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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은행' 가보셨어요? 체크카드 발급 기자가 해보니

중앙일보 2018.08.12 04:00
지난 8일 오전 9시, 우리은행 노들역 출장소 ‘위비 스마트 키오스크’ 앞에 섰다. 체크카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체크카드 발급 버튼을 누르고 기기에서 나오는 안내음성에 따라 신분증을 스캔했다.
 
기기 왼쪽에 놓인 수화기를 들자 눈앞 모니터에 상담 직원의 얼굴이 나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상담 직원에게 “여기서 체크카드를 만들 수 있을까요”라고 되물었다. "물론 만들 수 있다"는 상담원 안내에 따라 기기(스마트 키오스크) 오른쪽에 위치한 카메라에 얼굴을 댔다. 신원 확인을 위해서였다.
 
카메라를 쳐다보고 서 있으니 수화기 너머 상담 직원이 “조금만 뒤로 물러나 보실래요”라고 말했다. 얼굴을 기기에 너무 가까이 댄 탓에 인식이 잘 안 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상담 직원 역시 화면을 통해 기자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전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체크카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장의 약관과 동의서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작업은 간단했다. 일반 창구였다면 약관 종이 위 형광펜으로 색칠된 곳마다 일일이 체크하고 사인해야 됐지만, 디지털 키오스크에선 터치 한 번만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었다.
 
동의서를 확인하고 터치스크린 화면을 다음 페이지로 넘기려 하기 직전, 상담 직원이 "화면을 올려보세요, 앞에서 동의서 하나를 작성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말했다. 상담원 안내에 따라 화면을 위로 올려보니 실제로 필수동의서 한장이 공란으로 남아있었다. 상담원은 기자가 체크하는 문서까지 꼼꼼히 다 확인하고 있었다.
 
결제 한도까지 설정하고 나니 카드 발급이 시작됐다. 기자는 선 자리에서 곧바로 체크카드를 받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상담원에게 "지금 여기서 체크카드가 나오느냐"고 두 번이나 물어봤다. 실제로 기기 오른쪽 하단에서 체크카드 한장이 머리를 내밀었다. 막 나온 체크카드에는 기자 이름이 정확히 찍혀있었다.
 
은행 점포 무인화는 최근 들어 속도를 높이고 있는 금융 트렌드다. 무인 은행의 핵심은 디지털 키오스크다. 디지털 키오스크는 계좌 개설ㆍ체크카드 발급ㆍ대출ㆍ외환 등 기본적인 창구업무에 더해 안면 인식, 생체인증 등의 새로운 업무까지 수행할 수 있는 최신 기기다. 스마트기기를 쉽게 다루는 고객들은 굳이 창구를 찾아갈 필요가 없이 이곳에서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노들역 출장소를 '위비스마트브랜치'로 꾸미고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위비 스마트 키오스크를 가동한다. 우리은행은 이런 방식의 스마트지점을 고려대학교와 갈매에도 운영하고 있다.
KB국민은행ㆍ우리은행ㆍ신한은행 디지털키오스크에서는 생체인증 등록, 체크카드 발급, 입출금계좌 개설 등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정용환 기자

KB국민은행ㆍ우리은행ㆍ신한은행 디지털키오스크에서는 생체인증 등록, 체크카드 발급, 입출금계좌 개설 등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정용환 기자

 
우리은행뿐 아니다. 신한은행도 최근 서울 중구 신당동 남산타운아파트, 성남 판교 네이버 신사옥 등에 초소형 무인화 점포인 ‘유어 스마트 라운지’를 연달아 개설했다. 이달 중엔 고려대학교 인근에도 이를 추가로 열 방침이다. KB국민은행 또한 강남역, 가산 디지털 종합금융센터 등 일부 영업점에 설치한 디지털 키오스크 ‘스마트 텔러 머신’을 이달 중 최대 30대까지 확대 설치할 예정이다.
 
무인화 점포의 증가는 기존 유인 점포의 감소와 맞물려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시중은행 국내 영업점포 수는 2012년 말 4720개를 기록했다가 2017년 말 3860개로 줄었다. 5년 동안 18.2%의 영업 창구가 사라진 셈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급하게 ‘은행지점 폐쇄절차 모범규준’을 만들겠다고 밝힐 정도로 그 속도가 빠르다.
시중은행은 최근 영업점포와 직원을 동시에 줄여나가는 추세다. [자료 은행연합회 통계]

시중은행은 최근 영업점포와 직원을 동시에 줄여나가는 추세다. [자료 은행연합회 통계]

 
다만 무인화 점포로 인해 은행 무인화가 본격화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속속 들어서고 있는 무인화 점포들은 사실상 디지털 키오스크가 들어있는 부스 수준이다. 일반적인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맨눈으로 크게 구분되지도 않는 탓에 오히려 간단하게 업무를 보려고 기기를 만진 고객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
 
실제 지난 7일 오전 10시쯤 한 시중은행의 디지털 키오스크를 한참 만지다가 밖으로 나온 찾은 정명순(60ㆍ여)씨는 “돈 좀 찾으려고 들어왔다가 뭘 자꾸 누르라기에 눌러봤는데 도저히 마음먹은 대로 되지가 않는다”며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엔 복잡하다”고 말했다.
 
기계가 여전히 미세한 부분에서는 영업창구의 기능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날 적금통장에 돈을 넣기 위해 같은 지점을 찾아온 강지민(32ㆍ여)씨는 “헛걸음했다. 전화 연결이나 상담은 원활하게 됐지만 정작 적금통장에 돈을 넣으려면 창구를 방문해야 한다고 하더라”며 인근 지점을 찾아 발길을 돌렸다.
 
이런 이유 탓에 각 은행 디지털 키오스크 주변엔 여전히 사람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은행 노들역 출장소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되는 일반 창구가 두 곳 있다. KB국민은행 스마트 텔러 머신은 일반 영업점 한쪽에 서 있다. 스마트 기기를 다루는 데 서툰 고객들은 주변 직원의 도움을 받아 디지털 키오스크를 이용하거나 아예 창구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편을 선택한다.
 
무인화 점포의 증가가 내포하는 어두운 측면도 있다. 기존 유인 점포의 감소로 인한 은행원 감축, 다시 말해 양질의 일자리 감소다. 국내 시중은행은 계속해서 직원 수를 줄이는 추세다. 은행연합회 통계에 따르면 2013년 말 7만6511명이었던 시중은행 임직원 수는 올해 3월 말 6만6239명으로 4년 3개월 만에 1만명 넘게 줄었다. 지난해에만 4대 시중 은행에서 4300여명의 임직원이 희망퇴직으로 떠났다.
  
오평섭 국민은행 영업그룹 부행장은 “아직은 무인화가 초기 단계지만 은행들이 점차 디지털 키오스크를 확대 적용하게 되면 완전 무인점포, 최소인력 점포, 혼합 점포 등 다양한 형태의 점포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며 “일각에선 은행 무인화가 가속할수록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하지만, 앞으로 은행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고객 상담을 하는 전문 인력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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