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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민화와 다빈치 모나리자의 차이점은?

중앙일보 2018.08.16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15)
민화에는 꿈이 담겼다. 꿈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무심코 바라보는 사소한 것들이다. 민화에는 누나가 짠 자수를 들여다보는 듯한 따뜻함과 정겨움이 우러나온다. [사진 윤경재]

민화에는 꿈이 담겼다. 꿈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무심코 바라보는 사소한 것들이다. 민화에는 누나가 짠 자수를 들여다보는 듯한 따뜻함과 정겨움이 우러나온다. [사진 윤경재]

 
까치호랑이


놀라움,
비틀어진 소나무 가지 위 까치는
산신처럼 받들어온 용맹한 호랑이에게
대차게 맞상대하고
 
익살,
날랜 발톱 감춘 무늬 호랑이
사팔뜨기 눈에
헤 벌어진 붉은 혀
포근하고 늘씬한 허리선
늘어진 꼬리
 
껄끄러움,
깊이와 차별 없는 평면그림
원근도 모르는 추상 상상화
다시점 이끌어 천진난만 짜임새
짝눈에게는
사래 걸린 듯 낯선 듯
 
풀림,
그림도 그릇이니 비어야 담아지고
기운이 소통하는 비밀이야기
너와 나와 그
셋까지 구별한다는 까치가
맨 종아리에 회초리 자국 남겼습니다
 
[해설] 조선 말기 조상의 고뇌 담긴 까치 호랑이 민화
조선 말기 조상의 고뇌 담긴 까치 호랑이 민화.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선 말기 조상의 고뇌 담긴 까치 호랑이 민화.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지난 7월에 삼청동에 나갔다가 우연히 조선 민화 전시회를 보았다. 꽃과 새가 한 화폭에서 만나 상서롭게 노닌다. 민화는 눈으로 보고 그린 사실화가 아니다. 귀로 보고 마음으로 그린 상상화가 대부분이다.
 

그곳에서 나는 한국 화가의 기원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중섭이 그린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다. 추상화가 김환기나 장욱진 그림의 소묘가 민화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대를 관통하는 원류를 산골짝에서 발견하고 ‘퐁퐁’ 솟아오르는 시원한 샘물을 한 모금 마신 듯한 쾌감이 몰려왔다. 왜 한국화단에 추상화가 그렇게 강점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갤러리 현대 지하에서 낙도(樂圖,즐거운 그림)라는 제주 민화 병풍에 사로잡혀 정신줄 놓고 있었다. 그때 민화를 설명하는 어떤 분이 다가왔다. 귀동냥하여 들으니 표현이 예사롭지 않다. 염치불구하고 곁다리 붙어 청강하겠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한다.
 

중국 신화인 서왕모 이야기부터 계수나무와 옥토끼까지 예를 들어가며 그림 속으로 이끌어 호기심을 높인다. 민화 화조도에서 연꽃은 과거시험에 연달아 붙으라는 언어유희가 담겼단다. 연밥을 콕 찍어 먹는 물총새는 요즘 수능시험 볼 때 포크를 선물하는 것의 원류란다.
 

민화에서 원앙새나 참새 기러기 등 조류와 각종 물고기와 나비 등은 반드시 쌍으로 그렸다. 부부가 평생 화목하라는 서원이며, 간혹 나비 한 마리만 나오면 어딘가 나비 모양의 꽃이 반드시 조응한다.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은 삼여도라고 부르는데 아무리 바빠도 누구나 세 번의 여유시간은 있어 공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삼여 시간은 밤, 비 오는 날, 겨울이다. 이때는 누구나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으니 공부방에 삼여도를 그려 교훈으로 삼았다.
 

신선한 멋이 풍기는 민화인 모란도. [사진 윤경재]

신선한 멋이 풍기는 민화인 모란도. [사진 윤경재]

 
꽃의 여왕이라는 모란도 사실적이기보다 부귀를 염원하는 상징으로 자유롭게 그렸다. 어떤 꽃들은 패턴화해 현대적 느낌이 물씬 풍긴다. 심지어 그 꽃이 무엇인지도 헷갈린다. 그런데도 신선한 멋이 풍긴다. 구찌 등 패션 회사에서도 조선 민화 꽃 그림 패턴을 연구해 제품을 제작하는데, 인기가 높단다.
 

이처럼 민화에는 꿈이 담겼다. 꿈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무심코 바라보는 사소한 것들이다. 민화에는 누나가 짠 자수를 들여다보는 듯한 따뜻함과 정겨움이 우러나온다.
 

마지막 전시장을 나오면서 입구의 직원이 그분께 깍듯이 인사를 한다. 어리둥절하여 물어보니 설명하던 분이 정병모 교수란다. 누군가 검색해 보니 경주대학교 문화재 학과 교수이자 박물관 관장이란다. 민화에 관한 책도 여러 권 냈다. 나와 내자는 얼떨결에 민화 최고 전문가의 특강을 듣는 행운을 만난 거다. 특별한 인연 덕분에 민화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되었다.
 

