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양성평등 시대의 여성 숙직

중앙일보 2018.07.30 00:31 종합 29면 지면보기
임선영 내셔널팀 기자

임선영 내셔널팀 기자

“왜 남성만 힘든 야간 근무를 서야 하나. ‘숙직(宿直)’만 양성평등 시대를 못 따라가고 있다.” 서울시의 한 남성 공무원은 ‘숙직’ 이야기에 목소리를 높였다. 시 익명 게시판에는 ‘남성만 숙직을 서는 건 부당하다’는 취지의 글들도 종종 올라온다.
 
‘여성 숙직 의무화 논란’은 여성 공무원 수가 증가하면서 뜨거워졌다. 국가직 공무원의 여성 비율은 지난해 기준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현재 서울시 본청과 사업소, 서울 자치구의 여성 공무원 비율도 해마다 늘어 45.8%다. 여성 공무원 수는 많아졌는데, 정작 ‘숙직 양성평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일부 남성 공무원들은 “남성 직원이 줄어 숙직이 점점 일찍 돌아온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서울시 본청 공무원의 당직(숙직·일직) 주기는 남성은 9개월, 여성은 15개월이다. 시의 여성 공무원은 숙직을 서지 않는 대신 주말과 공휴일 낮에 출근하는 일직(日直)을 선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남성 공무원의 불만이 커지자 서울시는 ‘당직 및 비상근무 규칙’을 고쳐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여성 공무원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숙직을 서게 할 계획이다. 이 규칙에 포함된 ‘여성 공무원은 숙직에서 제외한다’는 문구를 없앤다고 한다. ‘여성을 숙직 근무에서 제외한다’는 법적 규정이 없는 중앙부처에선 현재 각 부처 재량으로 판단하고 있다.
 
‘여성 공무원 숙직’은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서울시의 ‘여성 공무원 숙직 도입’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 댓글 창은 ‘남녀 전쟁터’가 됐다. ‘그동안 여성이 숙직을 안 한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남녀평등은 수십 년 전부터 외쳤으면서 왜 숙직은 차별을 두느냐’는 등의 댓글이 올라왔다. 반면 ‘그렇다면 남녀 가사·돌봄 평등은 왜 이뤄지지 않고 있느냐’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여성 숙직’ 도입을 발표하자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다.
 
시 여성 공무원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한 여성 공무원은 “여성 공무원 숙직은 치안이나 안전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반면 또 다른 여성 공무원은 “그동안 제도가 없어서 못 한 것이지, 당당하게 남성과 똑같이 숙직하고 싶다”고 했다.
 
남녀 성비가 같거나 역전된 공무원 사회에서의 여성 숙직은 시대적 흐름이다. 여성 숙직을 피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다만, 치안·안전 문제 예방책, 어린 자녀가 있는 여성에 대한 배려 정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임선영 내셔널팀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