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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속도의 시대에 지지율 지키는 길

중앙일보 2018.08.10 00:16 종합 31면 지면보기
장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8월 들어 인터넷뱅크 규제완화 등 새로운 정책을 내놓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필자가 휴가 기간에 권하고 싶었던 책이 한 권 있었다. 저자는 니콜라스 카. 제목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카는 초창기 IT 사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점차 IT 시대의 문제들을 깨달으면서 IT문화 전도사로 변신한 작가다.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에서(원래 제목은 『The Shallow』) 카는 “IT 기기를 많이 사용할수록 인간 뇌의 단기 기억을 관장하는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고 장기 기억을 다루는 신경은 점차 비활성화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말하고 있다.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자기공명영상촬영을 통해 밝혀진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카의 메시지가 중요한 까닭은, 핵심 권력자원으로서의 지지도는 시민들의 단기 기억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신의 영역인 80% 이상에 머물던 때에는 권력자원을 관리하는 정치 자체가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최근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60% 전후로 현실화되면서 지지도 운영은 문 대통령의 성공에 결정적인 변수로 떠올랐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문 대통령의 지지도 관리는 긴 호흡의 혁명을 요구하는 혁명적 지지파와 정부 정책에 따라 울고 웃는 삶의 현장 사이에서 균형 잡기의 문제다. 혁명파는 수십 년 쌓인 적폐들과 싸우려는 장기 전사들이다. 반면에 문 대통령의 실용적 지지파는 그날그날의 살림살이가 곧 정의라고 믿는 평범한 생활인들이다. (1)혁명파들의 대통령 지지가 강렬한 이념적 확신에서 온다면 (2)실용파들의 지지는 구체적인 삶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실용파들의 대통령 지지는 4G의 속도로 오를 수도 있고, 빠져나갈 수도 있다.
 
먼저 혁명파들의 거창한 논리부터 잠시 돌아보자. 혁명파는 문 대통령에게 지난 10년 혹은 그보다 긴 기간 동안 우리 사회에 쌓여 온 “적폐를 분명하게 청산”하라고 주문하는 이들이다. 달리 말해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혁명 정부”며, 따라서 “재벌적폐” “부동산공화국” “타성에 빠진 경제 관료들”을 청산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직 “촛불시민들을 믿고, 담대한 사회경제 개혁을 과단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훈칼럼

장훈칼럼

마치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연설문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거대 담론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어색한 것인지를 자세히 논할 지면은 없다. 다만 필자는 오늘날 혁명이 불가능한 여러 이유들 가운데, 초연결 한국 사회의 속도감을 말하고 싶다. 알다시피 우리는 초고속 인터넷,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를 다투는 초연결사회에 살고 있다. 정치 정보를 포함한 모든 정보와 판단, 인식은 문자 그대로 빛의 속도로 모든 이에게 유통된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수백 개 댓글, 포스팅이 삽시간에 달리고, 이는 순식간에 해석되고 변형되면서 퍼져나간다.
 
초연결사회의 속도감과 삶의 현장의 취약함과 정부의 서두르는 경제정의가 만나서 실용적 지지파들을 크게 동요하게 만든 사건이 최저임금 정책이었다. 대선 당시에 약속한 스케줄에 맞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할 때에 정부는 최저임금의 정의로움이 자영업자들의 취약함과 생활세계의 복잡함을 두루 해결할 것으로 낙관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정의로운 효과는 더디게, 천천히 나타나겠지만(나타나기를 기대해 보자!) 영세 자영업과 소상공인들이 현장에서 겪는 고통은 즉각적으로 감지된다. 또한 이러한 고통은 무한 속도경쟁을 벌이는 주류 미디어, 유튜브,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으로 다수의 시민에게 공유되고 전파된다(물론 혁명파에게는 이러한 고통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비관론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거창한 깃발을 섣불리 휘두르기보다는(8월 1일 이하경 칼럼) 섬세하게 짜인 정책을 공들여 만들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 지루하지만 끈질긴 대화를 했어야만 했다. 업종별로, 지역별로 현실과 경제정의를 조화시키는 최저임금안을 짜는 것은 아마도 최저임금 인상 공약의 시간표보다 훨씬 긴 시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한정된 자원과 시간을 가진 정부가 사회 구석구석의 경제정의를 단시간에 모두 실현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역설적이지만 정책에 대한 평가가 빛의 속도로 이뤄지는 속도의 시대에 휩쓸려가지 않는 길은 지루한 소통과 대화다. 절차와 소통의 정의로움을 통해 문 대통령은 실용적 지지파의 믿음을 회복할 수 있다.
 
장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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