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국민연금, 이대로 둘 순 없다

중앙일보 2018.08.16 00:14 종합 31면 지면보기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희망고문.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어 남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이 딱 그 꼴이다. 국민연금은 고갈 시점이 기존의 2060년에서 더 앞당겨질 예정이며,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연금제도가 바뀔 전망인 것으로 최근 알려졌다. 당연히 국민들은 반발했고, 대통령도 질책하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정부의 확정안이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다.
 

국민연금, 평균수명 60대 때 설계
2040년엔 수명 90세 육박 예상
개정안이 인구변동 반영했을까
기금 고갈되면 ‘지급 보장’ 약속
국가가 세금으로 메우겠다는 뜻
희망고문 되지 않도록 개혁해야

 
질문을 한번 해보자. 새로운 운용계획대로 더 많이 내고 덜 받으면 기금 고갈 시점이 좀 뒤로 미뤄지고 기금 재정이 안정될까? 그리고 앞으로의 조정은 없을까? 만일 그게 확실하다면 정부는 조금 어려워도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확실치 않다면, 정부는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국민연금 개혁에 나서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의 재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는 기금 운용을 얼마나 잘 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연금을 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숫자인 인구다. 우리나라 인구가 얼마나 낮은 출산율과 빠른 수명 연장을 경험하고 있는지는 누구나 다 안다. 국민연금이 처음 설계될 1980년대 중반 평균수명은 60대 후반이었고, 매년 80만 명이 태어났다. 지금은 평균수명이 82세이고 30만여 명이 태어나고 있다. 2040년이 되면 평균수명은 90세에 육박할 것이고, 많아야 20만 명도 채 태어나지 않을 예정이다.
 
질문을 하나 더 해보자. 국민연금의 운용계획을 짜고 있는 정부 위원회는 이런 인구 변동을 제대로 고려했는가? 만일 그랬다면 연금제도를 현재보다 조금 더 많이 내고 덜 받는 식으로 이번 한 번만 바꾸고 앞으로는 바꾸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이를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국민도 이해해야 한다. 비록 손해는 보지만 예측 가능한 노후를 국가와 국민연금이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인구변동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고 과거 장래인구추계가 이번 개정안에 사용된 것이라면? 2011년 장래인구추계는 2017년에 약 46만 명이, 2030년에 약 41만 명이 태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실제 35만여 명이 태어났다. 출산율이 급반등하지 않는다면 2030년엔 약 28만 명 정도가 태어날 것이다. 이런 인구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면 국민들은 실망할 것이고, 머지않은 미래에 또다시 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반발을 넘어 분노할 것이 분명하다.
 
조영태칼럼

조영태칼럼

국민연금관리공단 홈페이지에 가 보면 이런 정보들이 나와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2060년까지 고갈되지 않을 것이고, 고갈되더라도 국가가 지급을 보장할 것이며, 지금까지 연금이 지급되지 않은 해외 사례는 없다.” 희망고문의 극치다.
 
국민들은 연금이 고갈되는 시점이 아니라 지불금이 기여금을 넘어서는 시점을 알고 싶다. 이때부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데 누가 연금을 내고 싶겠는가? 고갈된 기금에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는 말은 결국 세금을 쓰겠다는 것인데, 2057년에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45%를 넘게 된다. 국민건강보험금도 오를 것이 당연하다. 세금을 낼 사람도 없고 낼 여력도 없는데, 어디서 국민연금을 메울 세금을 만들 것인가?  
 
다른 나라에 사례가 없다고 우리나라가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어찌 할 수 있나? 우리나라의 인구변동은 전 세계에서 비슷한 사례조차 없다. 게다가 기여금이 아니라 기금에서 연금이 지급되기 시작하면 높은 투자수익률을 좇을 수 없다. 그때부터는 원금 보전이 더 중요해진다.
 
국민연금 재정이 악화된 것이 이번 정부의 탓이라고 보는 것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더는 국민연금이 국민에게 희망고문이 되지 않도록 개혁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만일 필요하다면 지금 연금을 내고 받는 사람들이 다시 걱정하지 않도록 조정이 아니라 근본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앞으로 국민들이 동의하는 국민연금제도를 만들기 위한 국가적인 논의가 시작될 텐데, 두 가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위원회건 공론의 장이건 공무원과 교수들은 배제하자.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의 이해당사자가 아니다. 둘째, 반드시 청년들을 공론의 중심에 초청하자. 지금의 청년들이 연금의 지불이 기여보다 커질 때를 경험할 가장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