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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라이벌 이창호·창하오 "우린 영원한 친구”

중앙일보 2018.08.16 00:02 종합 20면 지면보기
약 20년 전 라이벌 관계였던 이창호 9단(오른쪽)과 창하오 9단. 둘은 "다시 시합에서 만나려면 바둑 공부를 열심히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약 20년 전 라이벌 관계였던 이창호 9단(오른쪽)과 창하오 9단. 둘은 "다시 시합에서 만나려면 바둑 공부를 열심히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약 10년은 이창호(43) 9단의 시대였다. 이 9단에게 유일하게 라이벌로 꼽히는 중국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창하오(常昊·42) 9단이다. 두 기사는 나이가 비슷하고 같은 해인 1986년 프로에 입문했다. 두 선수 모두 단단한 포석과 두터움을 중시하는 기풍이란 것도 닮은 점이다. 늘 예의 바르고 겸손한 태도로 인터뷰에 임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세계바둑 주름 잡은 한·중 최고수
이창호 "많이 이겼지만 힘든 상대”
창하오 "단점 거의 없는 나의 목표”

상대 전적만 놓고 보면 이창호가 28승 12패로 압도한 듯하다. 하지만 굵직굵직한 무대에선 창하오도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둘은 세계대회 결승에서 총 다섯 번 만났는데, 이창호가 세 번(제4회 응씨배, 제1회 도요타 덴소배, 제11회 후지쓰배), 창하오가 두 번(제11회 삼성화재배, 제7회 춘란배) 우승했다.  
 
제1회 한·중·일 국회의원 친선 바둑 교류전에 각국을 대표하는 기사로 초대된 두 기사를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만나면 편한 사이”라고 했다. 창하오는 "이창호 9단을 처음 본 게 1997년 7월이다. 20년이 훨씬 넘도록 봤는데 교류할 때마다 즐겁다. 항상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창호는 "창하오 9단은 나보다 말을 잘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앞으로도 오래 만나고 싶은 친구”라고 소개했다.
악수를 하고 있는 이창호 9단(오른쪽)과 중국의 창하오 9단. [사진 한국기원]

악수를 하고 있는 이창호 9단(오른쪽)과 중국의 창하오 9단. [사진 한국기원]

 
창하오의 기억대로 둘이 처음 만난 건 1997년 7월 14~16일 ‘제1회 박카스배 한-중 천원전’에서다. 당시 이창호가 창하오를 2대 1로 물리쳤는데, 창하오는 이후로 오랫동안 이창호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1997~2000년 12연패를 당했고, 이후 제4회 응씨배 결승전, 제6회 삼성화재배 준결승전, 제4회 춘란배 준결승전 등에서 번번이 이창호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00년대 후반에야 창하오는 결승전에서 이창호를 두 차례 물리치며 불명예를 씻었다.
 
창하오는 "이창호 9단은 좋은 사람이지만 바둑을 둘 때만큼은 만나고 싶지 않다”며 "과거에 이창호 9단의 바둑을 많이 연구했는데 단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창호 9단 같은 강력한 상대가 있었기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내가 목표를 갖고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이창호 9단은 "결과적으로 보면 내가 상대 전적이 좋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있다. 돌이켜보면 창하오는 매우 어려운 상대였기 때문에 만날 때마다 열심히 바둑을 뒀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둘의 인연은 반상을 떠나도 이어졌다. 주로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는 중국어에 능통한 이창호 9단의 동생 이영호씨가 동석했다. 이창호는 "동생이 우리의 말을 통역해줬기 때문에 셋이 편하게 어울린 적이 많았다. 예전에는 나도 술을 좀 해서 같이 마신 적이 몇 번 있는데 주량으로 따지면 창하오가 나보다 9점 정도 고수다. 요즘은 내가 술이 더 약해져서 이제는 아예 대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월이 흘러 마흔을 훌쩍 넘긴 두 사람은 이제 대국장이 아닌 행사장에서 마주치는 일이 많아졌다. 두 선수가 초대전이나 이벤트가 아닌 공식 시합에서 맞붙은 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마지막이었다. 창하오 9단은 "최근엔 젊은 기사들에 밀려서 성적도 떨어지고 경기 수도 줄었다”며 "지난해 중국 바둑협회 부주석이 된 이후로는 바둑 홍보나 행사 유치 등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둘의 대결을 언제 다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두 선수 모두 입을 모아 "대회에서 후배들을 물리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많이 노력해야 할 거 같다”고 답했다.  
 
최근 한·중 대결 구도에 대해 창하오는 "과거엔 중국이 한국을 뒤쫓아가는 형세였는데 최근 5년 동안은 중국이 대등해지거나 넘어섰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창호 9단은 "현재 중국 기사의 층이 두터운 건 확실하지만, 한국은 수가 적어도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두곤 했다. 최근 박정환 선수가 잘해주고 있기 때문에 신진서 등 어린 기사들까지 합세한다면 중국과의 대결은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호 9단
1975년 전주 출생. 86년 입단. 92년 최연소 세계 챔피언(제3기 동양증권배), 2003년 그랜드슬램 달성(7개 세계 대회 1회 이상 우승), 세계대회 17회 우승.
◆창하오(常昊) 9단
1976년 중국 상하이 출생. 86년 입단. 1990년대 후반 중국 랭킹 1위. 세계대회 3회 우승, 7회 준우승.

 
정아람 기자 aa@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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