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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선의 ‘셀럽 심리학’]권력을 얻으면 다른 사람이 된다

중앙일보 2018.07.29 00:02
권력의 부작용에서 ‘부’를 떼고 ‘권력의 작용’을 들여다본다. 이번 호와 다음 호에 걸쳐 권력이 무엇인지, 권력이 당신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이 통찰을 당신이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질의·응답 형식으로 알아본다.


권력의 심리학 특강(1) 권력자 오만의 뿌리
권력의 부작용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다. 클리셰(cliche, 판에 박은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를 남발하는 설교문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권력은 부패하기 쉽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역사학자 로드 액턴의 명언도 등장시키고 권력남용의 아이콘인 나치 히틀러, 엔론의 CEO 제프리 스킬링도 언급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억제하기 힘들다.
 
이야기가 뻔히 흘러가면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세게 나가본다. “권력자가 되면 공감 능력을 상실하는 이유, 뇌손상 때문이다!”라고 말한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가 권력자에게 붙여준 독한 별명도 소개한다. ‘권력자는 통제 불가능한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소시오패스!’이렇게 예의가 없어도 되나 싶지만 뭐 내가 한 말이 아니다.
 
그런데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전략은 효과적이지 않다. 뇌손상처럼 충격적인 이야기일수록 빨리 퍼져서 이미 한 번쯤 들어본 식상한 소재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이런 소리를 듣는 권력자는 기분이 매우 나빠져서 글을 끝까지 읽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엔 권력의 부작용에서 ‘부’를 떼고 ‘권력의 작용’으로 가기로 했다. ‘권력의 심리학 특강 제1편’이다. 다음 호까지 권력이 무엇인지, 권력이 당신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이 통찰을 당신이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권력의 심리적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중요 개념은 심리학자 제프리 그레이가 제안한 ‘행동 접근 시스템’이다. 권력자가 일으키는 많은 문제와 훌륭한 성과, 둘 다 이 시스템이 작용한 결과다. 권력자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 권력은 당신을 더 리더다운 인물로 성장시키기도 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성질 급한 사람으로 퇴화시키기도 한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권력 얻은 후 당신은 다른 사람이 된다
 
권력의 심리학적 정의는 무엇인가?
 
권력은 ‘타인에게 자원을 제공하거나 회수함으로써 그 사람의 상태나 지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개인의 상대적 능력’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동생이 먹고 싶어 하는 초콜릿을 손에 쥔 형은 권력자다. 키워드는 사회적 관계, 자원통제력, 상대성이다. 두 사람이 모이면 권력의 위아래가 생긴다. 자원이 넘쳐나는 천국에는 권력이라는 개념이 끼어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자원통제권을 중심으로 권력이 형성된다.
 
누구와 붙어도 권력에서 밀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에겐 대통령도 권력자가 아니다. 내 권력의 크기는 내 통제권 아래 있는 자원을 타인이 얼마나 원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따라 내 권력의 크기가 정해진다(그래서 ‘밀당’이 필요하다).
 
권력의 상대성이 주는 통찰은 무엇인가?
 
모든 상황에서 아무런 권력도 없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과장에게 매일 혼나는 대리도 신입사원에겐 권력자다. 부장에겐 하늘 같은 리더인 CEO도 회장에겐 팔로어다. 누구나 상황에 따라 높은 혹은 낮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된다.
 
“권력의 심리학?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군.” 스스로를 권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당신이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늘도 당신은 자기도 모르게 부하직원이나 협력업체 담당자, 가족, 친구를 상대로 권력을 남용했는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많은 권력이 당신에게 있다.
 
평소 싹싹하기로 소문난 대학원생이 학부 수업의 조교가 되었다. 그런데 몇 주 지나지 않아 학생들의 불만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과제는 프린트해서 제출해야만 해요!” “조교 선생님, 저는 이메일로 냈는데요.”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감점!” 이런 식이었다. 조교는 학부생에게 권력자다. 조직의 최고 권력자만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자가 되면 사람이 변하나?
 
