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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오빠 생각

중앙일보 2018.08.14 00:24 종합 28면 지면보기
민은기 서울대 음악학 교수

민은기 서울대 음악학 교수

영화를 본 지 오래 지났어도 떠올릴 때마다 가슴 저리는 장면이 있다. “꼭 돌아온다고 약속했잖아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뭐라고 말 좀 해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백발노인이 된 원빈은 전쟁의 포화 속에 헤어졌던 형의 유해 앞에서 이렇게 오열한다. 동생 대신 자신을 희생하면서 곧 따라가겠노라 약속한 형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세월이 절절히 묻어나는 통한의 절규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남으로 내려오신 내 아버지가 70년 만에 누이를 만나러 간다

며칠 전 내 아버지의 전화 목소리가 꼭 그랬다. “네 고모가 죽었단다.” 이 말을 하시곤 울음이 복받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긴 세월 꼭꼭 눌러왔던 슬픔이 한꺼번에 솟구친 거다. 아버지가 이산가족 상봉자 명단에 들었다는 통보를 받은 후 한 달 반 만에 전해진 소식이다. 헤어진 후 생사도 모르고 살아온 70년. 살아 있기만을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건만 큰고모가 24년 전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49살밖에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1·4 후퇴 때라 했다. 군인들이 민가에까지 들어와 시가전을 벌였고, 그 난리 통에 4남매의 아버지가 총에 맞고 며칠 후 어머니마저 열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렇게 그들은 고아가 되었고, 17살짜리 장남은 졸지에 가장이 되어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이때 인민군이 강제징집을 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겁에 질린 소년은 마을 청년들을 따라 남쪽으로 피신을 결심한다. 짐을 챙겨 떠나려는 순간 동생들은 울면서 가지 말라 매달렸고, 오빠는 그들을 달래며 꼭 돌아오마고 약속했다. 한두 달만 기다리라고.
 
이틀 만에 남한에 도착한 내 아버지는 뒤따라 피난 나온 사람들로부터 막냇동생이 죽었다는 비보를 들었다. 그것이 마지막이다. 그 후로는 어떤 고향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영겁과도 같은 긴 세월을 살아야만 했다. 전쟁과 분단을 경험한 나라에서 기구한 사연 하나씩 없는 집이 어디 있으랴만 그래도 나에겐 내 아버지 이야기가 제일 슬플 수밖에. 북에 두고 나온 동생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까.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 낯선 땅에서 살아낸 삶은 또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까.
 
어디 그것이 아버지만의 고통이랴. 북에 남겨진 어린 동생들도 오지 않는 오빠를 기다리며 밤마다 울었을 테니. 오빠가 사무치게 그리울 땐 ‘오빠 생각’을 부르면서.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1925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북한에서도 널리 애창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뻐꾹새가 우는 봄이 가고, 뜸북새가 우는 여름도 지나갔을 게다. 찬바람이 불어도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졌겠지.
 
그래도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막내 고모님은 북한에 살아 계신단다. 큰고모의 사망 소식에 무너진 마음을 위로하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에게 마지막 남은 동생이다. 그러나 막상 만날 수 있다 하니 아버지 심경이 복잡하기도 하다. ‘헤어질 때 여섯 살 꼬마였던 동생을 알아볼 수나 있을까.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돌아가겠단 약속을 못 지켜서 얼마나 미안한지, 그 긴 세월 얼마나 애타게 보고 싶었는지 다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을 과연 말로 할 수나 있을까. 만남을 실감하기도 전에 다시 맞을 기약 없는 헤어짐은 또 어찌하랴.’
 
6·25가 발발한 지 어언 68년. 사망자도 많았지만 생이별을 당한 가족들도 무수히 많다. 이들의 죽기 전 소원은 잃었던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것. 떠나온 고향, 헤어진 가족 생각은 해가 가고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생생하고 절실하다. 아픔이 큰 만큼 남북을 가로막는 장벽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오래고 인공지능은 이제 언어의 장벽도 없앤다는데 우리의 장벽은 언제나 사라질까. 그래도 다 같이 힘껏 외치면 언젠가는 무너지지 않을까. 견고했던 여리고 성처럼 말이다.
 
민은기 서울대 음악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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