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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 죄송합니다... 올해는 추석상 올릴 사과 못 구하겠네요"

중앙일보 2018.08.16 10:27
15일 오후 경북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한 사과농장에서 폭염에 일소 피해가 난 홍로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 의성=김정석기자

15일 오후 경북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한 사과농장에서 폭염에 일소 피해가 난 홍로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 의성=김정석기자

의성 과수원 가보니..."폭염에 사과들 죄다 화상, 누렇게 떴다" 
 
"사과농사만 40년 지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더. 빨갛게 익어야 할 홍로가 누렇게 뜬 거 보이소."
 
15일 오후 경북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한 사과농장. 이곳 3만3000여㎡ 부지에서 사과나무 1000여 그루를 재배하고 있는 장모(71)씨가 폭염에 제 색깔을 찾지 못한 사과를 만지며 한숨지었다.
 
멀리서 보면 빽빽이 늘어선 사과나무마다 붉은 사과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사과는 자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마치 멍이 든 것처럼 일부가 시커멓게 썩은 사과도 나무마다 2~3개씩 보였다. 일소(日燒·햇볕 데임) 피해가 난 사과다. 나무 아래엔 썩어 떨어진 낙과가 수두룩했다. 추석까지 40일 앞둔 시점 치고는 사과가 너무 작고 빛깔을 갖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문제는 올해 7월 초부터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폭염이다. 장씨는 새벽에도 30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폭염을 이기기 위해 나무에 물 주는 양을 2~3배 늘렸다. 이날도 사과농장 일대에 스프링클러가 하루 6~7시간씩 가동되고 있었다. 농장을 불과 5분 거닐었는데도 바지와 신발이 흠뻑 젖을 정도였지만, 사과나무가 폭염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15일 오후 경북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한 사과농장에서 폭염에 썩은 홍로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의성=김정석기자

15일 오후 경북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한 사과농장에서 폭염에 썩은 홍로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의성=김정석기자

 
장씨는 "군 복무 시절 월남전에 참전을 했는데 요즘 날씨가 딱 그 때 날씨"라며 "도시 사람들은 크고 싱싱한 사과가 아니면 절대 사먹지 않는데 지금 상황에선 추석 차롓상에 올릴 사과가 하나도 없다. 이번 추석엔 본전도 건지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도 의성군의 낮 최고기온은 38.9도까지 치솟았다. 전날인 14일엔 40.3도, 13일엔 39.5도로 각각 그날 전국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여름 사과'로 불리는 홍로가 아닌 '가을 사과'라 불리는 부사(후지)만 재배하는 집도 울상이었다. 부사는 당장 추석에 맞춰 출하를 해야 하진 않지만 역시 폭염 피해로 씨알이 예년보다 작아 11~12월 출고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을지 농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부사 위주로 재배하고 있는 사과농장에선 10~20그루마다 한 그루꼴로 나무 자체가 고사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후평리 인근 관덕1리 마을에서 부사 500그루 정도를 키우는 김봉호(61) 이장은 "홍로뿐만 아니라 부사도 폭염에 많이 데였다. 크기도 예년보다 작고 '정상 사과'가 아니어서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15일 오후 경북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한 사과농장에서 폭염에 일소 피해가 난 홍로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 의성=김정석기자

15일 오후 경북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한 사과농장에서 폭염에 일소 피해가 난 홍로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 의성=김정석기자

 
경북도에 따르면 14일 기준으로 의성을 비롯한 경북 23개 시·군에서 폭염에 따른 농작물 피해 규모는 1143.5헥타르(11.435㎢)에 이른다. 이 중 과수가 734.4ha로 비중이 가장 높다. 과수 중에서도 사과가 510.1ha 규모 피해가 나 전체 농작물 피해의 44.6%를 차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장 약 40일 앞으로 다가온 추석에 과일 물가가 출렁이고 있다. 사과 10㎏ 도매가가 3만1000~3만4000원 수준으로 지난해보다 30% 올랐다. 사과뿐 아니라 제철 과일인 수박도 60% 이상 급등했다. 폭염 탓에 생육이 부진한 고랭지 배추도 평년보다 40% 이상 뛰었다.
15일 오후 경북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한 사과농장에서 말라 죽은 사과나무가 다른 나무들 사이에 끼어 있다. 의성=김정석기자

15일 오후 경북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한 사과농장에서 말라 죽은 사과나무가 다른 나무들 사이에 끼어 있다. 의성=김정석기자

 
각 지자체는 폭염 피해를 최소화하고 요동치는 과일·채소 물가를 잡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경북도는 폭염에 따른 농작물 생육 상황을 점검하는 동시에 폭염 피해 경감제와 관수장비, 유류비, 긴급 급수 대책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대구시는 농산물 수급 대책반을 꾸려 과일·채소 등 10개 품목 물가를 집중 관리하고 안전성 검사와 원산지 표시 지도를 강화하기로 했다.
 
김주령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은 "농작물 폭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지난달 6억원 지원에 이어 이달 9일 예비비 16억원을 추가 지원했다"며 "중앙정부, 시·군과 힘을 합쳐 폭염 피해를 예방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의성=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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