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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친구?"···정동영·손학규·이해찬의 정치역정

중앙일보 2018.08.12 06:00
“친구 소리 말라” “또 나갈까 말 못하겠다” 공방 3인방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07년 9월 27일 광주.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더불어민주당 전신) 대선 후보들이 합동 연설을 위해 모였다.  
 
이틀 동안 경선 일정을 중단했던 손학규 후보의 복귀 이후 처음으로 정동영ㆍ이해찬 후보까지 다 모인 자리였다. 셋은 손을 잡는 포즈와 함께 토론을 시작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곧 험악해졌다.
정동영, 이해찬,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예비후보들이 2009년 KBS 라디오 열린토론에 참석했다.

정동영, 이해찬,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예비후보들이 2009년 KBS 라디오 열린토론에 참석했다.

이해찬=“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정동영 후보가 김대중 정권의 호남 편중 인사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습니다…참 나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동영=“이해찬 후보와 저는 서울대 재학 시절 동기로….”
이해찬=“아, 친구 이야기 그만 좀 하세요.”
 
지지율 선두를 달리던 정 후보가 친구임을 강조하며 비켜 가려고 하자 이 후보가 버럭 성을 낸 것이다. 둘은 서울대 72학번 동기다. 나이도 이 후보가 1952년, 정 후보가 53년생으로 비슷하다. (※손 후보는 47년생으로 이들보다 5살가량 더 많다.)
 
손 후보와 다른 후보 사이에도 공방이 벌어졌다. 6개월 전 한나라당에서 탈당해서 넘어온 것이 쟁점화됐다. 
 
“아직도 한나라당 후보의 말과 비슷하다. 공부 좀 더 하라”(이해찬), “그런 한나라당과 대연정 하자고 국회 다녔냐”(손학규), “손 후보 공격했다간 또 나가실까 봐 못 하겠다”(이해찬), “정치에는 기본 예의란 게 있다”(손학규) 등 험한 말이 오갔다.  
 
“김영삼 정부가 민주개혁 1기 정부라는 인식에 놀랐다”(정동영)는 공격에 손 후보는 “전두환, 노태우 씨 단죄한 정부가 민주개혁 정부가 아니면 뭐냐”고 맞섰다. 
정동영 후보 축하하는 이해찬 손학규 후보.

정동영 후보 축하하는 이해찬 손학규 후보.

셋은 혈투에 가까운 경선을 완주했고 정동영ㆍ손학규ㆍ이해찬 순으로 1~3위가 정해졌다.    
 
이후 이들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정 의원은 경선 승리로 대선에 나갔지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크게 패했다(이 48.7%, 정 26.1%). 그다음부터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8년 18대(서울 동작을), 2012년 19대 총선(서울 강남을), 2015년 재보궐 선거(서울 관악을)에 출마했지만 계속 떨어졌다. 
 
3전 4기 끝에 2016년 20대 총선(전북 전주병)을 통해 국회로 복귀한 그는 지난 5일 민주평화당 전당대회에서 전체 68.57% 지지를 얻어 대표직을 거머쥐었다.  
 
같은 당에서 대선 경쟁…지금은 각자 당 대표로 채비
 
손학규 후보는 대선 경선에서 진 이듬해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를 맡으며 당을 수습했다. 그 후 2년여 동안 강원도 춘천에서 칩거하다가 2010년 10월 민주당 대표로 선출되며 현실정치로 돌아왔다.  
 
2011년에는 경기 성남 분당을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 2012년 다시 대선을 노렸지만, 문재인 후보에게 패했다.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며 독일로 떠났던 그는 2014년 경기 수원병 재보궐 선거에 낙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민주통합당 지도부및 민주진보통합 대표자 연석회의. 국회. 2011.12.18 오른쪽부터 최민희,정동영,이해찬,손학규,문재인,정세균,원혜영,이용득

민주통합당 지도부및 민주진보통합 대표자 연석회의. 국회. 2011.12.18 오른쪽부터 최민희,정동영,이해찬,손학규,문재인,정세균,원혜영,이용득

다시 칩거해 들어간 그는 대선이 다가오자 다시 움직였다.
 
2016년 민주당에서 전격적으로 탈당, 2017년 국민의당에 입당하며 안철수 의원과 손을 잡았다. 
 
그해 5월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안 의원과 당내 경선에서 경쟁했으나 또 졌다. 2007년, 2012년, 2017년 세 차례나 대선에 도전했지만 결국 본선엔 나가지 못한 것이다. 손 후보는 8일 바른미래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일하게 맞담배를 피울 정도로 가까운 핵심 측근이었던 이해찬 의원은 이후 ‘친노 폐족’이란 말을 들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총선에는 출마하지 못했다.
 
4년 뒤인 2012년 19대 총선에선 오랜 지역구였던 서울 ‘관악을’을 떠나 세종특별자치시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았던 2016년엔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친노 패권주의를 내쳐야 한다"는 명분에 밀려 공천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와신상담 끝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7선)됐고, 화려하게 복당했다.
 
그는 25일 치러지는 민주당 당 대표 경선의 가장 강력한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 의원과 손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면 정동영-손학규-이해찬은 11년 만에 정국 운영과 차기 총선 승리 등을 놓고 재대결을 벌이게 된다. 
 
정치권에선 “경륜을 통한 정치를 할 것”이란 기대와 “노령화 사회로 가는 부작용일 뿐”(정두언 전 의원)이란 평가가 엇갈린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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