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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밤 까는 한국 교도소 공장 … 노르웨이에선 이케아와 경쟁

중앙일보 2018.08.02 00:02 종합 8면 지면보기
2018 교도소 실태 보고서 ③
대전교도소엔 민간에서 좀처럼 찾기 어려운 직조 공장이 있다. 교도소가 운영 중인 교도작업 중 하나다. 재소자 50여 명이 하루 여섯 시간씩 투입돼 직접 실을 뽑는다. [윤호진 기자]

대전교도소엔 민간에서 좀처럼 찾기 어려운 직조 공장이 있다. 교도소가 운영 중인 교도작업 중 하나다. 재소자 50여 명이 하루 여섯 시간씩 투입돼 직접 실을 뽑는다. [윤호진 기자]

“다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고 인력거래소 일부터 야간 대리운전까지 안 하는 게 없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니까요.”

70년대식 직업훈련 별 도움 안 돼
자격증도 가석방 위한 수단일 뿐

노르웨이 교도소 안에 가구공장
제품값 이케아 수준·직영 매장도

 
조성국(46)씨는 특별한 직업이 없다. 이른 새벽부터 닥치는 대로 하루 벌이를 한다. 지난해 7월 출소한 뒤 1년을 꼬박 이렇게 살고 있다. 한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쉼터에서 지난달 17일 만난 조씨는 “적게 잘 땐 하루 2~3시간, 일이 없을 땐 5~6시간 눈을 붙인다. 1년 뒤엔 이곳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방 한 칸 구할 돈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절도 전과 10범이다.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인생의 절반(23년6개월)을 보냈다. 지난 2년간 수감생활을 하면서 “이번엔 다른 삶을 살겠다”며 출소 후의 삶을 준비했다. 징역 2년이 나온 1심 재판을 받아들이고 항소를 포기했다. 형이 확정돼야 교도소로 이감돼 교도작업과 직업훈련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순천교도소에서 6개월여를 기다린 뒤 경북북부직업훈련교도소로 옮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용접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조씨는 출소 후 나간 공사 현장에서 용접기를 단 한 번도 잡지 못했다. 건축자재와 쓰레기를 나르는 잡부로 일했다. 용접공보다 일당이 10만원가량 적었다. 조씨는 “자격증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실전 경험이 많지 않으니 십장(공사 책임자)이 날 믿고 용접을 맡기지 않았고 나도 잘못될까 봐 자신 있게 얘기하질 못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앞선 수감생활에서 딴 자격증 두 개(전기공사기능사, 자동차정비)도 비슷한 이유로 쓰질 못하고 있다. 그래서 출소 후 두 개의 자격증을 더 준비했다. 지난해 10월에 대형운전면허증, 올해 1월에 화물운송자격증을 땄다. 조씨는 “교도소 안에서의 자격증은 사실 가석방을 받기 위해 따는 경우가 많다. 3개월, 6개월짜리 직업훈련은 실제 구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도소는 죗값을 치르는 징벌의 공간이다. 동시에 조씨 같은 재소자들이 출소 후 재범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최제영 법무부 교정기획과장은 “노동과 땀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교도작업과 직업훈련이 교정·교화의 핵심 도구가 된다”며 “이 둘을 내실 있게 운영해야 재소자들이 사회에서 일자리를 찾고 온전히 정착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점검한 전국 교도소 6곳의 실태는 이 같은 원칙과는 거리가 있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교도소 52곳(민영교도소 1곳 제외)에선 현재 교도작업 381개, 직업훈련은 33곳에서 169개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대전교도소의 알밤 까는 작업장. 외부 민간 업체가 위탁한 작업을 교도소가 유치해 운영 중이다. 재소자들은 밤 껍질을 기계로 벗겨낸 뒤 파란 소쿠리에 담아 칼로 깎아 마무리한다. [윤호진 기자]

