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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시시각각] 어린이집, 그 망각의 복수

중앙일보 2018.08.14 00:19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가슴이 아렸다. 2m. 현관과 주차장과의 거리다. 네 살 아이는 지글지글 끓는 통학차량에 갇혀 7시간을 울부짖었다. 그 긴 시간, 누구도 곁을 살피지 않았다. 두세 걸음이면 될 것을. 동두천 어린이집의 비극은 그렇게 발화됐다.
 

공짜 보육하다 품질은 뒷전
2m 곁도 외면, 아이가 웃을까

한적한 마을에 있는 3층짜리 어린이집은 여전히 운영 중이다. 지난달 17일 사고 당시 97명이던 원아가 50명으로 줄었을 뿐. 문전박대하던 원장이 현관으로 나왔다. “죄송하다. 나도 억울하다. 매뉴얼대로 했다.” 그러곤 문을 닫아 버렸다. 매뉴얼대로 뭘 했다는 건지. ‘명문 인성학교의 올바른 인성교육’이란 현수막이 어색해 보였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어린이집은 비좁은 도로 옆 양옥 가정집에 있었다. 동두천 사고 다음 날, 쉰아홉 보육교사가 11개월 된 아이를 억지로 재우려 ‘이불 학대’를 해 참극을 불렀다. 주변은 주택과 공영주차장, 어수선했다. 집주인은 “아이들이 다른 데로 옮겨 폐원했다”며 집값 걱정만 했다.
 
두 현장엔 망각의 복수가 어른거렸다. 2013년 통학버스에 치여 숨진 김세림양 사고 이후 승하차 확인을 의무화한 ‘세림이법’이 시행됐고, 2005년 인천 송도 어린이집 ‘핵 주먹’ 사건을 계기로 폐쇄회로TV(CCTV) 설치가 의무화됐다. 제도가 있으면 뭐 하랴, 금세 잊는 걸. “인간의 기억은 시간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보다 더 빠르게 말이다.
 
누가 아이를 죽였나. 세계사에도 유례없는 0~5세 무상보육에 정치공학적으로 동조한 보수·진보 정권, 아이 머릿수를 세며 주판알을 튕긴 어린이집, 어른들의 ‘정성’ 불감증이 공범 아닐까. 무상 포퓰리즘 바람을 타고 2010년부터 급증한 어린이집은 현재 전국에 4만 개를 넘는다. 가정 어린이집이 2만 개, 민간 어린이집이 1만4000개다. 한때 돈 있는 집에선 “빵집 내 줄까, 어린이집 내 줄까”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를 타고 지난 12년간 저출산 예산 126조원 중 80조원이 보육에 들어갔다. 보육의 질과 환경 개선엔 아둔했다. 제 자식 하나 돌보려 해도 상당한 인내와 정성이 필요한데 남이 그만하랴. 보육교사 1인당 아동 수는 규정상 만 0세 3명, 1세 5명, 2세 7명, 3세 15명, 4~5세 20명이다. 혼자 감당하기 쉽지 않다. CCTV가 있어도 엽기를 발산한다. 화곡동에서 그랬다.
 
보육교사는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하는 유치원교사와는 다르다. 온라인 교육과 짧은 실습만으로도 자격증을 딴다. 급여는 최저임금에 턱걸이한다. 열심히 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맡긴다. 공짜 유혹도 크다. 집에서 보면 손해라는 인식 말이다. 모순을 알면서도 정부는 가속페달을 밟는다. 부모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아동을 8시간까지 돌봐주겠단다. 재정 형편상 2020년께 시작한다. 총선이 한창일 때다. 속이 보인다.
 
저출산은 심각하다. 30만 명 벨트도 무너질 위기다. 정부는 또 당근을 내민다. 다음달부터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0~5세 가정에 아동수당 10만원을 준다. 아기 울음소리가 많아질까. 발상을 뜯어고쳐야 한다. 공짜 프레임을 품질 프레임으로 바꿔야 한다. 대통령 한마디에 ‘잠자는 아이 확인 장치(Sleeping Child Check)’를 설치한다고 난리 친들, 해법이 될 리 없다. 복지 선진국처럼 부모 소득에 따라 보육비용을 차등 부담시키고 보육의 질과 시설 개선에 집중하는 재설계가 시급하다.
 
아이가 웃어야 한다. 최고의 가르침은 아이들을 웃게 만드는 것이라는 철학자 니체의 말이 와 닿는다. 2m 곁을 살피자. 정성이다. 정성은 망각의 복수를 막을 수 있다. 동두천·화곡동 아이들이 그리 말한다.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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