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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임시정부의 상징 … 꽉 막힌 담장부터 없애야

중앙일보 2018.08.15 00:02 종합 17면 지면보기
내년 3·1운동 100주년-탑골공원 이대론 안 된다 <하>
탑골공원은 역사적으로 수난을 많이 겪었다. 일제는 원래 있던 공원의 남문을 철거한 자리에 근대식 석조 대문을 세웠다. 하지만 이 문은 1967년 박정희 정부가 철거한다. [사진 문화재청]

탑골공원은 역사적으로 수난을 많이 겪었다. 일제는 원래 있던 공원의 남문을 철거한 자리에 근대식 석조 대문을 세웠다. 하지만 이 문은 1967년 박정희 정부가 철거한다. [사진 문화재청]

1904년 말 완공됐으니 조성된 지 올해 110년이 넘은 서울 탑골공원은 엄격하게 따지면 누더기 상태나 마찬가지다. 1967년 박정희 정부가 담장 둘레에 2층 높이 아케이드 상가 건물을 건립하며 타원형 공원 전체 면적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북서쪽이 잘려나갔다. 공원 서쪽을 지나 낙원상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삼일대로와 인근 보도를 확장하는 데 포함됐다. 동서남북 네 문도 고종 황제가 최초 조성할 당시의 문이 아니다. 10년 넘게 탑골공원 연구에 매달려온 한림 이.앤.씨의 최창언 이사는 “원래 네 문은 솟을삼문이었다”고 했다. 솟을삼문은 가마가 출입할 수 있도록 가운데 문 지붕을 좌우 대문보다 높게 짓는 대문을 말한다. 현재 네 문 가운데 솟을삼문은 없다. 최 이사에 따르면 ‘삼일문’이라는 현판이 붙은 남문도 원래는 지금 위치가 아니었다. 1912년 무렵 일제가 공원에 손댈 때 원래 자리에서 종로 쪽으로, 그러니까 남쪽으로 옮겨서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 탄생한 역사적 장소
고종 때 만든 4개문부터 복원을
쪼그라든 공원 면적도 되찾아야
지나친 성역화는 되레 역효과
젊은이·노인들 만나는 공간으로

 
정치적 격변들을 목격하며 수 없이 상처를 입은 탑골공원의 복원문제는 그래서 복잡해진다. 어떤 역사에 의미를 부여해 강조하느냐에 따라 공원 내 시설물, 물리적 형태가 바뀔 수 있다. 가령 대한제국 시절 최초 조성 당시의 모습을 복원하고자 하느냐, 아니면 일제에 의해 일부 변경이 가해졌지만 1919년 3·1운동 발생 시점의 모습을 복원하고자 하느냐에 따라 청사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역사를 보는 후대 사람들의 시선, 역사해석도 바뀐다. 인간 행위에 대한 기억은 당대의 요구와 독립돼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새롭게 쓰일 수밖에 없고, 항상 시대적·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며, 권력관계에 따라 선택 혹은 배제된다.(미셸 롤프 트루요 『과거 침묵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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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3·1운동에 대한 기존 해석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거사일 오후 2시 학생대표에 의해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후 전국의 기독교 조직, 고등학생 조직을 타고 들불처럼 번져갔다. 1919년 4월 중순까지 전국에서 200만 명이 가담한 유례 없는 비폭력 저항운동이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유혈진압이 벌어져 역사학자 박은식은 전국적으로 7500명이 사망했다는 통계를 내놓기도 했다. 중국, 러시아로도 번졌고, 특히 상해 임시정부 출범에 영향을 끼쳤다.
 
최근 우리 사학계의 3·1운동 연구는, 일제에 저항한 측면보다 임시정부를 있게 한 대목에 주목한다.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권력이 왕에게 있는 제국에서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국(대한민국)으로 나라의 정체(政體)가 바뀌는 신호탄이 3·1운동이었고, 그 신호탄이 울려 퍼진 공간이 탑골공원이었다는 얘기다.(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박사)
 
대신 들어선 지금의 남문. 강릉의 객사문을 본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대신 들어선 지금의 남문. 강릉의 객사문을 본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런 입장에서는 고종의 근대화 프로젝트를 높게 평가해 공원을 조성 당시 모습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최창언 이사는 “공원의 옛 영역을 되찾고, 네 문도 원래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고종의 근대화 의지, 근대 건축물로서 탑골공원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입장이다. 경기대 안창모 건축과 교수도 “공원의 물리적 시설을 개선 정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탑골공원이 품은 근대사적 가치를 밝혀 대한제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복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역시 고종 당시 원상 복원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현실적으로 공원 정상화의 큰 걸림돌은 최대 이용 계층인 노인 문제다. 2001~2002년 월드컵을 앞둔 공원 성역화 사업은 하루 2000~3000명에 달했던 노인 이용자를 공원에서 내쫓는 결과를 초래했다. 노인들은 인근 종묘공원으로 몰려갔다가 최근 들어 다시 탑골공원으로 일부 돌아오는 모양새다. 터줏대감 격인 탑골공원 노인들을 위한 대안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지만, 서울시의 공원 주변 정비사업이나 문화재청과 종로구청이 내년부터 본격 추진하는 종합정비계획에는 노인들을 위한 사업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어떤 식으로 복원되든 탑골공원이 노인 계층뿐 아니라 젊은 층, 관광객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없는 듯하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는 “일본이 과거사를 멋있게 사과하는 이벤트 같은 게 있으면 어떨까 싶다”고 했다. 가령 일본의 유명 조각가가 한국인 위안부를 상징하는 작품을 제작해 기증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3·1 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은 “계몽주의적으로 어떤 기념물을 제작해 역사성을 강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흥미를 느껴 자기 발로 공원을 찾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박사는 “역사적 의미가 넘치는 공간이지만 과거처럼 성역화하기보다는 현재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역사성을 회복하는 식으로 공원을 바꾸되, 공원을 찾는 노인들의 활동범위인 낙원상가 등 주변 정비와도 조화를 이뤄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대 안창모 건축과 교수는 “무엇보다 공원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현재 공원 담장은 고종이 조성할 당시의 원래 담장도 아니다. 담장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탑골공원 정비, 내 생각은 …
박지향(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공원 내에 3·1운동 참여한 모든 고을의 이름을 새겨 민족의 광범위한 참여를 강조”


김원(건축가)
“정비를 공원 내부에 국한하면 안되고 주변 정비도 함께 해야”


주경철(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처럼 본래의 역사성에 새로운 의미를 추가”


서해성(3·1 운동 100주년 서울시 총감독)
“최초의 근대적인 시민공간을 상징하는 가변형 의자 33개 설치”


안창모(경기대 건축과 교수)
“대한제국의 근대국가 건설 프로젝트로 탑골공원을 이해하고 원형에 근접하도록 복원”


최창언(한림 이.앤.씨 이사)
“근대화를 위해 조성한 공원이라는 점을 강조해 초기의 원형을 복원해야”
 
김호정·신준봉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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