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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 ‘예스 민스 예스 룰’… 타이슨 유죄 예일대생 무죄

중앙일보 2018.08.16 00:06 종합 2면 지면보기
안희정. [뉴스1]

안희정. [뉴스1]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53)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가 제시한 ‘예스 민스 예스 룰(Yes Means Yes rule)’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예스 민스 예스 룰은 ‘명백하게 동의한다’는 뜻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성관계를 강간으로 보는 규정이다.
 

안희정 무죄 선고 때 언급된 법
타이슨 “여성, 호텔방 동행” 주장에
법원 “성관계 동의했다 할 순 없어”

예일대 피해자 “술 취해 끌려갔다”
배심원 “CCTV에 멀쩡” 인정 안해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14일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예스 민스 예스 룰 등이 입법화되지 않은 현행 성폭력 범죄 처벌 법제하에서는 피고인의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언급한 이 룰은 미국에선 1970년대부터 반영됐다. 이전까지는 피해자가 모든 육체적 힘을 다해 가해자와 싸우는 ‘극도의 저항(utmost resistance)’을 했을 때만 강간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이런 해석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었고, 이를 법에 반영한 주(州)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뉴햄프셔주 등에선 ‘예스 민스 예스 룰’에 따라 상대방의 긍정적 동의가 없는 성관계는 강간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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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주먹’으로 불렸던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52)이 1991년 대학생을 강간했다가 징역 6년을 선고받은 것이 대표 사례다. 당시 타이슨은 “여성이 호텔방에 들어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알았고 사실상 성행위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호텔방에 함께 들어간 것만으로 동의했다는 식으로 강간을 정당화할 수는 없고, 자신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느냐 여부가 중요하다”는 검사 주장을 받아들였다.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 참여한 여성주의 커뮤니티 ‘워마드’ 회원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14일 법원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워마드엔 ’15일 보수단체 집회에 참여하자“는 게시 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하지만 참석자는 소수에 그쳤다. [우상조 기자]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 참여한 여성주의 커뮤니티 ‘워마드’ 회원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14일 법원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워마드엔 ’15일 보수단체 집회에 참여하자“는 게시 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하지만 참석자는 소수에 그쳤다. [우상조 기자]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2015년 예일대 기숙사에서 일어난 강간 사건의 피의자에게 지난 3월 무죄 판결이 났다. 이 학교의 한 남학생은 핼러윈 파티 뒤 술에 취한 여학생을 기숙사로 데려다준 뒤 성관계를 했고, 이후 여성은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무죄 평결을 내린 배심원단은 “성폭행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피해 여성이 “술에 취해 정신없이 기숙사로 질질 끌려갔다”고 진술했지만 배심원들이 주목한 것은 기숙사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동영상이었다. 여기엔 피해 여성이 술에 취해 끌려가는 모습이 없었다. 이 판결은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됐다. 김형진 미국 변호사는 “가해자가 좋은 학벌에 백인 남성이라 무죄가 난 이례적 판결”이라며 “미국 주요 주에선 성관계에서 여전히 ‘동의’라는 요건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김한규(법무법인 공간)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성범죄는 폭행처럼 눈에 보이기보다는 개인 사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복잡한 법적 다툼이 생긴다”며 “예스 민스 예스 룰을 입법화하는 문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지난 4월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 재무성 사무차관이 여기자들에게 “안아도 되느냐”고 말한 음성 파일까지 공개됐지만 재판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구두 경고를 했다”며 사건을 무마했을 정도다. 김민조 법무법인 태평양 일본팀 변호사는 “일본에선 연예인 정도는 돼야 성범죄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삼는 분위기”라며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데는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 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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