’ ‘그나저나 일본사람들은 왜 이 찜통 같은 여름에 아이들에게 야구를 시키는 거야!’
 
2014년 8월 11일. 응원단이 학교에서 마련한 버스와 비행기, 신칸센으로 고시엔구장을 향해 떠났다. 나는 도쿄에 남았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태풍의 영향으로 개막식이 8월 13일로 연기된 것이다. 현지 호텔에 묵는 사람도 있었고, 비행기로 돌아오는 친구는 다시 간다고 했다. 회사 근무로 못 가게 된 사람은 울상이었다. 
 
나는 그러한 일본인들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고시엔이 굉장한가?’ 나는 슬금슬금 일본인들이 왜 그토록 흥분하는지 그 현장을 체험해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한신고시엔야구장의 외관 모습. 2014년 8월 13일 96회 대회 때에 찍은 사진이다. 일반팬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사진 양은심]

한신고시엔야구장의 외관 모습. 2014년 8월 13일 96회 대회 때에 찍은 사진이다. 일반팬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사진 양은심]

 
2014년 8월 13일. 나는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일본인들의 로망인 고시엔구장으로 갔다. 96회 대회. 개막식이 끝난 후 첫 경기에 아들 학교팀이 등장했다.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커졌다. 안 간다고 버티던 나는 신이 나서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팀은 기적처럼 우승 후보팀에게 이겼다. ‘고시엔에는 요물이 산다’더니 1%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8월의 더위보다 더 뜨거운 응원단의 열기가 구장을 가득 메웠다. 고시엔 구장을 적시는 승자의 눈물, 패자의 눈물. 이긴 팀에게도 진 팀에게도 드라마가 탄생하고, 고시엔은 선수와 응원단에게 평생의 추억을 선물한다.
 
지역의 대표팀인 만큼 관공서에서 출정식을 하는 곳도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팀에게는 주민들로부터 기부금이 모인다. 학생 수가 적은 학교에서는 경기장의 응원석을 채우기 위해 주민들이 버스를 대절해 고시엔 구장으로 향한다.
 
78세의 한 어르신은 말한다. 전쟁 후 오락으로 삼을 것이 없었던 시절, 전 국민이 야구에 심취했었다고. 근무지에서 고향 팀을 응원하러 가겠다고 하면 흔쾌히 휴가를 주던 시절도 있었다고. 그만큼 고시엔은 특별한 것이었으며, 2018년 지금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인기는 여전하다.
 
고시엔 대회, 올해로 100회째
일본 고시엔 100회 대회 개막식 구장 관객이 꽉 찬 모습. 개막식인 만큼 빈자리가 없이 꽉 찼다. 9시 개막식에 오전 5시에는 개장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구장 주변이 꽉 찼고, 8시 30분에는 모든 티켓이 매진되었다고 한다. [사진 양은심]

일본 고시엔 100회 대회 개막식 구장 관객이 꽉 찬 모습. 개막식인 만큼 빈자리가 없이 꽉 찼다. 9시 개막식에 오전 5시에는 개장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구장 주변이 꽉 찼고, 8시 30분에는 모든 티켓이 매진되었다고 한다. [사진 양은심]

 
모든 순간에 혼신을 기울이는 고등학생 선수들의 순수한 모습에 고교야구팬은 감동한다. 경기가 끝나고 구장을 떠나기 전 선수들이 눈물을 훔치며 고시엔구장의 모래를 주머니에 담는 모습은 매해 텔레비전과 신문에 보도된다. 결승전까지 못 간 선수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모래를 담는다. 
 
결승전 후에는 이긴 팀도 진 팀도 고시엔의 모래를 주머니에 담아 가져간다. 고시엔 구장을 떠나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라 한다. 일본의 고교야구선수들에게 있어서 고시엔은 특별하다.
 
일본의 전국고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의 역사는 1915년 아사히(朝日)신문사 주최로 개최된 '전국중등학교 우승 야구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시엔(甲子園)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경기가 열리는 한신고시엔구장(阪神甲子園球場)에서 온 것이다.
 
일본 고교야구 100회 대회 선수 입장 모습. 개막식을 방영하는 텔레비젼 영상을 캡처했다. [사진 양은심]

일본 고교야구 100회 대회 선수 입장 모습. 개막식을 방영하는 텔레비젼 영상을 캡처했다. [사진 양은심]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1945년 사이엔 대회가 중단됐다. 그래서 2015년 고교야구 100주년을 맞이했으나 97회 대회였고, 올해 2018년이 ‘100회’가 되는 셈이다. 100회 기념대회에는 출전팀을 지금까지의 49개교에서 56개교로 늘렸다. 전국의 예선경기를 통해 3781개 고교야구팀 중 56팀이 고시엔에 출전한다.
 
2018년 8월 5일 개막식에는 황태자 부부도 초대됐다. 그리고 여름 고시엔에서 활약했던 18명의 고시엔 스타들이 시구식에 초대됐다. 첫 시구식은 메이저리그의 양키스에서 활약한 마쓰이 히데키(松井秀喜) 씨가 등판했다. 
 
마쓰이는 마지막으로 출전한 1992년 고시엔에서 5회 연속 ‘경원(투수의 고의 4구로 1루로 걸어나가는 것)’당해 야구방망이를 흔들어보지도 못하고 팀은 패했다. 그 일화는 ‘전설의 5연속 경원’이라 회자되고 있다. 우연히도 그가 시구식을 하는 첫 경기에 이름을 올린 학교는 그의 모교 세이료(星稜)고교였고, 개막식을 승리로 장식했다. 절묘한 우연이다.
 
일본에는 ‘봄의 고시엔’ 혹은 ‘센바츠(選抜)’라 불리는 또 하나의 고교야구대회가 있다.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열린다. 한신 야구구장이 완성된 1924년 야구 인기를 등에 업고 아사히 신문사가 주최한 대회다. ‘봄의 고시엔’과 ‘여름의 고시엔’에서 우승하는 것은 고교야구팀의 커다란 목표이기도 하다.
 
2014년 8월 13일. 우리 팀과 개막식 첫 경기에서 눈물을 흘렸던 팀은 이번 100회 기념대회에서 봄과 여름 고시엔 통틀어 100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zan32503@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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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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