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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건축] 골목길 전쟁

중앙일보 2018.08.07 00:22 종합 27면 지면보기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

지난 1월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의 온라인 공매장터인 온비드에서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했다. 서울 연남동 ‘연트럴파크’ 인근 도로였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였는데 꽤 길어서 면적이 600.3㎡에 달했다. 공공재인 줄 알았던 도로가 개인 소유라는 것도 놀라운데, 어떻게 공매까지 진행되는 걸까. 찾아보니 온비드의 물건 중에 이런 도로가 꽤 있었다. 소유주의 체납 또는 채무 불이행으로 공공기관이나 금융 기관이 압류한 물건들이다. 대다수 공매가 유찰되다 결국 취소됐다. 굳이 도로를 사려는 이는 드물 터다.
 
어쩌다 도로에 주인이 따로 있는 걸까. 구도심일수록 이런 사례가 많다. 과거에는 저택이나 공장단지처럼 하나의 큰 필지였다. 집 장사가 이를 쪼개 여러 채의 집을 지어 팔고 진입로로 남겨둔 땅일 가능성이 크다.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고 주택난이 심각해지자 시장이 먼저 대응한 결과다. 시간이 흘러 길과 길을 둘러싼 집들의 주인이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도로 주인이 재산권 행사를 하겠다며 통행료를 받으려는 순간 분쟁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주인이 있는 길도 문제지만, 너무 좁은 길도 문제다. 골목길 너비가 충분치 않아서 낡아도 손 못 대는 동네가 수두룩하다. 박원순 시장의 옥탑방이 있는 강북구 삼양동에도 이런 길이 많다. 소방차도 못 들어간다. 정부가 도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일찌감치 나섰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과거 서울시 고시를 살피다 아쉬운 첫 시도를 발견했다. 1953년 발표한 서울시의 소로망(小路網) 재정비 계획이었다. 구도심의 골목길을 소방차가 다닐 수 있게 넓히는 사업이었다. 집을 매입해 길을 내야 하니 비용이 꽤 들었다. 하지만 티가 안 나서 그런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결국 김현옥 서울시장의 요청으로 계획 자체가 67년 철회되고 만다. ‘불도저 시장’이라 불리던 그에게 대형 개발 사업이 더 시급했을 터다. 그렇게 골목길은 방치됐다.
 
골목길은 도시의 실핏줄이다. 소시민들은 오늘도 그 길에 기대어 산다. 하지만 막힌 데 많은 실핏줄과 함께하는 삶은 고단하다. 차가 달리던 고가도로는 사람 길로 바꾸면서 골목길 정비를 하지 않는 건 도시에서 늘 삶보다 정치가 먼저였기 때문이 아닐까.
 
정부가 매입해 정비하지 않은, 개인 소유 골목길의 최후를 온비드에서 목격했다. 공매로 나온 길 중 낙찰 사례가 있었다. 보광동의 골목길이었다. 한남재정비촉진지구 내에 있었다. 길은 누군가의 아파트 지분이 되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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