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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시듦’이 낯선가요?

중앙일보 2018.08.13 00:02 경제 4면 지면보기
폭염이 밥상 물가까지 들썩이게 하고 있다. 무름병·시듦병·풋마름병 등 병해충이 퍼지고 생육이 지연되면서 생산량이 줄어 채소·과일 값이 급등했다. 장맛비가 그치기 무섭게 폭염이 이어진 탓이다.
 
농작물이 말라 죽거나 생기가 없어지는 현상을 가리켜 ‘시듦병’ ‘시듦 증상’으로 표기하는 것에 대해 낯설다는 이가 적지 않다. 입말도 마찬가지다. ‘시듦’보다 ‘시들음’이 더 익숙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토마토가 시들음병으로 고사했다” “채소는 강한 햇볕이 지속되면 시들음 증상과 병해충의 위험이 높아진다”처럼 쓰는 경우가 많다. 이 ‘시들음’의 올바른 표기법은 ‘시듦병’ ‘시듦 증상’이다.
 
‘시듦’을 ‘시듬’으로 적는 경우도 있다. ‘무르다’ ‘마르다’의 명사형은 ‘무름’ ‘마름’이 맞지만 ‘시들다’의 명사형은 ‘시듬’이 될 수 없다. 어간이 ‘ㄹ’ 받침으로 끝나는 용언의 명사형을 만들 때 저지르기 쉬운 실수다. ‘ㄹ’을 맘대로 생략해선 안 된다. 어간의 ‘ㄹ’을 살려 줘야 한다.
 
용언(동사와 형용사)을 명사형으로 만드는 법칙은 어렵지 않다. 받침의 유무에 따라 어간에 명사 구실을 하게 하는 어미 ‘-ㅁ’ 또는 ‘-음’을 붙인다. 용언의 어간에 받침이 없을 때는 ‘-ㅁ’을 붙이면 된다. 돌리다는 ‘돌림(←돌리-+-ㅁ)’, 열리다는 ‘열림(←열리-+-ㅁ)’이 되는 것이다. 용언의 어간에 받침이 있을 때는 ‘찾음(←찾-+-음)’ ‘썩음(←썩-+-음)’과 같이 ‘-음’을 붙여 명사형을 만든다.
 
문제는 용언의 어간이 ‘ㄹ’ 받침으로 끝나는 경우다. 용언의 어간에 받침이 없을 때와 마찬가지로 ‘-ㅁ’을 붙여 명사형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쉽다. 낯설다는 ‘낯섦(←낯설-+-ㅁ)’, 만들다는 ‘만듦(←만들-+-ㅁ)’, 줄다는 ‘줆(←줄-+-ㅁ)’, 힘들다는 ‘힘듦(←힘들-+-ㅁ)’이 된다.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하면서 ‘ㅁ’이 받침으로 흡수되는 원리다. 한글맞춤법 제19항에 따라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어야 하므로 ‘낯섬’ ‘만듬’ ‘줌’ ‘힘듬’과 같이 ‘ㄹ’을 생략하고 표기하면 안 된다.
 
이은희 기자 lee.eunhee@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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