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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안 지내면 콩가루 집안? 조상님들이 진정 바라는 건...

중앙일보 2018.07.29 07:01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32)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일엔 그 날짜에 가까운 주말을 잡아 직계 존비속들이 모두 참여하여 안부를 나누고 즐겁게 먹고 노는 날이 되었다. [사진 flickr]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일엔 그 날짜에 가까운 주말을 잡아 직계 존비속들이 모두 참여하여 안부를 나누고 즐겁게 먹고 노는 날이 되었다. [사진 flickr]

 
말일이면 친정엄마의 기일이라 온 가족이 휴가 겸 모이는데 이번엔 내 차례다. 1월과 7월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일엔 그 날짜에 가까운 주말을 잡아 시간이 있는 직계 존비속들이 모두 참여하여 안부를 나누고 즐겁게 먹고 노는 날이 되었다.
 
시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례와 묘소 방문 등 그런 것은 구정과 추석 명절 두 차례 차분한 분위기로 할 수 있으면 하고(때론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제삿날만큼은 즐거운 모임으로 만들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일 년에 네 번은 모이는 셈이다.
 
처음엔 형제 일가친척 간에 사고라도 나고 몸이라도 아프면 제사를 안 지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염려에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큰일 없이 모든 형제 자식들이 행복하게 지내는 걸 보면서 하늘의 조상님들도 그러길 원하실 거란 확신을 얻었다.
 
제사고 기도고 산 사람을 위한 위안 
남편의 가족은 모두 기독교를 믿는다. 남편은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고집스레 제사를 지내왔는데 어머님은 늘 마음이 불편해했다. [중앙포토]

남편의 가족은 모두 기독교를 믿는다. 남편은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고집스레 제사를 지내왔는데 어머님은 늘 마음이 불편해했다. [중앙포토]

 
남편의 가족은 모두 기독교를 믿는다. 시부모는 물론 시동생도 장로이고 모두가 집사 직위를 갖고 열심히 다닌다. 남편은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까지 고집스레 제사를 지내왔다. 제사를 지내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었는데 어머님은 늘 마음이 불편해했다.
 
나야 제사를 안 지내면 아주 편하고 좋았지만 우리 가족 입장에선 시어머니보다 남편이 대장이라 훗날 제기 세트랑 병풍까지 완벽한 준비물을 챙겨 제사를 지냈다. 물론 아무도 참석하지 않고 우리끼리 하는 행사였다. 가족과도 당연히 소원해져서 왕래는 물론 대화도 잘 안 하게 되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다음 해 남편도 내 곁을 떠났다. 남편은 나의 종교인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아 종부성사를 보고 하늘로 돌아갔다.
 
살아보니 제사고 기도고 모두 산 사람을 위한 위안인 것 같다. 요즘은 먹거리도 지천이지만 늦은 저녁에 제사에 참여하고 상차림을 먹으러 먼 길을 와줄 사람도 없다. 나를 돌아보니 보여주기 식의 허영이 반이었다. 남은 음식을 가지고 가줄 사람도 없고 제사 음식은 지천으로 남아도 통닭이나 다른 걸 시켜서 먹었다.
 
남편의 첫 기일을 맞아 직계가족들과 의논해 제사를 없애고 친목 모임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내가 어정쩡한 나이로 고참 어른이 되어 있는지라 시부모님의 기일을 합쳐 하루, 그리고 남편의 기일 날 하루. 그렇게 일 년에 두 번을 모일 수 있는 가족은 모두 모여서 안부도 나누고 먹고 마시며 서로의 마음도 열어보는 즐거운 휴일로 만들었다.
 
제사 지내는 대신 즐거운 가족모임날로 만들어

남동생의 제안으로 제삿날을 즐거운 가족모임으로 정했다. 제사를 안 지내고 살아도 화목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다. [사진 pixabay]

 
친정에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가족 간의 화목을 강조하시고 제사 같은 허례허식을 못하게 하셨다. 순발력 있는 남동생의 제안으로 제삿날을 즐거운 가족모임으로 정하고 훨씬 이전부터 그렇게 했으니 나의 집안은 남이 봤을 땐 조상에 대한 예의도 없는 콩가루 집안일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제사를 안 지내고 살아도 나의 시가 쪽이나 친정 쪽 가족이 가장 화목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다. 형제간의 끈끈한 우애는 말할 것도 없다.
 
기일이 가까운 주말에 날을 잡아 모임 날짜를 문자로 공지하면 아이들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하니 100% 참석률을 자랑한다. 그리고 어느 땐 사촌에 외가에 어른들도 참여하시니 이런 모습이 먼저 가신 조상님이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직 친정엄마의 기일이 많이 남았는데도 벌써 들떠서 주고받는 문자를 보면 마치 여행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는 동안 짐을 풀었다 쌌다 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듯하다.
 
이번엔 내 집에서 하는 차례라서 집 근처에 방이 넓은 펜션을 얻어 놓았다. 그날이 오면 매번 같은 레퍼토리로 엄마, 아버지에게 회초리 맞던 이야기부터 어린 날의 기쁨, 슬픔을 이야기하면서 부모님 얘기에 울고 웃으며 밤새 두런두런 수다를 떨어볼 것이다.
 
저녁에 시동생에게서 전화가 온다. “형수요~ 이번 형님 기일 모임은 언제 어디서 모입니껴?” 한 달도 안 바쁜 달이 없다. 살아 있으니 바쁘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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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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