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춤 추면 바람난다? 플라멩코 무용수의 몸짓 보니....

중앙일보 2018.08.15 07:01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 보면(37)
플라멩코 후엔 산타 라 모네타 공연 포스터. [사진 유나이티드프로듀서스]

플라멩코 후엔 산타 라 모네타 공연 포스터. [사진 유나이티드프로듀서스]

 
몇 달 전, 아주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나이든 무용수 후엔산타 라 모네타의 플라멩코 공연을 봤다. 플라멩코란, TV에서만 본 스페인 집시의 춤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안동이라는 지방에서 관객이 있을까 하는 우려를 뒤집고 많은 이들이 관람해 감탄과 놀라움을 자아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서울에서의 공연은 15만원이나 할 만큼 비싼 로열 좌석을 배정받아 봤으니 올해 내가 받은 또 하나의 큰 선물인 것 같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정착한 집시들의 춤에서 시작된 플라멩코는 유랑민의 설움과 박해를 춤으로 표현했다는데 절제된 몸짓과 함께 반전으로 이어지는 폭발적인 감정이 어우러져 혼자서 추는 춤인데도 오르가슴을 느끼게 하는 무대였다. 춤으로 말하는 언어를, 그것도 스페인어를 가슴으로 이해하긴 처음이다. 그리고 춤이란 이쁘고 날씬한 사람이 추지 않아도 멋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른 춤 이야기 길로 빠져 보련다. 한국의 전통춤은 아니지만 서울살이할 적 40대의 젊은 날엔 스포츠댄스에 심취해 몇 년을 춤을 췄던 적이 있다. 삶이 너무 지치고 고달플 때 춤은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줬다. 노동하는 몸은 힘들어도 춤은 마음에 휴식을 줬다.
 
아이러니하지만 24시간 밤잠을 설치며 일만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빈틈에 춤을 추고 등산을 가고 수영을 하고 다녔으니 30~40대의 체력은 대단한 것 같다. 부부가 문화센터에 등록해 남편은 한 달도 채 안 되어 비싼 신발값도 못하고 포기하고 여동생 내외랑 같이 배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스포츠댄스는 여성회원이 많아 남자 역할도 거의 여자가 많이 한다. 안동에서는 집 가까운 주민회관에서 멋진 선생님 부부가 중년의 여가활동을 위해 봉사하고 계셔서 참여하게 됐다.
 
서울의 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60대 할머니들이 손을 잡고 함께 스포츠댄스를 배우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의 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60대 할머니들이 손을 잡고 함께 스포츠댄스를 배우고 있다. [중앙포토]

 
우리의 정서상 춤과 노래는 삶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아니 세상 사람들의 삶도 똑같은 것 같다. 마음이 울적하면 울적한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몸으로 소화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성장해 다 떠나고 빈 둥지 증후군에 들어선 50대의 사람들이 마음을 내려놓을 데가 없어 허전해 하면 그들에게도 나는 부부가 함께 춤을 배우라고 말해준다. 50대에 배우는 춤은 사교댄스다.
 
자식들에게도 시간이 나면 부부가 함께 춤을 배우라고 늘 말한다. 나잇대에 따라 춤 종류도 많다. 심하게 투덕거린 날도 음악과 함께 춤을 추다 보면 저절로 화해하고 풀린다.
 
누군가는 남녀가 마주 보고 추는 춤이라 바람날까 봐 두렵다고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멀리 미래를 내다볼 만큼 깊이 있게 살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냥 지금 여기에서 내 마음 가는 대로 가보는 것이다. 두 사람이 앞만 보고 붓글씨를 써도 나는 게 사랑 감정이라는데….
 
또 죽기 전에 사랑 감정이 좀 난들 어쩌겠는가? 소풍 온 세상살이, 살아보니 사랑 한번 못해보고 죽는 것도 서럽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살아있음을 각인시켜주는 것이니 날 수만 있으면 그것도 축복이다(욕먹을 각오하고 쓴다). 만약 그런 감정을 서로 대화하며 이야기가 되는 부부라면 정말 잘 살아온 부부이고 또 진심으로 서로 축하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멋을 지닌 플라멩코의 춤만으로도 사랑 감정이 전해져 왔다. 청춘이지만 삶이 힘들고 지쳐 사랑도 정도 무말랭이같이 시들해져 무관심하게 사는 젊은이들이 꼭 봤으면 하는 공연이었다. 관람하던 날 다행히 뒤편에 군인들이 많이 관람해서 참 좋았다. 공연이 끝난 후 모두가 찬사의 기립 박수를 보냈다.
 
보는 내내 플라멩코의 신내림을 받아 마음으로 함께 추었더니 나이 들면 보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 하는지 기운이 쏙 빠졌다. 모든 취미도 다 때가 있다. 지금은 좋아하던 춤도 귀찮아서 쉬고 있다. 대신 이렇게 글쓰기로 춤을 춘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관련기사
공유하기
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