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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 논설위원이 간다] 안철수·안희정 꺾이자 세대교체 바람도 함께 꺾였다

중앙일보 2018.08.15 00:02 종합 21면 지면보기
2007년으로 돌아간 대한민국 정치시계
여야 올드보이들이 당대표 선거 출마를 통해 정치 전면에 재등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찬 의원이 당대표 선거전의 유력 주자다. 바른미래당에선 손학규 상임고문이 선거전에 뛰어들었고 정동영 의원은 지난주 민주평화당 전당대회에서 새 당대표로 선출됐다. 최소한 10년 전 당대표나 총리 등의 요직을 거친 인사들이다. 세 사람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경쟁했다. 이젠 각각 다른 당에서 당권을 잡았거나 잡기 위해 뛰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 출신의 김병준 비대위원장 체제다.

젊은 지도자란 세계적 흐름과 달리
올드보이에게 길을 묻는 한국 정치

노무현 남자인 국회의장·총리 이어
4당 리더 ‘노무현정부 인사’ 될 수도

야권 재편은 선거법 협상과 연동돼
현행 유지땐 친문 대 반문 짜일 듯

 
지난 10일 오후 5시 청주시 장애인스포츠센터. 민주당 당대표 선출을 위한 충북 합동연설회가 열렸다. 행사장 곳곳엔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민주당. 새로운 리더십’과 같은 세대교체를 강조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렸다.
 
연설회장에 들어서는 송영길 의원에게 물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세대교체론이 잘 먹혀 들고 있나.
“보시면 알잖아요.”
 
세대교체 이슈가 현장을 압도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요. 폭발적으로 먹히고 있습니다.”
 
원고 없이 쏟아낸 그의 7분 연설엔 힘이 넘쳤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 한반도 주변 정세, KTX 오송역과 같은 지역경제 현안이 중심 주제였다. 폭발적으로 먹힌다는 세대교체 이슈는 거의 언급이 없었다. 연설을 끝낸 그에게 다시 질문했다.
 
연설에서 세대교체 공세를 듣지 못했다.
“이해찬·김진표 의원이 큰일을 맡았을 때 나이가 지금 내 나이와 같으니 내게 기회를 달라고 하지 않았나.”
 
비중 있게 거론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내가 세대통합을 얘기하고 다닌다.”
 
그러고 보니 그의 포스터 슬로건이 ‘소통·통합·혁신’이었다.
 
오후 6시. 갑작스레 소나기가 퍼부었다. 행사장 밖에선 세대교체 대상으로 지목된 김진표 의원이 빗속에 악수를 나누고 있다.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세대교체론이 먹힌다고 느끼나.
“뭐 먹히겠나. 당대표 선거인데.”
 
인근에선 누군가 보이지 않는 이해찬 의원을 찾았다. 어디선지 ‘연설 마치자마자 곧장 떠나셨다’는 답변이 들렸다. 곧바로 ‘아 이런 때 악수도 좀 하고 다니고 그러시지…’란 말이 뒤따랐다.
 
 
닮은꼴로 진행되는 여야 전당대회
 
열흘 앞으로 다가온 민주당 당대표 선거전은 겉으론 세대 대결 양상이다. 50대 송영길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을 강조한다. 본인이 세대교체 일환으로 영입된 ‘DJ 키즈’다. ‘올드보이’의 노쇠한 이미지로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인 20~30대와 소통이 되겠느냐고 파고든다.
 
하지만 내용적으론 청와대 의중인 문심(文心)이 표심의 핵심이다. 문재인 정권의 성공과 재집권이 선거 현장의 핵심 이슈다. 모두 다른 얘기지만 친문에 구애하는 마음이 같다. 송 후보는 세력 싸움에서 ‘친문 핵심’으로 분류되는 60~70대의 이해찬·김진표 후보에 밀리는 상황이다. ‘친문 좌장’으로 불리는 이 후보는 ‘문재인 팬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정동영 신임 당대표를 선택한 민주평화당의 지난주 전당대회가 비슷한 풍경이었다. 당권을 놓고 다퉜던 유성엽·최경환 의원은 정 대표를 ‘흘러간 물’로 평가하며 줄곧 세대교체론을 폈지만 먹히지 않았다. 이해찬 의원이 당대표 컷오프를 통과하자 올드보이 논란은 눈에 띄게 힘을 잃었다. 정 대표는 선거 후 “평생 처음 이해찬 덕을 봤다”고 했다. 정 대표와 서울대 72학번 동기인 이해찬 의원은 2004~2006년 노무현 정부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때 정 대표가 통일부 장관이었다.
 
 
“세대교체론, 당분간 탄력 받기 어렵다”
 
2008년 통합민주당 대표였던 손학규 고문은 10년 만에 다시 당대표 선거에 나섰다. 올드보이 손 고문의 출마를 놓고 당내선 “또 손학규냐”는 말이 있지만 “이해찬·김병준에 맞서려면 대안이 없다”는 의견도 많다. 6.13 지방선거 패배 후 ‘젊은 피’가 나서야 한다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한 달 전만 해도 하마평에 오르던 김성식 의원을 놓고 “김 의원도 벌써 환갑이다. 그러면 젊은 피라고 할 수 없지 않으냐”고들 했다.
 
