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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문재인과 김근태

중앙일보 2018.08.14 00:29 종합 27면 지면보기
신용호 정치국제에디터

신용호 정치국제에디터

2006년 12월 어느 날,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출근을 같이 한 적이 있다. 다음 해 대선에 나서려던 그와 동행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승용차 요일제가 있던 시절이라 아침 6시 30분 서울 도봉구 창동 집에서 영등포 당사까지 지하철로 이동했다. 당시 당의 상황은 몹시 어려웠다. 민심으로부터 외면받았다. 친노파와 신당파의 갈등으로 분당 얘기가 나오는 판이었다. 그는 “아직 1년이 남았다. 변화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했지만 인터뷰 내내 자신감을 보이진 못했다. 나중엔 “자유롭고 싶다”며 의장직을 내려놓으려는 뜻까지 내비쳤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속내를 숨기지 못하던 김근태는 이듬해 6월 대선을 포기한다.
 

문 대통령, 2012년 대선 경선 앞두고 묘소 찾아
“저 큰 일 한번 해볼랍니다 도와주십시요”

그때가 생각난 건 요즘 이해찬·정동영 등 올드보이의 귀환을 보면서다. 2006년 정동영과는 당권을 두고 다툰 라이벌이었고, 이해찬과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 통합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들처럼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민주화운동 시절 고문 후유증으로 얻은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뜬지 벌써 7년이다.
 
그를 생각하면 항상 아쉬웠던 건 철학과 비전에 비해 현실 정치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정치적으론 민주 대연합론자였다. 어디서든 힘을 합쳐야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게 지론이었다. “주먹 쥐고 악수할 수 없지 않느냐”는 말이 연합론자 김근태를 대표한다. 경제 철학은 사람 중심의 따뜻한 경제를 강조한 ‘경제인간화’가 근간이다. 그렇지만 대선 레이스에선 대기업에 혜택을 주는 대신 일자리를 만들게 하자는 ‘경제 뉴딜’을 내세웠다. 그때 ‘친기업 전도사’라는 말도 들었다. “일자리만 생긴다면 대기업의 경영권도 적극 보호하겠다. 민주개혁세력이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선 무능했다”고 반성했다. 운동권 출신으론 획기적이었다. ‘평화가 밥’이란 말도 그가 남긴 명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내세운 ‘평화가 경제’라는 슬로건의 저작권은 김근태에게 있지 않나 싶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문 대통령과는 뚜렷한 정치적 인연은 없다. 정치를 했던 시기가 달랐다. 얄궂은 인연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8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문 대통령을 법무장관에 임명하려 하자 김근태는 “민심을 거스르는 인사”라며 반대했다. 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갈등은 일단락됐다. 이런 ‘악연’에도 문 대통령이 김근태를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걸 보여주는 숨겨진 일화가 있다. 2012년 6월 대선 경선 출마 선언 후 마석 모란공원에 누운 김근태를 혼자 찾아간 것이다. 부인 인재근 여사에게 밖으론 알리지 말아 달라는 당부와 함께였다. 문 대통령은 막걸리 한 잔을 따르고 절했다. 그러면서 “의장님, 저 큰일 한번 해볼랍니다. 도와주십시요”라고 했다.
 
그랬던 두 사람이 지금 마주한다면 김근태는 무슨 말을 할까.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최저 지지율(58%)을 기록한 시점이다. 대연합론자답게 먼저 강력한 협치를 당부하지 않을까 싶다. “야당에게 더 이상 주먹 쥐고 악수하자 하지 마세요”라면서다. 때마침 16일 5당 원내내표와 만나기로 했다니 ‘굿 뉴스’다. 경제 분야의 조언은 좀 신랄할 것 같다. 그를 잘 아는 최상명 우석대 김근태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아마 문 대통령에게 ‘고백할 것은 고백해야 합니다.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이 방향은 맞더라도 문제는 뭐였다고 국민들에게 있는 대로 설명하세요. 무엇을 하려 했고, 뭐가 잘 안됐는지 객관적으로 고백하세요. 그런 후 이해를 구하고 바로잡아 나가세요. 일방적인 건 오히려 손해입니다. 요즘 갑작스런 혁신성장 행보는 좀 어리둥절합니다’라고 했을 겁니다.”
 
이런 당부는 특히 김근태와 가까웠던 문 대통령 참모들과 여당 의원들이 귀 기울였으면 한다. 이 정부엔 김근태와 가까웠던 인사들이 요직에 적지 않다. 김근태는 생전 임종석 비서실장을 무척 아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를 불러 상의했던 김근태다. 김종천 의전비서관은 의원실 보좌관 출신이다. 여당에선 이인영·유은혜·기동민 의원 등이 대표적인 김근태 사람들이다. 원혜영·우원식·우상호 전 원내대표도 그를 빼고 얘기할 수 없는 이들이다. 이들이 문 대통령에게 협치를 더 얘기하고 탄력 있는 경제 정책을 조언해야 한다. 특히 모두들 ‘소리 나는 것을 두려워 말자’고 했던 김근태를 기억할 거다. 김근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쓴소리를 마다치 않았다. “당청 간에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고 했던 그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청와대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된다는 비판이 계속되는 요즘이다. 민주당 정부는 없고 문재인 정부만 보인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 지나온 날보다 남은 날이 많은 정부다.
 
신용호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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