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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 이리 보면 ‘악마’ 저리 보면 ‘천사’

중앙선데이 2018.08.04 00:02 595호 1면 지면보기
2022학년도 대입 개편 방안
박재원 소장의 공론화 참여기  
박재원 (사)아름다운배움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

박재원 (사)아름다운배움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는 2022학년도 대입 개편 방안 네 가지를 놓고 공론화 과정을 거쳤으나 다수의 지지를 받은 안이 도출되지 않았다고 3일 발표했다. 수능 선발인원 비중을 45%로 높이는 방안(시나리오 1)이 1위, 수능을 절대평가화하는 방안(시나리오 2)이 2위이나 둘 사이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6일 35명이 모여 대입 공론화 방안 네 가지를 만들 때부터 참여해 시나리오 2의 제안을 맡은 박재원 (사)아름다운배움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으로부터 공론화 과정의 속얘기를 들어봤다.

발표자 말솜씨 따라 쏠림 현상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까지 왜곡
4가지 방안 중 다수 지지안 없어

학생부 조작, 스펙 몰아주기 …
불공정 막을 ‘교육 김영란법’ 필요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것 같지요?” 지난달 27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2차 숙의토론회에서 모 대학 입학처장이 이렇게 말하자 시민참여단 490명 대부분이 끄덕였다. 2박3일간 열린 2차 토론회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아이의 학생부 성적을 위해 독후감을 대신 써줬다는 한 엄마의 고백이 SNS 캡처로 대형 화면을 채우는 순간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은 분명 ‘악마’였다. 그러자 대학이 나섰다. 대학 입학 관계자가 학종에 대해 “시험 잘 보는 학생만 유리한 게 아니라 독서를 즐기고 수학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학생에게도 기회를 주는 전형”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학종은 ‘천사’로 바뀌었다.
 
악마이면서 천사일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대학 쪽에 간곡하게 물었다. “시민참여단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정말 중요합니다. 학종이 부자에게 특혜를 주고 학교·교사·부모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매우 불공정한 입시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대학은 입시 부정을 저지르고 학교와 교사, 부모와 사교육에 속아 실력 이상으로 과대 포장된 부실한 학생을 선발한다는 의미가 되는데 인정하시나요?”
 
하지만 토론 과정에서 대학 측은 이 점을 분명하게 확인해주지 않았다. 분명 시민참여단에 학종은 발언의 설득력에 따라 악마였다가 천사였다가 했을 것이다.
 
대입 정시모집 확대에 따른 결과 예측도 엎치락뒤치락했다. “정시는 특목고와 자사고에 유리하다” “아니다. 일반고에 유리하다” “서울, 특히 강남에 유리하다” “아니다. 지방 학생들에게 유리하다”….
 
분명 모순된 주장이 나왔다. 정시 비율이 늘면 계층·지역·학교 격차가 심화될 것이라는 대학의 연구 결과가 있다. 반대로 격차 완화를 예측하는 연구 결과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토론회 현장에서 시민참여단에 즉각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데이터를 내놓고 전세를 역전시킨다. 당당하게 시민참여단 앞에서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뒤집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 있는지 궁금해 대학 측에 물었다.
 
“아무리 얘기해도 믿지 않는데 어떡합니까?” 대학 측의 발언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역시 사실관계와는 별개로 발언자의 말솜씨에 따라 시민참여단에 정시는 격차를 심화시키기도, 완화시키기도 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수능 공방도 비슷했다. 교육 선진국의 대세는 절대평가라는 주장에 대해 다른 쪽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상대평가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객관식 문제풀이로는 핵심 역량을 기를 수 없다는 주장은 사고력 평가가 수능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부정당했다.  
 
정시와 학종 출신 학생의 역량 비교도 근거 자료가 달라서 그런지 끝까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쟁점마다 비슷한 양상이었다. 무슨 토론대회도 아니고 시간이 갈수록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입시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학교 밖 사교육의 영향력을 공교육이 대체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수능 절대평가는 전제조건이라는 판단이 내가 공론화에 참여한 동기였다. 하지만 공론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달라질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의 기본 전제인 신뢰가 거의 무너졌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 입시의 진짜 문제는 사실과 의견이 구분되지 않는 혼란 상황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자리에서도 모순된 주장이 계속 평행선을 달리는데 어떻게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지 못하도록 법으로라도 강제해 사회적 신뢰 수준을 높이지 않는 한 그 어떤 교육적 논의도 혼란만 부추길 따름이라고 판단했다. 사교육과 공교육, 그리고 대학을 망라해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확인된 학생부와 자소서 조작, 스펙 몰아주기, 불투명한 선발 방식 등과 같은 교육의 공익성을 해치는 일체의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교육 김영란법’을 제안하는 것으로 마무리 발언을 하게 됐다. 불신 사회가 어떻게 합리적인 입시제도를 만들 수 있을까.
 
◆박재원
(사)아름다운배움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 서울 강남에서 재수학원 원장 등을 하며 사교육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현재 교육 관련 공익단체에서 학부모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대한민국 엄마 구하기』 등의 책을 냈다.

 
박재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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