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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입시 성차별

중앙일보 2018.08.10 00:16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지은 죄가 있다면 딸 가진 죄뿐이다.”
 
1996년 1월 명동성당 앞에 뿔난 엄마들이 몰려나와 연일 교육 당국을 성토했다. 그해 서울 일반고 입시에서 낙방한 딸을 둔 이들이었다. ‘200점 만점 중 117점 남학생 합격, 138점 여학생 불합격’. 남학생보다 21점이나 더 받고도 단지 여자란 이유로 떨어졌으니 오죽했을까. 15세 어린 소녀들 가슴에 ‘성차별의 첫 상처’가 새겨진 것이다.
 
일반고 남녀 모집정원이 다른 게 문제였다. 서울의 경우 남자 6만4000명, 여자 4만8600명이었다. 이러니 남녀 합격선이 달랐던 거다. ‘남자 일반고, 여자 실업고’ 위주의 학생수용정책이 낳은 결과다. 문제는 십수년간 묵인된 이런 성차별 관행의 밑바닥에 ‘당연지사’ 인식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학생 정원이 적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는 논리다. 남녀 간 정원 차이 자체가 성차별인데 말이다. 정부는 억울하게 떨어진 여학생 1만여 명을 구제하는 사후약방문을 내놨다.
 
지금이라고 성차별 인식이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지난 1월 지방의 국립 특성화대 한 학과가 올 입시에서 “여학생은 뽑지 마라”는 내부 지침을 면접관들에게 돌린 사실이 드러났다. 여학생이 16명이나 지원했지만 합격생은 없었다. 역시 ‘당연지사’ 인식이 초래한 결과다. 이 학과 졸업생들의 진로인 ‘공군 장학생’ 합격률을 100% 담보하려면 당연하다는 거다. 공군 장학생 선발 요건 중 하나가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다.
 
2015년 서울의 한 사립대 이사장의 입시 성차별 발언도 ‘당연지사’ 인식의 발로다. “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입학하면 뭐하느냐. 졸업 뒤에 기부금도 내고 재단에 도움이 될 남학생을 더 뽑는 게 당연하다.” 여성단체가 이사장을 고발하고, 교문에서 여성들이 분 바르고 항의하는 퍼포먼스가 벌어진 것도 당연하다고 여겼을까.
 
일본도 요즘 입시 성차별 문제로 시끄럽다. 엊그제 도쿄의대가 지난 13년간 여성 수험생 점수를 일률적으로 감점했다는 조사 보고서가 발표되면서다. “여성은 결혼이나 출산 등으로 장시간 근무가 어렵고 이직률도 높다”게 이유였다. 이 대학 낙방 여학생의 말은 서글픈 데자뷔다. “부모님이 ‘아들이 아닌 딸로 낳아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실 것 같아 마음이 더 아프다.”
 
입시 성차별의 시대착오적인 그림자가 여전히 어른거리는 현실에 등골이 서늘하다. 여성 능력을 비하하는 고루한 인식부터 개안(開眼)할 일이다. 그러지 않고선 대입 자율화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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