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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⑥‘쉰들러’인가 ‘브로커’인가…2000:1 바늘구멍 뚫은 제주 난민
 

법조 기자의 판결 다시 보기
법무부 “돈좇아 한일” 브로커에 무게
법원 “중국의 박해와 공포 있었다”

지난 6월 18일 제주출입국 외국인청이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뉴스1]

지난 6월 18일 제주출입국 외국인청이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뉴스1]

 
내전 등 자국의 불안정한 상황을 피해 제주도에 입국한 외국인 2000여 명 중 난민 지위를 획득한 첫 사례가 지난달 나왔습니다. ‘바늘 구멍’보다 지나기 어렵다는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내전 국가 출신이 아니라 중국에서 태어난 A씨입니다. A씨는 법무부 제주출입국 외국인청이 항소심 선고 뒤 상고를 포기하면서 난민으로 인정됐습니다.

 
난민 문제는 최근 뜨거운 찬반 논쟁을 불러오며 국내 주요 이슈로 급부상했습니다. A씨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는 ‘한국의 난민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이 비교적 잘 드러나 있습니다.  
 
탈북자 돕던 그는 왜 제주도 왔나
2000년대 초 중국에 살던 A씨를 한 조선족 친구가 찾아옵니다. A씨는 그 친구의 부탁을 받고 중국 내 탈북자들을 제3국으로 탈출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이후에도 탈북자 지원 단체의 활동을 소정의 돈을 받고 도왔습니다.
 
하지만 A씨의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후 중국 공안에 체포돼 한 달 동안 감금됐습니다. 이후 중국의 국가안전국(한국의 국정원 같은 기관) 요원들이 A씨를 강제 연행했습니다. 중국 법원은 불법 월경에 관여한 혐의로 A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합니다.
 
A씨의 ‘도피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는 선고 직후 중국을 떠나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하다가 동남아의 B국가에 정착합니다. B국 공무원에게 돈을 주고 인적사항을 허위 신고해 국적을 획득했습니다. B국에 있을 때도 목사를 도와 탈북자 지원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A씨는 중국대사관 측으로부터 “자수하라”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 “중국 공안이 당신을 체포하려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탈북자 지원 단체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도피처’인 제주도로 향합니다.
 
탈북자의 ‘쉰들러’ 인가 ‘브로커’인가
그런 A씨를 바라보는 법무부(제주출입국)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A씨가 정치적 소신과는 상관없이 돈을 위해 ‘브로커’로 일했다는 게 법무부의 시각입니다. 생계유지 차원에서 탈북자를 지원했을 뿐 정치적 박해를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또 B국으로 도피한 뒤 비교적 평온한 생활을 한데다 국적까지 획득한 만큼 보호를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게 법무부의 입장이었습니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제주시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제주시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반면 A씨 측은 “단순히 돈 때문에 탈북자를 지원한 것이 아니다”고 항변했습니다. 중국 정책에 반해 탈북자 탈출을 도왔고, 탈북자 정보 등을 요구하는 회유를 거절한 것도 정치적 신념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또 허위신고로 획득한 B국 국적은 언제 박탈 당할지 모를 위험이 있었고, B국에서도 중국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는 등 두려움 속에 평온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양측의 입장이 엇갈린 가운데 A씨의 운명을 가를 1심 재판부(제주지법 행정1부)의 선고가 지난해 12월 13일 나왔습니다.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를 입증하라  
이 재판의 쟁점은 A씨가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를 가지고 있는지 였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난민 신청을 하는 외국인은 자신이 겪은 이 ‘공포’를 재판부에 입증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박해와 공포가 존재했다”고 봤습니다. 또 이같은 박해와 공포가 A씨의 ‘정치적 견해’에 따른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실정법을 위반한 동기가 정치적 이유 때문인지, 경제적 이유 때문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중국 내 탈북자 문제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결부된 민감한 사안으로 이를 단순히 출입국 문제로 단순화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어 “A씨의 탈북자 지원에는 중국의 정책에 반하는 정치적 의견 표명의 의미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쉽게 말해 A씨가 중국 정책에 반하는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탈북 지원 활동을 벌였으며, 이로 인해 징역형을 선고 받는 등 박해에 시달렸다는 게 법원의 판단입니다.

제주 난민신청자들의 모습. 최충일 기자

제주 난민신청자들의 모습. 최충일 기자

이처럼 한 외국인의 정치적 소신을 판단하는 일은 난민 재판을 하는 모든 판사들이 겪는 고충이기도 합니다. 한 행정법원 판사는 “자국에서 강도, 뺑소니 등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을 피해 온 난민들은 정치적 견해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정세가 불안한 국가의 외국인들은 판단하기가 쉽지가 않다. 결국 객관적인 증거들이 판단을 가르는 ‘키(key)’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A씨 이전에 난민 신청을 한 외국인들 중에선, 이런 증거들을 끌어모아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소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불리는 ‘아랍의 봄’ 시위에 참여했다가 정치적 박해를 받았던 요르단 공무원 출신 C씨가 대표적입니다. 현지 인터넷 기사, 유튜브 시위 동영상 등에 C씨가 시위하는 장면이 다수 포착되면서 재판부는 “박해 공포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B씨의 난민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A씨도 자신의 박해를 입증하는 몇 가지 증거들을 재판부에 제출해 인정받았습니다. A씨의 도주 날짜 등이 적혀 있었던 ‘도주인 등록표(중국정부 작성)’와 A씨가 탈북자 문제 등에 대해 소신을 밝힌 현지 인터뷰 기사 등입니다.  
 
재판부는 ‘A씨가 과연 B국에서 평온한 생활을 했느냐’는 쟁점에 대해서도 “허위 정보로 여권을 취득해 국적 유지가 불안정했던데다, 중국 대사관의 압력이 통화 기록 등을 통해 입증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결국 이런 재판부의 판단이 항소심에서도 유지되면서 A씨는 제주 난민 최초로 난민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A씨는 '한국 난민'의 기준인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내 난민 인권단체들은 A씨가 난민 지위를 획득하자 일단 환영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A씨의 사례가 다른 외국인들은 꿈꾸지 못할 ‘특수 케이스’라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탈북자 북송 문제 등이 한국과 관련 있는 정치적 사안인 데다, 함께 일한 탈북자 지원단체 등 증인들이 여럿 있었던 것도 A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겁니다.

 
난민인권센터 김연주 변호사는 “내전 국가의 ‘소시민’들이 자신의 공포와 박해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며 “대부분의 난민은 첫 출입국 면접심사 단계부터 애먹는 일이 많다”고 했습니다.  

 
국내 난민 신청자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2013년 1574명, 2015년 5711명에 이어 지난해에 9942명을 기록했습니다. 이중 지난해 난민으로 인정받은 신청자는 121명 수준입니다. 한국 입장에선 비교적 생소한 국가들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 그들의 ‘박해와 공포’를 판단해야 하는 재판부의 고민은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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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는 ‘판결 다시보기’의 줄임말입니다. 중앙일보 법조팀에서 이슈가 된 판결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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