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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한마디 못했던 한국 순경, 8년 후 미국 공무원 된 사연

중앙일보 2018.08.09 00:01
미국 이민 8년 차 남선우(38)씨는 올 6월 미 원호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공무원이 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가보훈처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미 연방정부의 15개 행정부처 중 하나다. 남씨는 25일부터 원호부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한다. 그처럼 늦은 나이에 영어가 미숙한 채 미국에 와 공직 사회에 들어선 경우는 흔치 않다. 
 
이민 8년차에 미 원호부 직원이 된 남선우씨가 두 딸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남선우]

이민 8년차에 미 원호부 직원이 된 남선우씨가 두 딸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남선우]

강원도 영월이 고향인 그는 2005년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순경이었다. 2009년까지 근무하다 자기계발 차 어학연수를 꿈꾼 게 시작이었다. 그즈음 순찰 지역에서 한 여성이 그에게 길을 물어왔다. 한국말이 어눌한 그녀와 이야기를 하다 그녀가 미국 시애틀의 한 대학에서 일하는 교직원임을 알게 됐다. “인연이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진 않았어요. 2010년 초 휴직서를 내고 그 학교로 어학연수를 갔죠.” 남씨는 이듬해 한국에 돌아와 사표를 냈고 그 다음해 그녀(새롬 남)와 결혼했다.

남씨가 아내 새롬씨와 첫째 딸 채은이와 찍은 사진. [사진 남선우]

남씨가 아내 새롬씨와 첫째 딸 채은이와 찍은 사진. [사진 남선우]

결혼 후 남씨는 월마트 창고관리 임시직으로 일하다 뜻밖에 기회를 얻었다. 그는 직원 연수 중 컴퓨터에 익숙지 않은 동료를 도와줬다. 이 모습을 본 인사 담당자가 그에게 재고 관리팀 정직원 자리를 권유했다. 면접에서 그를 추천한 담당자의 도움으로 떠듬떠듬 대답해 가까스로 합격했다. 하지만 영어가 늘지 않은 그에게 일은 고됐다. 게다가 매일 밤 야간 근무가 이어지자 아내도 힘들어했다.
월마트를 그만두기 직전 남씨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너무 답답했죠. 이대로 미국에 살 수 없겠더라고요. 기도를 많이 했어요. 하나님이 왜 나를 이곳에 보내셨을까. 내 조건과 상황을 배제하고 ‘무슨 일을 하면 행복할까’ 되물었죠. 그때 찾은 답이 공무원이었어요. 두 나라 모두에서 공직자로 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허무해졌다. 말이 안 되는 꿈이었다. 친구들에게 진지하게 꿈 이야기하자 모두 “군 입대를 하면 공무원 시험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대 두 번 가기’를 결심했다.  
미 예비군의 헬리콥터 정비군 훈련을 받았을 당시 헬리콥터에서 찍은 사진. [사진 남선우]

미 예비군의 헬리콥터 정비군 훈련을 받았을 당시 헬리콥터에서 찍은 사진. [사진 남선우]

남편의 뜻을 꺾을 수 없던 아내는 예비군 입대를 청했다. 입대할 수 있는 나이는 만 35세 이하. 당시 남씨는 34.1세였다. “제가 나이가 가장 많고 영어를 가장 못했어요. 12주의 체력 훈련은 한국 군대를 다녀왔으니 어렵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헬리콥터 정비군 대대였어요. 인생의 바닥을 쳤죠.” 월마트를 그만뒀을 때 사람들은 남씨에게 영어가 늘었다고 칭찬했지만 스스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그 마음이 어려운 정비 관련 단어를 만나자 더 커졌다. 미군이 되려면 네 번의 시험을 합격해야 했다. 남씨는 한 번의 유급 후 재시험에 가까스로 통과했고 8개월 만에 집에 돌아왔다.
다음은 대학이었다. 단과대(Community College)를 졸업한 그는 4년제 대학(University) 전학해 2년 간 수학하면 학사를 받을 수 있었다. 시애틀의 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 회계학부에 입학한 그는 “대학 생활 1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영어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남씨는 워싱턴 대학교 재학 시절, 학기가 끝날 때마다 첫째 딸 채은이를 학교에 데려갔다. [사진 남선우]

남씨는 워싱턴 대학교 재학 시절, 학기가 끝날 때마다 첫째 딸 채은이를 학교에 데려갔다. [사진 남선우]

졸업 후 곧바로 연방정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면접을 무조건 100번 이상 보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왔다. 미 원호부에 회계 사원 공고가 났다. 채용 인원은 1명. 남씨는 서류를 내고 2주 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45분간의 인터뷰 후 그는 면접관들에게 마지막으로 준비한 이야기를 했다. 교육 및 언어 수준이 높지 않은 자신이 이 나라에서 살고자 군에 입대했고, 그 과정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과 그들의 가족을 돕고 싶게 됐다고. 면접관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한 달 뒤 남씨는 합격 통지를 받았다. 
“돌아보면 늘 제가 감당하지 못할 조직의 끝을 붙잡고 들어갔어요. 한 번도 만족할 수 없었죠. 공직 사회에 진입하겠다는 꿈이 있었으니까요. 꿈이 이끄는 데에 길을 만들었습니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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