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찬호의 시선] ‘특사’ 선심 참아온 문 대통령, 끝까지 참아라

중앙일보 2018.08.16 00:32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지난해 12월 29일. 문재인 정부로부터 복권 조치를 받은 정봉주는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 여행 중이었다. “발표 당일까지 복권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서울에 있지 해외로 나갔겠습니까. 유심칩이 없어 휴대전화마저 끊긴 상태라 뉴스가 난지도 몰랐어요. 아들 친구가 카톡으로 ‘네 아빠 복권됐단다’는 메시지를 보내줘 겨우 알았지요. 문 대통령이 제 옥살이를 다룬 방송을 보고 무척 안타까워했다는 보도는 들었지만 워낙 원칙주의자잖아요. 청와대에 친구들이 많지만, 복권과 관련해 귀띔 한번 해주지 않습디다.”
 

집권 이래 정치인 사면 제로 … 복권도 1명뿐
특검 소환 측근들에도 ‘법대로’ 원칙 지키길

문재인 대통령 집권 1년 3개월 동안 2번의 광복절과 한 번의 연말연시가 지나갔다. 사면복권 타이밍이 3차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혜택을 받은 정치인은 정봉주 한명뿐이다. 올해 8·15를 앞두고도 언론은 두 달 전부터 청와대에 ‘광복절 특사’ 여부를 물어왔지만 “없다”는 답만 돌아온 끝에 날을 넘겼다. 이건 잘하는 일이다.
 
문재인이 집권하면 사면복권될 걸 꿈꾼 여권 정치인이 많았다. 한명숙 전 총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난해 연말 청와대나 그 주변에 ‘세게’ 청을 넣었다고 여권 소식통은 전했다. 반년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에 나가야겠으니 복권을 시켜달라는 청이었다. 둘 다 노무현 정부에서 문 대통령과 한솥밥을 먹은 사람들이다. 특히 ‘친노 대모’ 한명숙은 문 대통령과 각별하다. 3년 전 한명숙은 2007년 대선 당시 경선 비용 명목으로 기업인에게 9억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유죄가 확정돼 2년간 옥살이(지난해 8월 23일 만기출소)를 하게 됐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은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한명숙은 무죄”라고 했다. “법조인으로서 대법원 판결마저 불복하느냐”는 욕을 들으면서까지 한명숙을 감싼 것이다. 문 대통령 오른팔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도 한명숙과 긴밀한 관계다. 한명숙은 당 대표 시절 임종석을 요직인 사무총장에 발탁했다. 또 그가 저축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1심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에서 19대 총선 공천을 받도록 적극 지원해 욕을 먹었다. 이 정도면 청와대가 한명숙에 품는 마음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그러나 문 대통령은 두 차례 한명숙을 복권시킬 기회를 모두 포기했다. 대선 당시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범죄’는 사면 대상에서 원천 배제하겠다”고 했던 공약을 지키려는 뜻이 확고한 때문이란다. 다만 정봉주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했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처벌(징역 1년)된 경우라 예외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데 정봉주를 복권해준다는 소식이 미리 알려지면 한명숙을 비롯해 복권을 기다리는 다른 정치인들이 “왜 난 아니냐”며 항의하는 사태가 날 게 뻔했다. 그래서 청와대는 정봉주 복권을 놓고 007 작전에 돌입했다고 민주당 소식통은 전했다.
 
“여권에서 미리 이 사실을 안 사람은 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 그리고 정봉주 복권을 위해 헌신적으로 뛴 민주당 안민석 의원 정도였다. 담당 부서인 민정수석실 사람들마저 몰랐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발표 전날까지 ‘이번에 복권되는 정치인은 없다’는 정보 보고를 올리게 된 이유다”
 
한명숙과 이광재를 복권하지 않는 결기 덕분에 문 대통령은 적지 않은 소득을 올렸다. 우선 역대 정권마다 반복돼온 대통령의 사면권 남발 논란과 국론 분열을 확실히 차단했다. 또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 논란 많은 인사들의 사면 요구도 일축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멋진 원칙이 관철돼야 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와 송인배 청와대 정무비서관이다. 김경수는 ‘문재인의 입’이라 불릴 만큼 측근 중의 측근이다. 지난해 6월 문 대통령의 방미 당시 수행차 따라간 여권 인사의 전언이다. “해외에서 대통령 경호는 더욱 삼엄하기 마련인데 김경수는 ‘잠시 비켜달라’는 한마디로 경호진을 물리치고 대통령과 독대급 대화를 하더라. 최측근임을 실감했다”
 
이럴수록 문 대통령은 특검이 김경수를 아무 부담 없이 날카롭게 수사할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김경수가 특검 조사를 받기에 앞서 ‘정치 특검’ 운운하며 대통령 측근으로서 위력을 과시하는 듯한 행보를 하는 것도 말려야 한다. 송인배도 마찬가지다. 그는 문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첫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판문점으로 가는 전용차 옆자리에 영부인 대신 동승해 밀담을 나눴을 만큼 측근 중 측근이다. 이런 그가 드루킹과 여러 번 만나고, 김경수를 연결해준 장본인임이 드러났다. 문 대통령의 ‘법대로’ 원칙은 바로 이런 경우에 진가가 드러나야 한다.
 
문 대통령은 내년 연말에 또다시 힘든 허들을 만날 것이다. 이듬해인 2020년 실시될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신 덕을 볼 마지막 기회니 제발 복권해달라”는 간청이 쏟아질 것이다. 유혹을 참기 바란다. 사면권 남발없이 ‘법대로’ 원칙을 임기 내내 지킨 첫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기원한다.
 
강찬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