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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흑금성 폭로 'DJ 죽이기 공작'…정동영 "실제 오익제 입북에 으악"

중앙일보 2018.08.13 00:03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민석의 시선] 정동영과 '흑금성', 그리고 '안중근 프로젝트'
월북한 오익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평양도착 모습.

월북한 오익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평양도착 모습.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얘기도 있다. 그 얘기가 진짜 영화로 나왔다. 윤종빈 감독, 황정민 주연의‘공작’. 안기부 공작원 ‘흑금성’스토리다. 흑금성이란 이 어두침침한 이름은 암호명.
원래 흑금성은 군인이었다. 방탕한 생활로 빚을 왕창지고 1993년 군에서 쫓겨나며 ‘반골’이 된다.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이 그의 아내도 몰랐던 안기부의 작전이었다. 멀쩡한 사람을 망가뜨리면서 벌인, 한 사람의 인생을 건 대북 침투공작은 대성공이었다. 
 
 97년쯤 흑금성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까지 선이 닿았다. 그런데 특급스파이 흑금성이 김대중(DJ) 국민회의 총재의 집권을 막기위한 안기부와 북측의 수상한 움직임까지 알아차렸다.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황정민 분)이 북측 핵심인사 리명운(이성민 분)를 베이징에서 만나는 장면.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황정민 분)이 북측 핵심인사 리명운(이성민 분)를 베이징에서 만나는 장면. 사진=CJ엔터테인먼트

흑금성은 북풍공작을 막기 위해 은밀히 움직였다. 이제부터는 영화얘기가 아니다.
 
정동영, 흑금성과 면담…DJ에 필담으로 수시보고
97년 6월. 여의도의 한 카페에 흑금성과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이 마주앉았다. 지금은 민주평화당 대표다. 정동영 대표에게 당시 얘기를 물어봤다.
어떻게 흑금성을 만났나.  
“MBC 기자중 흑금성의 고교(청주고) 선배가 있었죠. 그를 통해 접촉제안이 들어왔어요. 음습한 냄새가 나서 처음엔 거절했는데 한사코 만나자고 해 만나보니 깜짝 놀랄 얘기를 하더라고.”  
첫 만남에서 흑금성은 안기부의 DJ죽이기 공작을 폭로했다. 그러면서 “신호탄이 천도교령 오익제의 입북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실제로 두달뒤인 8월15일 평양의 방송에 오익제가 나타났다.
“전부 ‘으악’했지. 현직 국민회의 지도위원회 의장(오익제)이 평양방송에 나왔으니…. 정말 초주검상태였어요.”
지난 11일 중앙SUNDAY와 인터뷰를 한 영화 '공작'의 실제 주인공 흑금성 박채서씨. 그의 존재는 98년 안기부 간부들이 구명로비를 벌이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대성 파일' 사건으로 노출됐다. 김경빈 기자

지난 11일 중앙SUNDAY와 인터뷰를 한 영화 '공작'의 실제 주인공 흑금성 박채서씨. 그의 존재는 98년 안기부 간부들이 구명로비를 벌이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대성 파일' 사건으로 노출됐다. 김경빈 기자

그날, 8월15일 이후 정동영은 여의도 M아파트에 안가를 마련하고 흑금성을 만났다. 흑금성의 존재도 DJ에 보고했다. DJ 또한 존재를 알고 있었을 정도니 대선정국에서 흑금성의 비중은 컸고, 수면 아래에선 긴박한 움직임이 있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처음 흑금성에게 들은 얘기를 보고하는데 주도면밀한 총재(DJ)가 손가락으로 ‘쉿’하는 시늉을 하면서 A4용지, 백지를 내밀었어요, 국민회의 당사(여의도 한양빌딩)도 감청된다고 본거죠. 흑금성 만난 얘기는 그래서 쭉 필담으로 했어요. 흑금성 만나서 들은 얘기를 적어서 보고하면, DJ는 고개를 끄덕이고.”
오익제건은 어떻게 넘겼나.    
“다음날(8월16일) 제가 대변인 브리핑에서 ‘기획입북’의혹을 제기했어요. 간신히 물타기 한거죠. DJ가 원래 칭찬은 잘 안하는데 그때는 ‘정말’ 잘했다, 쪽집게 같이 핵심을 뚫었다‘고 하더라고요.”
 
