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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새기와에 태극·무궁화 문양...'간도 대통령' 가옥 살펴보니

중앙일보 2018.08.15 05:00
중국 지린성 룽징시에 있는 규암 김약연 선생의 가옥. 100년 넘은 가옥이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1908년 설립된 명동학교 부속 건물로 쓰였다고 한다. [사진 한신대]

중국 지린성 룽징시에 있는 규암 김약연 선생의 가옥. 100년 넘은 가옥이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1908년 설립된 명동학교 부속 건물로 쓰였다고 한다. [사진 한신대]

민족의식 품은 채 풍파 견딘 100년 가옥 
 
중국 지린성 룽징(龍井)시 ‘명동(明東)촌’. 명동촌은 독립운동가이자 민족교육가로 잘 알려진 규암 김약연(1868~1942) 선생 등이 1899년 이주해 개척한 땅이다. 백두산 오른쪽 옛 북간도 지역이다. 규암 선생이 ‘간도 대통령’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명동촌의 유래는 ‘동쪽(조선)을 밝힌다(구한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명동촌 내 장재지역에는 지어진 지 110년 넘은 규암 선생의 가옥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가옥은 1908년 규암 선생이 설립한 명동학교의 부속건물로 널리 쓰였다고 한다. 
 
올해는 규암 선생 탄생 150주년이 된 해다. 한신대 재학생들은 정기적으로 간도 지역을 답사해 항일민족 운동 역사 등을 배우고 있는데, 한신대 측은 독립운동 유적지 중 하나인 규암 선생의 가옥을 중심으로 한 체험 교육도 준비 중이다.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한신대 측의 도움을 받아 규암 선생 가옥에 담긴 의미를 살펴봤다.
북간도 명동촌 위치도. [자료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북간도 명동촌 위치도. [자료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규암 선생의 가옥 지붕은 네 개의 지붕면이 있다. 앞에서 바라보면 사다리꼴이고, 옆에서 보면 삼각형이다. 우진각 형태라고 한다. 지붕 끝 막새기와에 항일민족정신을 상징하는 태극·무궁화 문양과 기독교를 나타내는 십자가 문양이 고루 새겨져 있다. 태극 문양은 중앙에 천(天)·지(地)·인(人)이 혼합된 삼태극이다. 건곤감리와는 다른 이감태진 4괘도 볼 수 있다. 무궁화는 겨레의 꽃 모습 그대로다.  
규암 선생의 가옥 지붕 막새기와에는 항일민족정신을 상징하는 태극·무궁화 문양과 기독교를 나타내는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다. [사진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규암 선생의 가옥 지붕 막새기와에는 항일민족정신을 상징하는 태극·무궁화 문양과 기독교를 나타내는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다. [사진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교육과장은 “당시 명동촌 주택 건축에 쓰인 막새기와는 거푸집으로 찍어내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직접 구웠다”며 “태극·무궁화 등의 문양을 일일이 새기며 민족의식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1919년 조선에서 3·1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지 2주도 되지 않은 3월 13일 룽징에서도 ‘독립선언 포고문’이 울려 퍼진 뒤 대규모 독립 만세 시위가 벌어졌다. 
 
한국 주거사 연구 구멍 메워준 소중한 자료
 
1903년쯤 660여㎡ 부지 위에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규암 선생 가옥은 전형적인 북한 함경도식 한옥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선 현관문이 눈에 띈다.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과 연결되는 ‘바당’이 나온다. 바당 오른쪽에는 외양간과 방앗간이, 왼쪽에는 거실 역할을 하는 ‘정주간’이 자리하고 있다. 외양간과 방앗간이 집안에 들어와 있다 보니 추운 겨울 밖에 나가지 않아도 생산활동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정주간 뒤편 부엌에는 솥을 걸 수 있도록 했다. 정주간은 온돌이라 잠도 잘 수 있다. 요즘처럼 거실과 주방이 혼합된 개념으로 보면 된다. 정주간 옆 방은 4칸이 두 줄로 2칸씩 배치된 ‘양통집’이다. 
규암 선생 가옥 평면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과 연결되는 ‘바당’이 나온다. 바당 오른쪽에는 외양간과 방앗간이, 왼쪽에는 거실 역할을 하는 ‘정주간’, 방이 이열로 자리하고 있다. [자료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규암 선생 가옥 평면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과 연결되는 ‘바당’이 나온다. 바당 오른쪽에는 외양간과 방앗간이, 왼쪽에는 거실 역할을 하는 ‘정주간’, 방이 이열로 자리하고 있다. [자료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함경도식 주거문화에서는 부엌과 거실이 한데 묶인 개념인 정주간을 볼 수 있다. [사진 한신대]

함경도식 주거문화에서는 부엌과 거실이 한데 묶인 개념인 정주간을 볼 수 있다. [사진 한신대]

양통집은 국내에서도 겨울의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태백산맥 인근 지역에 볼 수 있는 주거양식이다. 방이 겹겹이라 보온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명동촌 초기 개척자 142명이 모두 함경도 출신이고, 당시 마을 목수였던 천봉진씨 역시 함경도가 고향이다. 명동촌 내 주택을 통해 함경도식 주거양식을 짐작할 수 있는 이유다. 김재홍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함경지역을 자유로이 답사할 수 없는 현실에서 원형 모습을 간직한 규암 선생의 가옥은 주거사 연구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다”고 설명했다. 김시덕 교육과장은 “한국 주거사 연구의 구멍을 메워줬다”고 평가했다.
규암 김약연 선생의 생전 모습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규암 김약연 선생의 생전 모습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민이 유린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겠는가"
 
백두산 오른편에 형성된 북간도 명동촌은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의 교두보였다. 규암 선생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1900~30년대 북간도에 명동 학교를 세워 미래 세대에게 독립정신을 가르치는 등 민족교육에 헌신하면서 독립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19년 간도 지역에서 일어났던 3·13 만세운동 당시 공포된 독립선언 포고문의 조선민족대표가 규암 선생이다. 무장독립 투쟁에도 힘썼다. 2009년 독립기념관 시어록비 공원에 제막한 규암 선생의 어록비에는 “우리들은 철선에 묶인 것과 같은 수족을 어찌할 수 없는 경우에 처해있다. (중략) 한국민이 유린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겠는가”라고 새겨져 있다.
규암 김약연 선생의 대통령 표창장 [사진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규암 김약연 선생의 대통령 표창장 [사진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한신대는 항일민족 의식의 근원 등을 찾고자 정기적으로 재학생들과 간도지역 답사 활동을 벌인다. 한신대 관계자는 “규암 선생의 가옥을 학생들을 위한 체험교육공간으로 활용해 항일민족운동의 뜻을 이어받을 계획이다”며“북간도 기독교의 발상지나 다름없는 명동촌을 체험할 기회도 재학생들에게 제공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오산=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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