독일 출국을 미루고 있는 안철수 전 대표의 뜻(안심·安心)이 관건이다. 8일 손 고문 출정식엔 안 전 대표 쪽 인사들이 다수 참석해 ‘안심은 손학규’란 주장을 만들었다. 손 고문이 당 대표를 맡아야 안 전 대표의 정치권 복귀가 수월하다는 것이다. 안 전 대표는 6.13 지방선거 때 서울 송파을 재보선에서 손 고문을 후보로 밀었다.
 
이래저래 대한민국 정치시계는 노무현 시대로 돌아가는 중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노무현 청와대의 첫 비서실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때 민정수석이었다. 2002년 대선 이후 ‘노무현 당선인의 입’ 역할을 하던 이낙연 인수위 대변인은 문 정권의 첫 국무총리가 됐다.
 
정치가 과거로 돌아가는 건 일단 정치 연령이 고령화된 탓도 있다. 20대 국회 평균 나이는 55.5세로 역대 최고령 국회다. 2020년 임기 마지막 해가 되면 59.5세로 평균 환갑이 된다. 19대는 53.9세였다. 그래도 세계적으론 정치 지도자의 나이가 급속하게 낮아지는 추세다. 왜 우린 거꾸로인가. 일단 기득권 세력이 공천이나 경선 등의 제도를 통제해 세대교체의 싹을 잘랐기 때문이다.
 
DJ 때인 1990년대 말 정치권에 발을 들인 386세대가 586이 되는 동안 신진 세력의 눈에 띄는 정치 입문이 없었다. 서울대 한정훈 교수는 “서구와 달리 우린 젊은 정치인이 올드보이와 싸울 수 있는 경쟁력과 토양이 형성돼 있지 않아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 근본적으론 안철수 전 대표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낙마로 세대교체란 큰 흐름에 제동이 걸려서다.
 
 
올드보이 재소환은 결국 계파정치 잔재
 
물론 두 사람 외에도 여야당에선 50대 기수론이 나오지만 큰 동력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경희대 서정건 교수는 “미국은 개혁에 성공한 주지사의 새로운 실험이 대선 도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우린 지방이 지나치게 약하고 중앙 정치가 지배하는 구조여서 기득권 정당을 깰 에너지를 만드는 게 어렵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치에서 가장 큰 기득권은 지역에 기반한 거대 양당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정치사는 제3당 잔혹사다. 정주영·김종필·노무현·이인제·정몽준·문국현의 3당이 있었지만 평균 2~3년의 존속 기간을 보이다 모두 소멸했다. 그나마 성공 사례에 속하는 자민련은 충청이란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원내교섭단체를 확보했다. 바른미래당 이태규 사무총장은 “각 당이 총선을 앞두고 혁신보다 상황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세대교체론은 당분간 힘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드보이 재소환은 한국 정치가 과거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한때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했던 3김(金)정치는 사라졌지만 계파정치의 잔재는 지금도 남아 정치인들을 줄 세우고 있다. 당권을 둘러싸고 친문과 비문으로 나뉜 여당이나 당이 쪼개질지도 모를 위기에 처한 제1야당이 심각한 혼란에 빠져 버린 게 계파정치의 폐해다. 여기에 지역감정을 자극해 기생하는 정치인들의 구태 또한 여전하다.
 
그러니 친노 인사들의 귀환을 놓고선 우려감이 먼저 나온다. 노무현 정부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났고, 막을 내린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돌아온 친노가 대한민국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일부에선 기대감도 보인다. 꼬일 대로 꼬인 여야 협상의 실마리를 풀자면 상대당 인사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베테랑 중진들의 역량이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더십 정비된 여야당 선거법 협상 나설 듯
 
새로운 리더십으로 개편되면 여야는 정체성과 야권 재편을 놓고 협상과 이합집산의 복잡한 수 싸움이 불가피하다. 출발점은 선거구제 개편이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은 지방선거 이후 강화된 양당제를 극복할 수 있는 선거법 개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에서 벗어나 다당제의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정동영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이 이번 정기국회 최우선 과제”라고 치고 나왔다. 손학규 고문은 독일식 비례대표제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한다.
 
하지만 개헌보다 어렵다는 선거구제 개편이다. 민주당과 한국당 중 어느 한쪽만 움직이지 않아도 이뤄지기 어렵다. 기득권 거대 양당이 중대선거구로 가자면 영호남의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그렇다고 비례대표를 늘리자면 지역구 의원 모두가 반발한다. 당장 민주당 당대표 후보들은 “개헌과 연계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주고받기에 실패한다면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판은 아마도 친문 대 반문 구도로 짜일 가능성이 있다. 같은 뿌리라 해도 이해찬·손학규·정동영과 김병준의 네 사람은 스타일이 다르고 관계도 썩 좋지 않다. ‘친노와 친문은 다르다’는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노무현 우파’다. ‘가짜 보수를 대청소하겠다’는 이해찬의 친문과 달리 그는 ‘진짜 보수를 만들어보겠다’는 쪽이다. 오히려 같은 교수 출신에 이론가인 손학규 고문과 결이 비슷하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전 때 이해찬 후보는 “(정동영은)진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맹비난한 적이 있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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