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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하마터면 '반도체 기밀' 중국에 넘어갈 뻔했다

중앙일보 2018.07.30 00:02 종합 14면 지면보기
“알 권리” vs “영업 비밀”. 공개 여부를 두고 논란을 빚었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작업환경측정보고서’의 내용이 일부만 공개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행심위)가 지난 27일 “핵심 기술을 제외하고 공개하라”고 결정하면서다. 핵심 기술에 대한 판단은 행심위가 2~3주 안에 결정한다.
 

삼성전자 공정·설비 담긴 보고서
행심위 “핵심 기술 빼고 공개” 결정

삼성 ‘백혈병 분쟁’ 방치 사태 키워
논란 막을 국가 차원의 잣대 필요

그간 반도체를 비롯한 산업계 전체는 작업보고서 공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공정 흐름이나 사용하는 설비·화학약품 등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경쟁사, 특히 한창 한국을 쫓아오고 있는 중국 업체에 알리고 싶지 않은 내용이다.
 
더구나 이번엔 대상이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된 반도체였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의 영업비밀에 대해 어느 선까지 인정하고 보호하는지에 대한 가늠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논란은 2014년 삼성전자 충남 아산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하던 A씨가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A씨 유족은 같은 해 10월 산업재해 연관성을 입증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작업보고서 공개를 요구했다. 당시 고용부는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했고, A씨 유족은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3월 대전지방법원은 “보고서에 삼성전자 영업비밀이 담겨 있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작업보고서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지난 2월 대전고등법원이 “근로자 이름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다. 1년 만에 1심 판결을 뒤집는 2심 결과가 나왔고, 고용부는 작업보고서를 전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해 당사자뿐 아니라 언론 등 제3자에게까지 공개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작업보고서 공개를 막는 행정소송과 함께 행심위에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반도체 업계도 ‘반도체 핵심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하에 있는 산업기술보호위원회 반도체전문위원회를 통해 작업보고서에 국가 핵심 기술이 포함됐는지 조사했고, 지난 4월 발표한 결과는 “포함됐다”였다. 이어 삼성전자가 행정소송을 제기한 법원 3곳에서 (작업보고서 공개) 집행 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행심위도 “핵심 기술은 빼고 공개하라”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에 삼성전자는 안도하는 분위기다. 행심위가 공개 선을 어느 수위까지 조절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핵심 기술’은 보호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산자부 반도체전문위원회 위원은 “당시 조사한 작업보고서에 예상보다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이어 “선례가 생기면 누구든 이런 작업보고서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인데, 중국 반도체 업체가 한국 기술을 얻기 위해 공세를 펴고 있는 상황에서 아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반도체 영업비밀 유출 위기는 10여 년을 끌어온 삼성전자의 ‘반도체 백혈병’ 분쟁이 근본적인 이유다. 삼성전자는 2007년부터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근로자의 유족과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의 연관성’을 두고 대치해 왔다.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유족에게 삼성전자는 줄곧 두 사안이 무관함을 주장해 왔다.
 
사태 초기 유연한 태도로 사회적 갈등을 수습하는 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더라면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삼성 입장에선 ‘무조건 수용’하라는 분위기가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태도에 대한 교훈을 얻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반도체 같은 핵심 기술 공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재성 극동대 반도체 장비공학과 교수는 “어쨌든 국가 경제의 큰 축인 핵심 산업의 정보가 유출될 뻔했다”며 “이를 다루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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