국민회의 대변인 시절의 정동영. 정동영은 이 무렵 흑금성과 비밀 접촉하며 그 결과를 당에 보고하고 있었다. [중앙포토]

국민회의 대변인 시절의 정동영. 정동영은 이 무렵 흑금성과 비밀 접촉하며 그 결과를 당에 보고하고 있었다. [중앙포토]

 
안기부는 가만있던가.
“왜요. 안기부가 고발해서 검찰에도 끌려갔다 왔지요. 정권교체가 안됐으면 그 사건으로 저를 엮었을 거예요.”
그해 11월에는 북에서 오익제가 DJ앞으로 편지를 보낸 사건이 또 일어났다. 안기부는 이 편지를 고리로 DJ측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려했다. 막판에는 ‘오익제 녹음테이프’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DJ에게 붉은 물을 들이기 위해 대선을 오익제 판으로 만드려한 셈이다.    
“오익제 평양출현사건에서부터 20건 정도의 악재가 발생했던가. 군 출신 천용택 의원, 이종찬(훗날 국정원장), 나, 신건(역시 국정원장 역임), 나중에 안기부 기조실장 출신 엄삼탁까지 북풍TF팀을 만들어 육탄으로 악재방어를 했지요. 정말 피말렸어요. DJ가 당선되고나니 처음 든 생각이 ‘아, 감옥에는 안가겠구나’였으니.”
검찰 소환까지 당한 마당이었으니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동영-흑금성 라인의 정보교환은 북풍공작을 무력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어느 특정 정당, 정치인의 승리를 평가하려하는 말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안기부의 그런 음습한 정치공작이 지금까지 한국정치를 좌우하고 있다면. 등골이 오싹할 뿐이다.    
 
김정일에 ‘안중근 프로젝트’ 제안
북풍공작 사건에서 보듯 안기부와 검은 거래도 불사할 수 있는 북한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묘한 시기에 오익제 입북이나 남쪽으로서의 서신발송 같은 사건이 어떻게 일어날수 있을까. 하지만 한편으론 평화를 위한 대화파트너임을 부인할 수도 없고, 부정해서도 안된다.  
정동영은 8년뒤인 2005년 6월17일. 제2차 핵위기가 진행중이던 때에 노무현정부 통일부장관 겸 NSC의장 신분으로 방북해 김정일과 만났다. 6ㆍ15 남북민간이 공동으로 벌이는 행사에 정부참관단 자격으로 방북했다가 김정일을 만나고 돌아왔다. 김정일은 당시 곰발바닥 요리까지 내놓고 정동영을 환대했다고 한다.  
 
