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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선생, 정말 감동적이지 않습네까?”…남북 유소년 축구대회

중앙일보 2018.08.15 19:52
 “조국 해방의 날” 
8·15 광복절을 북한 주민들은 이렇게 불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북한도 8·15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있지만 매년 정부 차원의 공식 기념식을 갖는 우리와 달리 정주년(5,10년 단위의, 이른바 꺾어지는 해)이 아닌 올해엔 국가 차원의 대규모 행사를 열지 않았다.

광복절날, 평양 김일성경기장서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 킥오프

 

15일 평양 시내는 한산하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평소에도 교통 체증이 심하진 않지만 이날은 휴일인 탓에 차량이 평소보다 훨씬 줄었다. 부모의 손을 잡고 나선 어린아이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가는 교복 차림의 학생들 모습이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북한 주민과 학생들이 손에 응원도구를 들고 축구대회가 열린 김일성경기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뒤의 탑은 남산 송신탑. 평양=이정민 기자.

북한 주민과 학생들이 손에 응원도구를 들고 축구대회가 열린 김일성경기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뒤의 탑은 남산 송신탑. 평양=이정민 기자.

평소 승객들로 빽빽히 들어차던 시내버스도 오늘은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다. 평양 시내에선 일반 시내버스와 공중에 설치된 전기 케이블을 이용해 운행하는 무궤도 전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시내 구간을 운행하는 2층 버스도 간간이 보였는데 버스 안엔 빈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다만 구호가 적힌 8·15 경축 입간판이 이날이 광복절 임을 알리고 있다. 김일성광장과 인민극장, 조선혁명사박물관, 만수대의사당 등이 운집해있는 창전거리 등 평양 시내 곳곳엔 대형 그림과 함께 “항일대전의 위대한 승리 만세” “수령님 찾아주신 주체의 내 조국” “조국 해방” “항일의 전설적 영웅”과 같은 문구가 적힌 광고판이 인공기와 함께 내걸려 있었다.
 

평양시 낙랑구역의 초급중학교(우리의 중학교에 해당) 교원이라는 최일용씨는 “올해는 국가적 행사를 치르지는 않기 때문에 인민들이 개별적으로 가족과 함께 만수대 동상(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형 동상이 서 있는 곳) 같은 데 가서 인사드린다”며 “국가적 명절인만큼 가족 단위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양시 낙랑구역에서 중학교 교원인 최일용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평양=이정민 기자

평양시 낙랑구역에서 중학교 교원인 최일용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평양=이정민 기자

 

북한은 다음달 9일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 70주년 행사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평양의 중심부에 위치한 김일성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검정색 바지와 흰색 셔츠의 교복 차림 학생들이 운집해 ‘빛나는 내 조국’을 주제로 대규모 집단체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취재진이 동승한 버스 앞으로 기다란 흰색 깃대봉을 손에 든 남녀 학생들 수 백명이 행진하고 있었다.
 

대동강 서쪽 모란봉 기슭에 위치한 김일성경기장에선 제4회 아리스포츠컵 축구경기대회가 개막됐다. 1945년 10월 14일 만주에서 활동하던 김일성 주석이 평양에 돌아와 첫 연설을 했던 곳이다. 경기장은 5만여 관중들이 빼곡히 들어차 성황을 이뤘다. 대부분 초급중학교와 고급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 학생들이었고, 스타디움의 한쪽 블록은 중·장년층의 평양 주민들이 자리했다. 관중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경기장 밖 개선문 앞 광장에서 대기하다 줄을 지어 입장했다. 학생들은 모두 흰색 블라우스나 셔츠의 교복 차림이었고, 손에는 ‘메가폰’이라 불리는 응원 도구를 들고 있었다. 메가폰은 황금빛 마분지를 원통형 모양으로 말아 만든 것인데 모두 똑같은 모양이라는 점으로 봐서 응원 필수품인 것 같았다. 파도타기 응원을 할 때 메가폰이 번쩍번쩍하는 황금빛 물결을 이뤄 장관을 이뤘다.
  
기자를 안내한 북측 관계자는 “오늘 대회가 15살 축구경기여서 대부분 13~15세 학생들이 나왔고 일부는 소학교 학생들도 응원을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첫 경기는 남측의 강원도팀(주문진중)과 북측 4·25체육단(유소년팀)의 대결이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북한 학생들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잘한다 잘한다 425” “이겨라 이겨라 425”를 우렁차게 외쳤고, 그때마다 경기장이 떠나갈 듯 메아리쳤다.
“4·25축구단은 군이 관할하고 있는데 전국에서 축구에 소질 있는 인재들을 어릴 때부터 발굴해 집중 훈련하고 있기 때문에 최강팀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게 북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남측 하나은행 여자축구 선수단이 15일 김일성경기장에서 4ㆍ25팀과 경기후 인사를 하고 있다. 평양=이정민 기자

남측 하나은행 여자축구 선수단이 15일 김일성경기장에서 4ㆍ25팀과 경기후 인사를 하고 있다. 평양=이정민 기자

 
북측의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응원 속에 경기는 4대 1, 북측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에는 패했지만 남측 선수들은 북측 선수들과 함께 열을 지어 운동장을 한 바퀴 돌며 관중들의 성원에 화답했다. 관중들은 우렁찬 함성과 함께 기립박수를 보냈고 경기장은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북측 안내원은 목이 멘 듯 “기자 선생, 정말 감동적이지 않습네까”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평양=이정민 기자 lee.j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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