대부분의 사람은 권력을 얻고 난 후, 자기에게 어떤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막연하게 바라는 건 있다. “파워가 있든 없든, 나는 나야. 변하지 않아. 겉모습이야 다르지. 하지만 속사람이 어디 가겠어?” 정말 그럴까? 심리과학은 이런 희망사항에 이렇게 답한다. “꿈 깨시오!”
 
누적된 연구가 제시한 일관된 결론은 파워 있는 사람과 파워 없는 사람의 심리적 체계가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이다. 변화의 방향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일 수 있지만, 권력을 얻기 전 당신과 권력자가 된 후 당신은 다른 사람이다. 권력감을 느끼면 세상과 사람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조직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리더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데, 무의식 수준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행동 접근 시스템과 권력의 관계는?
 
변화의 핵심은 행동 접근 시스템(behavioral approach system, 접근성향)이다. 이에 늘 붙어 다니는 짝은 행동 억제 시스템(behavioral inhibition system, 억제성향)이다. 접근·억제성향은 원래 개인적 특성이다. 접근성향이 강한 사람의 눈엔 환경 내의 잠재적 보상이 크게 보인다. “오늘 재미난 일이 없을까? 뭘 하면 신날까?” 즐거움을 찾아 집을 나서는 보상추구형이다. 반면 억제성향이 강한 사람의 눈엔 잠재적 위협이 크게 보인다. “오늘도 나를 지켜야지. 앗, 저건 위험해 보이는데! 만지지 말아야겠군.” 처벌회피형이다.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의 연구팀이 제안하고 많은 후속 연구가 동의한 바는 접근·억제성향의 활성화 정도가 개인이 느끼는 권력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권력자는 접근성향이, 권력이 없는 자는 억제성향이 활성화된다. 조직의 최고 권력자의 접근성향은 풀가동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의사결정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이 공통점
접근성향과 관련해 권력자가 주의할 점은?
 
접근성향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결과는 다르다. 권력감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 리더가 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이 접근성향이 잘못된 탈억제(disinhibition)로 이어질 때 발생한다. 위험한 행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저하된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권력자의 오만은 고삐 풀린 접근성향에서 시작한다. “저 사업을 내가 하면 잘될 것 같은데!” 잠재적 보상에 지나치게 민감해진 당신이 ‘못 먹어도 GO’를 외치는지, 체크와 밸런스를 통해 ‘계산된 GO’를 외치는지 따져야 한다. 심리학자 아담 갈린스키 연구팀의 실험에서 권력감을 느낀 연구 참여자들은 본인의 의사결정의 정확성에 지나친 자신감을 드러냈다.
 
비윤리적인 행동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자 앤디 얍 연구진은 어깨를 펴고 몸을 크게 만드는 파워 포즈를 취하기만 해도 사람들이 돈을 훔치고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고 교통법규를 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분식회계로 감옥에 갇힌 엔론의 스킬링이 자신의 탈억제 성향을 성찰했더라면 거대 에너지 기업을 말아먹는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권력의 심리적 효과를 요약하는 키워드는?
 
첫 번째는 탈억제(disinhibition)다. 권력남용의 원인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탈억제 자체는 부정적인 개념이 아니다. 불의를 보고 참지 않은 권력자의 행동은 탈억제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 사례다. 얼마 전 KTX 열차에서 승무원에게 갑질하는 승객을 나무란 장관의 행동이 화제가 됐다. 권력이 없는 자는 그 상황에서 불의를 보고도 그냥 참았을 것이다. 두 번째는 자기중심성(self-focus)인데 공감 결핍이라는 권력의 큰 부작용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것도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개념이다.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목표에 집중하는 리더의 강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요점은 권력의 심리적 영향을 통찰함으로써 탈억제와 자기중심성의 부작용에 대처하는 동시에 권력이 주는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권력자의 심리 속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갈 것이다. 권력과 함께 찾아오는 내부적 변화가 어떤 폐해를 일으키는지, 동시에 권력자의 역량을 어떻게 향상시키는지 좀 더 자세히 살피고자 한다.
 
조지선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전문연구원(심리학 박사)
 
※ 조지선 전문연구원은…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타임워너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 인간행동과 사회적 뇌,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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