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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예스 민스 예스

중앙일보 2018.08.16 00:16 종합 31면 지면보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스웨덴은 최근 성관계 전 상대방으로부터 명백한 동의를 얻어야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1심 무죄 선고 이후 거론되는 사실이다. 해당 판사가 ‘노 민스 노(no means no·부동의에도 성관계하면 강간)’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동의 없이 성관계하면 강간)’ 룰을 언급하며 “두 룰이 입법화되지 않은 현행 법제하에서 처벌하기 어렵다”고 말한 후다.
 
‘예스 민스 예스’의 스웨덴이니 우리와 다르겠거니 싶겠지만 딱히 그랬던 건 아니었다. 2013년 5월 미성년 여자를 움쩍달싹 못하게 한 뒤 병을 삽입했는데도 무죄 선고가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여자가 응하지 않으려 한 건 수줍음 때문일 수 있다”고 봤다. 같은 해 9월 ‘노’라고 한 경우도 성폭행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할 정도의 폭력이나 공포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듬해 초엔 비명을 하도 질러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여성을 상대로 성관계한 남성도 풀려났다. “여성이 원치 않는다는 생각이 남성에게 떠오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게다. 만취한 여성을 향한 성폭행을 두고도 비슷한 시기에 법원은 “여성이 취한 줄 몰랐다”는 가해자의 진술을 받아들였다.
 
거센 반발은 불가피했다. 운동 단체(FATTA!)가 결성됐다. 성폭행 실태 조사 결과도 제시됐다. 가해자의 대부분이 친구거나 남자친구, 배우자 등 지인이며 피해자 중에서 성폭행에 항거하는 이는 일부일 뿐 상당수가 공포나 충격에 얼어붙거나 해를 덜 당하기 위해 동조하는 척하기도 한다는 걸 말이다. 그러던 중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일었고 지난해 총선 국면에서 쟁점도 됐다.
 
올 초 스웨덴이 관련 법을 개정하게 된 배경이다. 유럽에선 10번째였다. 스테판 뢰프벤 총리는 그 무렵 “성관계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자발적이지 않다면 불법이다. 확신할 수 없다면 삼가라”고 말했다.
 
스웨덴에 비하면 우리의 인권 의식은 턱없다. 상당수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은 더 한심해 거의 ‘봉건시대’ 수준이다. ‘은장도를 들 정도라야 피해자’라고 본다. 특히 법원에 계신 분들 말이다.
 
1심 선고 후 한 여자 후배가 시니컬하게 반응했다. “밥 꼭꼭 잘 씹어 먹겠다. 운동도 공부도 더 많이 하겠다. 힘센 사람이 되겠다. 그래서 정조를 지키겠다. 그런데 피해자답지 않게 보이면 어쩌지.” 뭘 어쩌긴 힘을 키워 법을 바꿔야지.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다. 스웨덴에선 논란 후 법 개정 전에도 ‘전향적’ 판결이 내려졌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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