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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할머니 공식후견인으로 인생 후반 보람 찾아

중앙일보 2018.08.10 06:00
[더,오래] 인생환승샷(57) 부동산 중개업자에서 남자 요양사로, 석의준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할머니 댁에서 설거지를 하는 모습. [사진 석의준]

할머니 댁에서 설거지를 하는 모습. [사진 석의준]

 
남성인 내가 처음부터 재가 요양사 업무를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6년 전, 향후 노인 인구가 늘면 요양병원 등 복지시설이 증가할 것을 대비해 자격증 있는 남성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생각되어 일단 따 놓기만 한 자격증이었다. 
 
환자이송이나 목욕, 차량 운전 등에 경험이 있어 대형 요양병원 취업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는 건 아녔다. 작년 8월 11년 동안 하던 부동산 중개업을 접고 지금은 89세 독거 할머니를 제2의 어머니로 삼아 하루 3시간씩 봉사하면서 요양보호사로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고 있다. 
 
요양사 업무를 시작하기 전 아내는 “아직 젊어. 더 좋은 일자리로 많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우선 내가 봉사하는 이 할머니는 자식이 없다. 호적상 자녀(실제로는 양자)가 한 명 있었지만 갖고 있던 할머니의 재산이 경매당하자 그 이후로는 연락조차 없었다. 
 
갑작스러운 파산, 평생을 키워줬던 양자에 대한 배신감 등으로 실명이 되어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딱한 형편이었기에 6년 전부터 실질적인 공익후견인이 되었다.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알고 나서 생활보호대상자로 만들기 위해 구청과 주민센터를 수없이 방문했다. 결국 구청은 형편의 심각성을 깨닫고 내가 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할머니를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해 주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고객이 찾고자 한 물건을 검색하고 있다. [사진 석의준]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고객이 찾고자 한 물건을 검색하고 있다. [사진 석의준]

 
중개업 운영 중에도 매주 한 번씩 방문해 생활의 불편함을 듣고 살펴주었지만, 작년 더위에 귀까지 먹은 할머니는 혼자 생활하기에는 너무 불편해하셨다. 더욱이 몇 년 전 장인, 장모, 친어머니를 집에서 모시다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난 뒤 살아있을 때 잘 해주지 못한 후회감이 떠올라 그냥 두고 보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결국 이 할머니를 제2의 어머니로 모시기로 했다. 봉사하면서부터 가족에 대한 태도 역시 많이 바뀌었다. 살아서 잘해주자. 그리고 죽고 나서는 절대 울지 말자고. 하지만 매일의 청소, 설거지, 병원이송 등 하루 3시간의 활동은 단순히 그것 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녔다. 
 
89년 동안 살아온 할머니의 아집과 이질적인 문화, 잦은 짜증은 나에게 간혹 갈등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내가 나중에 노인이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스스로 깨닫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인내하니 그 투덕투덕하는 것조차도 여느 모자의 삶과 다를 바 없이 되어버렸다. 
 
비록 남자요양사의 생활이 아직도 조금은 서툴고, 또 내가 생각했던 바도 아니었지만 매일 내가 갈 때마다 아들이 찾아온 양, 반가워하는 할머니의 얼굴에 하루하루 힘을 얻는다. 지금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할머니가 장수해 이런 모자의 삶이 하루라도 더 길게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야 이 보람과 행복을 하루라도 더 느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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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더오래 더오래팀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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