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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평화공존과 민족공동체 향한 국민적 지혜 모을 때다

중앙일보 2018.08.15 00:25 종합 25면 지면보기
이홍구 전 국무총리 유민문화재단 이사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유민문화재단 이사장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북한이 왜 비핵화 평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였는가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 체제의 총력 투자로 완성한 핵무기가 국제정치 시장에서 효용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체제 인정과 안전 보장에 대한 대가로 비핵화가 거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9월 남북정상회담은 북 비핵화 후
이질적 두 체제의 공존 초석 돼야
미·중·러·일과 유엔 함께 참여하는
‘세기의 평화 합의’ 구상 설득력 있다

그 시점에서 2017년 1월 미국 대통령직에 오른 트럼프는 ‘거래의 달인’임을 자처하며 오바마 전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추진할 새 주역으로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촛불 혁명과 대통령 탄핵에 이어 남북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평창올림픽을 새로운 남북협력시대 개막의 계기로 활용하였다. 그 결과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켰으나 70여년에 걸친 냉전과 휴전 65년을 맞는 한국전쟁이 남긴 무거운 숙제를 풀어 가기엔 남과 북, 미국과 중국 등 관계 당사국의 정치적·정책적 준비 부족이 어쩔 수 없는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다행히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 9월로 예정되어 있어 좋은 결실을 기대하게 된다. 남북이 모두 종전선언에 무게를 두는 것도 다행한 진전이다. 한국이 남북과 미·중이 참여하는 4자 선언을 가장 적절하다고 인정한 것이야말로 순리에 맞는 판단이다. 한국전쟁은 물론 1953년 휴전협정의 실질 당사자인 4개국이 종전을 함께 선언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형식적·실질적으로나 설득력이 강하다 하겠다. 또 종전선언이 한국전쟁을 미·북 간 전쟁으로 정의하고 한국의 전쟁 및 휴전 당사자로서의 위치를 무시하여 온 북한의 오랜 입장이 수정되기를 기대한다. 6·25전쟁의 한쪽 당사자인 한국을 정전협정의 한쪽 대표가 유엔군 사령관이란 형식 논리로 무시하는 것은 지난 60여년의 역사와 현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무시하는 설득력 없는 입장이다.
 
다음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비핵화를 약속하면서 북한이 맞이한 기회를 다시 돌아오기 힘든 호기로 반드시 성공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남북의 앞날을 이어갈 민족 모두의 미래가 달린 선택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야 한다. 비핵화와 4자 종전선언을 위한 진지한 노력이 김 위원장이 강조한 “유훈을 따른다”는 마음가짐 안에서 ‘자주적·평화적·민족대단결’ 원칙을 통한 남북 공동의 통일 노력을 다짐한 72년 7·4공동성명, 91년 남북기본합의서, 유엔 동시 가입, 비핵화 공동선언 등과 함께 비핵화 후의 평화공존체제의 초석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해 주길 바란다.
 
시론 8/15

시론 8/15

평창올림픽이 열린 2018년의 세계는 미국의 패권적 위치가 정치·안보·경제 등 여러 차원에서 흔들렸을 뿐 아니라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패권 경쟁 구도에 들어간 국제 정치와 강대국 관계의 대전환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평창올림픽이 쏘아 올린 평화다이나믹스로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이 북한의 비핵화에 합의하였다고는 하나 언제, 어떻게 집행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는 오리무중이다.
 
비핵화 후 한반도에선 이질적인 두 국가 체제, 즉 수령체제의 일당독재 국가와 촛불 혁명으로 대통령을 바꾼 한류 민주국가가 평화 공존하고,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관련 강대국 및 유엔과 더불어 ‘세기의 평화 합의’를 출범시키겠다는 구상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세기의 평화 협상’은 결코 쉽사리 이루어질 수 없다.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합의에 누가 나라를 대표하여 참여할 것이며, 그에 따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이냐 하는 근본적인 정치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선결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민주화 이후 첫 선거인 88년 4월 총선에서 선출된 13대 국회의 4당 체제가 통일특위의 1년여 활동을 통하여 완전히 합의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90년대 초 남북 간 평화공존 논의의 틀로 공식화될 수 있게 한 선례를 주목하게 된다. 한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민의 대표가 국민의 뜻을 모아 만장일치로 합의한 원칙에 입각한 평화공존 안을 실천에 옮겼다.
 
앞으로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의 합의 이행 과정을 위한 협상에서 논의될 한반도평화공존체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13대 국회의 성공적 선례에서 보듯이 20대 국회의 적극적 참여를 중심으로 정리되도록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 국민 주권 정신과 협치의 정신에 부합된다고 생각된다. 통일 논의의 공론화는 평화공존민족공동체로 향한 국민적 지혜를 모으는 게 필수적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유민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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