정병모 교수의 소탈한 성품과 상세한 식견에 감동해 그의 저서를 사 독파했다. 그중에 『민화(民畵)는 민화(民話)다』라는 제목의 책이 아주 마음에 든다. 민화는 백성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요즘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이야기가 담길 때 좀 더 친근감 있고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이야기에는 어떤 코드가 숨어있다. 그 코드를 모르면 해석이 안 된다. 코드를 알면 서로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다. 굳이 세세하고 지루한 설명이 필요 없다.
 

아쉽게도 그동안 민화의 코드가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다. 왜 민화가 주로 병풍으로 꾸며졌는지, 민화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웠다. 모란도, 화조도, 문자도, 수복도, 책거리, 어해도, 호룡도, 운룡도, 호작도, 팔경도, 금강산도, 구운몽도, 삼국지연의도 등등 아주 다양하다.
 

화가의 관점 강요하는 원근법 무시한 우리 민화 



그림 속 내용이 모두 평등한 민화 책거리. [사진 윤경재]

그림 속 내용이 모두 평등한 민화 책거리. [사진 윤경재]

 
책거리의 거리는 우리말이다. 일거리, 마실 거리, 이야깃거리, 먹거리같이 다양한 종류를 모아놓았다는 뜻이다. 책거리 그림은 중세 서양에서 나왔는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들어온 것이란다. 정조대왕이 유독 책거리 그림을 장려하고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 책거리에는 아주 독특한 느낌이 난다. 우선 원근법이 무시된다. 한 평면에 많은 물상이 담겨있다. 심지어 먼데 있는 것을 더 크게 그리기도 했다. 어찌 보면 옆에서 본 모습 같기도 하고 앞모습 같기도 하다.
 

즉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을 한 평면에 그려 넣어 무척 낯설다. 저절로 한 작품에 오래 머물러 그 시점들을 상상하며 감상하게 된다. 명과 청나라 그림에도 분명한 원근법이 오히려 사라졌다. 왜일까?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에 지오토를 비롯한 화가들이 인간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표현하자는 생각으로 발명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선 원근법, 공기원근법 등을 구체화했다. 기하학적 원리를 담은 원근법은 몇 가지 단점이 있다. 화가 자신의 관점을 은근히 강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나리자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비스듬히 앉은 자세며, 눈꼬리와 입가의 미소, 특이한 눈썹, 교차된 손 등이 떠오른다. 그는 입가와 눈꼬리, 그림자를 이용해 관객에게 신비감을 상상하게 이끌었다. 그러나 배경에 있는 오솔길과 강, 다리, 산과 절벽은 잘 의식하지 못한다.
 

‘최후의 만찬’도 가운데 예수의 이마에 원근 선이 모이고 소실점이 단 하나 형성된다. 결국 자신의 관점에 동의하도록 만든 것이다. 원근법은 한쪽 눈을 감고 볼 때 실감이 난다.
 

실생활에서 인간의 눈은 두 개다. 그래서 매 순간 초점이 바뀐다. 원근법만큼 과장된 입체감이 필요 없다. 걸어갈 때 멀리 있는 신호등과 가까이 있는 사람과 간판의 깊이가 그리 크지 않아도 우리는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원근법의 그림은 한순간의 광경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나 구운몽 같은 민화는 긴 스토리를 담느냐 복합공간뿐만 아니라 긴 시간도 담아야 했다. 이야기의 위치와 크기를 한 시점에 넣으면 우격다짐이 되고 만다. 그림 속 내용이 모두 평등해야 한다. 그래서 자연히 다시점(多視點) 평면 그림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그림에는 일 년이란 시간이 고스란히 다 담겼다.
 

여러 컴퓨터 화면 띄어놓고 작업하는 효과

평면성은 우리 민화의 특징이다. 마치 컴퓨터 윈도우 화면을 여러 개 띄어놓고 작업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여러 삽화를 평등하게 전개하는 것이다. 그림에서 자주 하늘이 아래에 있고 땅이 중간에 있으며 꽃과 나비가 제일 윗부분에 나타난다. 이것은 물상이 스스로 이야기하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걸 강요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민화에는 빈 여백이 많다. 그 빈 공간을 통해 대상의 기운이 소통한다. 동양화와 산수화가 말하는 것과 조금 다른 의미이다. 민화에는 산수화보다 훨씬 많은 물상이 등장하기에 공간이 더 중요하다. 쉼보다는 소통이다.
 

까치호랑이 그림은 무엇보다 이야기의 코드가 중요하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코드는 웃음이다. 진리는 단순하고 웃음으로 다가올 때 인간에게 더 살갑다고 푸코는 말했다. 또한 소나무와 까치 그리고 호랑이 세 관계성이 주는 의미를 깨달을 때 기울어 가는 조선 시대 말기, 고민하던 조상의 지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whata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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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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