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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지켜줄게' 아픈 아들 위해 간호조무사 된 엄마

중앙일보 2018.08.08 06:00
[더,오래] 인생환승샷(51) 아픈 아들과 시작한 제2의 인생, 윤승화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아팠던 과거를 이겨내고 동서울대 실버복지과를 수시 합격한 아들과 함께. [사진 윤승화]

아팠던 과거를 이겨내고 동서울대 실버복지과를 수시 합격한 아들과 함께. [사진 윤승화]

 
남편과는 고1 때 동창으로 알게 되어 10년 동안 교제하다 26살에 결혼하고 첫딸을 출산했습니다. 1997년 IMF 경제 위기 때 둘째 아들이 태어났고 그 아이가 4살 될 때까지는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순탄할 줄로만 알았던 우리 가정에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7월생이라 4살 생일 즈음해서 뇌수막염 예방접종을 했고 후에 그것이 화를 불러올 줄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평소처럼 동네 아이들과 개구쟁이처럼 뛰어놀았고 그런 모습이 귀엽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8월의 어느 날, 모임에서 돌아와 저는 집 안 청소를 하고 남편이 두 아이를 씻기고 있었습니다. 작은 아이가 어딘가에 부딪혔는지 눈 옆이 찢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고 밤에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마침 응급실 당직인 이비인후과 레지던트가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네 살짜리 아이의 눈 옆을 꿰매니 아이는 자지러질 듯 울어댔고, 수술실 간호사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뒤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지만, 병원에서는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열은 잡히지 않았고 40도 넘는 고열이 3일 동안 계속됐는데 때마침 의료파업으로 큰 병원들은 폐업상태였고 응급실만 운영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응급실은 환자들로 넘쳐났고 열나는 아이를 둘러업고 찾아간 응급실에서는 해열제만 주고 찬물로 닦아주라고만 했습니다.
 
의료파업으로 인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상태로 아픈 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결국 뇌수막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2억4000만 마리의 바이러스가 뇌척수에서 검출됐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완치가 힘들고 심하면 목숨을 잃거나 후유증이 남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 질병을 잘 치료한다는 병원을 찾아다녔고 온갖 좋다는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발병되자마자 치료했으면 깨끗하게 나을 수 있었을 텐데 의료파업은 우리 가정과 내 아이의 행복을 앗아갔습니다.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쯤 아이는 병색이 짙어졌고 많은 약물을 오랜 기간 복용하다 보니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심리적 위축으로 말을 더듬게 됐습니다. 공부하고 나면 경련이 심해져서 결국 중학교부터는 공부를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왕따와 집단따돌림을 당하며 불행한 학창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자신을 놀리며 무시하는 주변 아이들로 인해 분노와 사춘기가 겹치면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아들을 보며 늘 가슴 졸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아이뿐 아니라 저도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당연히 대학의 꿈은 접은 상태였으나 아들이 너무도 대학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동서울대 실버복지과를 인문고전형으로 수시합격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실버복지과인 아들과 함께 요양원 운영을 해볼까 하여 사회복지와 간호조무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진 윤승화]

실버복지과인 아들과 함께 요양원 운영을 해볼까 하여 사회복지와 간호조무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진 윤승화]

 
아들은 현재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아들이 고1이 되는 해 아들의 장래가 걱정되어 아들과 같이 운영할 생각으로 빵집과 옷가게에서 일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실버복지과에 합격한 후에는 아들과 요양원을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사회복지와 간호조무 자격증을 공부해 취득했습니다. 현재는 집 근처 치과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힘든 날이 더 많았지만 50세의 나이에 아들로 인해 시작한 자격증 공부가 내 삶에 제2의 인생을 힘 있고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음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앞으로의 삶도 열심히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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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더오래 더오래팀 필진

인생환승을 꿈꾸는 사람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더,오래'를 만듭니다. 물리적인 환승은 물론, 정신적인 환승까지 응원합니다. 더,오래와 함께 더 나은 삶을 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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