2005년 김정일 위원장이 방북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5년 김정일 위원장이 방북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당시 면담성사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였는데.
“사실 방북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모두 면남 가능성이 낮다고 보셨죠.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만나서 돌파구를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방북전 한총련이 금강산에서 행사를 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NSC 내부에선 반대가 많았어요. 하지만 나는 ‘금강산은 우리 관광영토다. 주민등록증 있으면 다 가는 곳인데 왜 못보내냐. 말썽 생기면 내가 자리를 내놓겠다’고 하고 밀어부쳤죠. 한총련에는 ‘사고 치지 마라’고 달래서 결국 금강산에 보냈어요. 그랬더니 범민련도 간다고 하더라고. 범민련도 신신당부해서 보냈더니 별 사고는 없었고. 그리고 나서 방북을 했는데, 북에 갔더니 당시 (카운터 파트인)통일전선부장 임동옥이, 지금 김영철 보다 더 강골인 사람이에요. 그 임동옥이 ‘장군님이 한총련과 범민련을 금강산에 보낸 것을 보고 통일에 대한 의지를 평가하셨다’며 면담시간을 통보해주더라고요. 물론 가기 전에 장치를 하나 더 하고 갔어요. 방북전 통일부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만나면)‘중대제안’을 하겠다고 한거죠.”  
중대제안?
“내부적으로 ‘안중근 프로젝트’라고 이름 지었죠. 그것을 입안한 친구가 박선원(현 국정원장 특별보좌역)이에요 박선원. 핵개발 논리가 전기부터, 에너지를 위해 원자력발전하겠다는데서 출발하는 것 아니에요? 핵을 포기하면 전기(200만KW)를 주겠다는 기가막힌 아이디어였지. 한전관계자를 불러 비밀회의를 해가며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죠. 북에 도착하니 그쪽에서도 '중대제안이 뭐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김 위원장 만나면 얘기하겠다'고 버텼지.”
안중근프로젝트에 대한 김정일의 반응은.
“김 위원장은 대화중 망설임이 없어요. 1초도 망설이지 않는, 즉문즉답이죠. 그런데 안중근 프로젝트를 얘기하니까 한참 생각하더라고. 내놓은 대답이 ‘제안을 잘 경청했습니다’예요. 경청이란 표현을 쓰더라구요. 그러곤 ‘숙고해서 답을 드리겠습니다’고 했어요. 유일하게 그 대목에서만 그렇게 얘기했지요. 회담을 마치고 나가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핵심을 뚫고 총명한 특사를 보내셨군요’라고 하더군요. (프로젝트가)마음에 든다는 거지요. 당시 서훈 국정원장(당시 국정원 근무)도 배석했어요.”
김정일의 심사숙고 결과는 3개월뒤 지금처럼 북핵포기와 체제보장을 골자로 하는 9ㆍ19공동성명으로 나타났다. 
한반도 핵문제의 출발점이 바로 9ㆍ19공동성명이다. 상황은 지금 9ㆍ19 이전으로 되돌아가 있다. 그의 경험과 지혜도 여전히 남북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그는 남북문제에 관해선 문재인정부에 도움을 주고 있는 입장이다. 
그때만해도 여권 핵심인사이던 정동영의 ‘시크릿 파일’을 조금 열어보니 이처럼 실로 영화같은 현대사와 마주할 수 있었다.  
 
2007년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무렵의 정동영과 이해찬.두 사람은 서울대 72학번 동기생이다. [중앙포토]

2007년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무렵의 정동영과 이해찬.두 사람은 서울대 72학번 동기생이다. [중앙포토]

정동영은 얼마전 야당 대표로 뽑혔다. 여당(열린우리당) 대표와 야당 대표를 동시에 하는 첫 케이스다.  
첫 여당 대표 출신 야당 대표인데.
“그런가? 이해찬도 있네.”
이해찬 의원은 2012년 야당 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아직은 아니지만,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이기면 두번째 케이스다. 만약 여당-야당 입장을 다 아는 사람끼리 만나면 말이라도 잘 통하지 않을까. 
그는 마치 ‘이해찬 대표’를 기다리고 있는 것 처럼 말했다.
“이해찬 만큼 젊은 정치인이 없어요. 청년시절(두 사람은 서울대 72학번 동기) 동대문 유치장에 한달 같이 있었는데, 가장 냉철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올드보이라고들 얘기하는데, 생각의 나이는 가장 젊은 사람이 이해찬입니다.”
 여의도에는 아직 올드보이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  
민주당, 민평당, 바른미래당에 동시다발로 논쟁이 벌어졌다가 정동영은 먼저 당원의 선택을 받으면서 한발 빠졌다. 그가 올드보이 논란을 뚫을 수 있었던 데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요즘같은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한번 노련하게 일해보라고 선택한 것 아닐까. 
 
국민입장에서야 사실 올드보이면 어떻고, 영보이면 어떤가. ‘꿩 잡는 게 매’지.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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