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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년의 숫자로 읽는 경제] 오일쇼크·외환위기 때도 보물선 떴다···불황 징조?

중앙일보 2018.07.29 11:40
신일그룹은 지난 15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앞 바다 434m지점에서 러시아 군함인 드리트리 돈스코이호(6200톤급)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돈스코이호는 러일 전쟁 당시인 1905년 5월 29일 러일 전쟁당시 일본 군함의 공격을 받고 울릉도 앞 바다에 침몰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이 배에는 150조 가치의 금괴 등이 실려있다는 소문으로 보물선으로 불리고 있다.(신일그룹제공)2018.7.18/뉴스1

신일그룹은 지난 15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앞 바다 434m지점에서 러시아 군함인 드리트리 돈스코이호(6200톤급)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돈스코이호는 러일 전쟁 당시인 1905년 5월 29일 러일 전쟁당시 일본 군함의 공격을 받고 울릉도 앞 바다에 침몰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이 배에는 150조 가치의 금괴 등이 실려있다는 소문으로 보물선으로 불리고 있다.(신일그룹제공)2018.7.18/뉴스1

고려시대 보물선부터 돈스코이호…변죽만 울린 보물선 논란 
1981년 8월. 충남 태안 앞바다에 좌초됐다는 보물선 소식이 세간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어부에게 우연히 잡힌 주꾸미가 고려청자로 추정되는 도자기를 꽉 물고 올라온 덕분에 보물선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얘기였지요. 하지만 한 달 뒤인 그해 9월 문화재관리국 조사단은 "정밀하게 탐사했으나 보물선은 없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2000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삼애앤더스란 회사는 일제 강점기 때 패주하던 일본군이 진도 앞바다에 20조원어치의 보물을 묻어 놨다는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이 해저 보물 탐사에 나선 삼애앤더스의 주가는 2000원대에서 1만7000원대까지 8배 이상 올랐습니다. 이 회사도 결국 파산하면서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몽땅 날리게 됐습니다.
 
해저 보물에 대한 동화 같은 믿음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드는 올해에도 한국 증권시장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150조원 규모 보물선' 논란의 장본인은 신일그룹입니다. 자본금이 1억원에 불과한 신생회사가 과연 보물선을 탐사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이 회사 최대주주 류상미씨 등이 인수를 검토한다고 밝힌 코스닥 상장사 제일제강의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신일그룹이 보물선을 발견하면 '보물선 테마주'로 묶인 제일제강도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지난 17일 상한가를 기록했지요. 그러다 신일그룹 실체에 대한 의혹과 27일 류씨 등이 주식을 인수하기 위한 중도금을 내지 못했다는 공시가 겹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을 쳤습니다.
 
'150조원 가치 보물선'을 발견했다는 신일그룹의 대표가 상장사인 제일제강 지분을 시장가보다 약 3배 비싸게 사기로 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19일 서울 공항동에 위치한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모습. 2018.7.19. [뉴스1]

'150조원 가치 보물선'을 발견했다는 신일그룹의 대표가 상장사인 제일제강 지분을 시장가보다 약 3배 비싸게 사기로 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19일 서울 공항동에 위치한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모습. 2018.7.19. [뉴스1]

시장에는 신일그룹이 보물선 탐사 자금을 모으기 위해 '신일골드코인'이란 암호화폐를 발행한다는 소식도 퍼졌습니다. 단숨에 이 암호화폐 투자자는 12만3600여명(26일 기준)으로 늘었고, 투자금도 최대 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주가 급락에 손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은 물론 이 암호화폐 투자자들도 허탈해하고 있습니다. 정작 신일그룹 측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신일골드코인과 신일그룹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돈스코이호 발굴 소식은 올해 처음 나온 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0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상태였던 동아건설이 돈스코이호를 발견해 인양한다고 밝힌 것이 보물선 테마주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당시 동아건설의 주가는 17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해 300원짜리 '동전주'였던 동아건설 주식의 가격은 3000원 이상 올랐습니다. 이 사건도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동아건설은 보물선 발굴에 필요한 돈을 대출받으려고 채권은행으로 달려갔지만, 채권단이 추가 대출을 거절하면서 결국 파산했습니다. 끝까지 '보물선 신화'를 믿었던 투자자들만 돈을 날리게 된 겁니다.
 