대전교도소의 알밤 까는 작업장. 외부 민간 업체가 위탁한 작업을 교도소가 유치해 운영 중이다. 재소자들은 밤 껍질을 기계로 벗겨낸 뒤 파란 소쿠리에 담아 칼로 깎아 마무리한다. [윤호진 기자]

윤옥경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수치상으로 보면 한국 교도소의 교도작업과 직업훈련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하지만 교도작업의 경우 대부분 1차원적 반복 노동이 많고 직업훈련은 자격증 취득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사회에 복귀한 재소자들이 실제 취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출소자들은 출소 초기 한두 달을 교도작업을 통해 손에 쥔 수십만원으로 버텨야 하는데, 하루 1만원짜리 여인숙을 전전하다 구직하지 못하면 재범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특별취재팀이 방문한 대전교도소엔 교도작업장이 24곳에 달했다. 국내 최대 규모다.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7개가 있었다. 하지만 시설과 작업 내용은 한국의 1970~80년대 산업현장을 옮겨 놓은 모습이었다. 좀처럼 찾기 어려운 방직·방적 공장이 있었다. 재소자 50여 명이 기계 옆에 붙어 직접 실을 짜내고, 그 옆 공장에선 면 수건과 직원 근무복, 판사 법복, 포승줄 등을 만들었다. 위탁업체 작업장도 알밤 다듬기, 이불 포장, 비닐봉투 제작 등 단순 노무 위주였다.
 
재소자들 어떤 일 많이 하나

재소자들 어떤 일 많이 하나

직업훈련 과정 중엔 자동차코디네이터라는 생소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교육 담당자는 “중고차 가격을 산정하는 자동차 진단 평가사가 되기 위한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한 30대 재소자는 “출소 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배우고 있다. 이 기술을 배워 나가 취업한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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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부실한 교도작업과 직업훈련 과정을 교도소만의 책임으로 돌리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안식 백석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교도작업을 위한 외부업체 조사, 섭외, 선정을 각 교도소의 담당 교도관 한두 명이 모두 알아서 해야 하는 구조”라며 “민간기업과의 경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영세업종과 업체를 선정해야 하다 보니 선택의 폭 자체가 좁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이 교도작업과 직업훈련의 부실을 낳고, 그 결과 준비 안 된 출소자가 재범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덧붙였다.
 
노르웨이 울레르스모 교도소 내 가구공장. 교도소는 교도작업과 직업훈련을 연계해 재소자의 숙련도를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윤호진 기자]

노르웨이 울레르스모 교도소 내 가구공장. 교도소는 교도작업과 직업훈련을 연계해 재소자의 숙련도를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윤호진 기자]

교정 선진국으로 불리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다르다. 지난 5월 초에 방문한 노르웨이 울레르스모 교도소에는 중견업체 규모의 가구공장이 있다. 여기서 재소자들이 만든 부엌가구와 서랍장들이 또 다른 재소자들의 칠 작업을 거쳐 완제품 형태로 시중에 팔린다. 교도소 담장 밖엔 일반 시민 고객들이 제품을 실제로 보고 상담할 수 있는 전시장이 있다. 교도소에서 고용한 직원이 상주하며 고객의 부엌 상황에 맞게 3차원 그래픽 이미지를 보여주며 제품을 판매한다. 
 
얀 아르베 순데 소장은 “우리 가구의 경쟁 상대는 이케아(IKEA)”라며 “가격도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된다. 교도작업과 직업훈련이 동시에 이뤄지는 프로그램이어서 민간 기업에서도 출소자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재소자가 입소하기 전부터 출소 후 취업을 고려한 교육프로그램을 짠다. 출소일이 임박하면 교정 프로그램 담당자는 고용센터와 연계해 재소자의 구직을 돕는다. 조세핀 올슨 외스토르케르 교도소 매니저는 “재소자 한 명을 위해 수많은 정부 기관과 부처가 공동 책임을 진 구조”라며 “일반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교도소 안에서 똑같이 보장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윤호진·윤정민·하준호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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