톱/보물선

톱/보물선

불경기마다 보물선 출현…'인생 한방'에 관심 쏠려 
지금까지의 '보물선 소동'은 대부분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잊을만하면 나오는 이 소식에 선뜻 지갑을 여는 것일까요. 이들 사건을 곱씹어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선 보물선 탐사에 나서는 기업이나 개인들 대부분은 지푸라기라도 잡지 않으면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한계 선상에 있다는 점입니다. 동아건설은 당시 현금 유동성이 고갈돼 법정관리를 졸업하지 못한 상황이었고요. 신일그룹도 2015년 파산한 신일건업의 후신인 신일유토빌건설과 사실상 같은 회사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신일그룹은 이런 사실을 부인했지만, 이들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제보도 이어지고 있지요.
동아건설의 파산 선고가 내려진 2001년 5월 11일 해외건설팀의 사무실 [중앙일보 DB]

동아건설의 파산 선고가 내려진 2001년 5월 11일 해외건설팀의 사무실 [중앙일보 DB]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보물선 소동'은 대부분 국가 경제가 어려울 때 등장했습니다. 태안 앞바다 고려 시대 보물선 소동이 있었던 1981년은 제2차 오일 쇼크(1978년) 직후 유가가 고공 행진을 했을 때입니다. 막 중화학 공업화를 시작하던 한국 경제는 갑작스러운 유가 상승으로 타격을 입어 198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1.5%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또 동아건설과 삼애앤더스의 해저 보물 소동이 있었던 2000년은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지요. 이번 신일그룹의 보물선 논란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최근 한국 경제는 여러 지표에서 위기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고용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총취업자 수는 8년 4개월 만에 최저 수준인 7만2000명 증가에 그쳤고, 청년 실업률은 10.5%로 2000년 이후 5월 지표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이 밖에도 올해 2분기 설비·건설투자는 마이너스로 돌아섰습니다. 민간 소비, 수출 등 모든 지표가 과거보다 후퇴했습니다.
 
경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인생을 '한방에' 역전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찾게 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전후 통계를 보면 복권이나 화투 등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납니다. 2009년 1분기 화투 판매량은 직전 연도 같은 기간보다 45.6%가 증가했습니다. 로또 복권 판매액도 2008년 상반기에는 매주 평균 414억원이 판매됐지만, 2009년 1분기에 와서는 473억원으로 급증했습니다.
 
최근 복권 판매량도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복권 판매액은 3조8000억원으로 지난 2014년 3년 전보다 24.9%나 늘었습니다. G마켓이 집계한 화투·트럼프 등 카드게임 판매량도 지난해에는 직전 연도 대비 32% 증가했습니다. 2010년 카드게임 판매량을 100으로 놓고 보면 지난해 판매량은 267에 달해 201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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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엔 투자 저조…'혁신성장' 소홀히 한 정부 책임도 
정부는 사람들이 비트코인이나 보물선 등 '일확천금'을 노린 이벤트에 몰두하는 현상을 허투루 넘겨선 안 됩니다. 경제가 계속해서 침체 국면을 이어가면 비슷한 현상은 계속해서 나타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안타까운 점은 한국엔 좀 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성공 모델을 제시하는 수많은 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이 있는데도 이쪽으론 떠도는 시중 자금이 충분히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술과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 인생을 걸고 창업에 나섰지만, 규제로 묶여 꿈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봐야 합니다. 결국 '보물선 논란'은 '혁신성장'을 소홀히 한 정부에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닐까요?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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