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톡 쐈는데···김 빠졌어유" 600년 초정탄산수 무슨 일

중앙일보 2018.07.29 00:01
 "이끼 끼고 물 맛 변해"…불안한 초정리 주민들
충북 청주시 초정리에 있는 초정약수 상징탑. [사진 청주시]

충북 청주시 초정리에 있는 초정약수 상징탑. [사진 청주시]

“물이 죽었어유. 동치미도 담그고 속병 치료에 쓰던 약수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것슈….”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24일 충북 청주시 내수읍 초정리경로당. 주민 이복희(77·여)씨가 초정약수 얘기를 꺼내자 주민 6명이 “톡 쏘는 맛이 예전만 못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정약수는 이 마을의 자랑이다. 소화제가 귀하던 시절 음식을 먹고 체한 주민들은 이 물을 마시고 씻은 듯 나았다고 한다. 일부는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물을 받아뒀다가 씻었다. 여름철엔 설탕을 섞어 사이다를 만들어 먹었다.

초정약수 평균 탄산가스 함량 1122㎎/ℓ →382㎎/ℓ 감소
주민들 "축제만 열고 초정약수 관리 방안 소홀" 지적

 
초정약수는 탄산 함량이 높아 청량감이 강하고 칼슘·마그네슘 등 미네랄도 풍부하다. 일반인들에겐 천연탄산수로 알려졌다. 세계 광천학계는 이 약수를 미국 샤스터, 영국 나폴리나스와 함께 세계 3대 광천수로 꼽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물맛이 변했다. 변성수(56) 초정리 이장은 “과거보다 탄산이 약해져 목 넘김이 수월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1년을 보관해도 멀쩡했던 물이 이제 이끼가 끼고, 김치를 담그면 곰팡이가 생긴다”고 했다.
2016년 8월 초정문화공원을 찾은 관광객들이 약수를 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016년 8월 초정문화공원을 찾은 관광객들이 약수를 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세계 3대 광천수 명성 초정약수…탄산 3분의 1로 뚝 
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초정약수가 명성을 잃게 생겼다. 세종대왕이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눈병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유서 깊은 약수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충북도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3~4월 초정리 일대에서 취수한 초정약수의 탄산가스 농도가 최소 30㎎/ℓ, 최대 952㎎/ℓ로 나타났다. 취수 관정은 자연 우물인 팔각정과 음수대, 무료급수대 등 7곳이다. 이 중 4개 지점은 탄산함량이 유지됐으나 초정문화공원 일대 3곳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평균 탄산 함량은 382㎎/ℓ였다. 충북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는 “초정리 지하 암반에서 나오는 탄산가스의 이동경로가 바뀌었거나, 마그마에서 분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이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초정약수의 탄산 함량은 낮아지는 추세다. 2003년 보건환경연구원이 조사한 탄산 함량은 836∼1496㎎/ℓ(평균 1217㎎/ℓ)였다. 2009년 528∼1698㎎/ℓ(평균 1122㎎/ℓ)보다 크게 낮아졌다. 평균 탄산가스 함량만 비교하면 9년 새 3분의 1로 줄었다. 약수를 맛본 방문객들이 청량감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이유다.
초정약수 축제. [사진 청주시]

초정약수 축제. [사진 청주시]

초정삼거리 무료급수대에서 맛본 초정약수. 탄산가스 기포가 보인다. 최종권 기자

초정삼거리 무료급수대에서 맛본 초정약수. 탄산가스 기포가 보인다. 최종권 기자

‘대량 취수’ ‘탄산가스 이동경로 변동’ 추측…원인은 오리무중 
초정리에는 89개의 지하수 관정이 개발돼 있다. 사용하지 않는 11개의 관정을 제외한 나머지 78개 관정에서 2015년 기준 하루 475t의 지하수가 취수되고 있다. 하루 적정 개발 가능량(900t)의 약 53%다. 조성권 청주시 하수정책과 주무관은 “초정리에 사업장을 둔 음료·주류 제조업체와 휴게시설, 목욕탕에서 수십 년 동안 물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탄산 함량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한다”며 “89개 지하수 관정 중에는 농업용과 가정용 지하관정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취수량을 줄이면 탄산 함량이 다시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1998년 초정약수 평균 탄산 함량은 500㎎/ℓ 이하로 떨어졌다가 그해 먹는샘물 방사성 물질 검출 사건의 여파로 취수량이 줄자 2003년 평균 1217㎎/ℓ로 회복된 적이 있다.
 
박학순 청주시 지하수팀장은 “지하수 보전구역을 설정해 취수량을 제한하는 방법이 있지만, 탄산가스 함량이 줄었을 뿐 물이 오염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검토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폐 관정을 정비해 탄산가스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새로운 샘을 개발해 물을 뽑아내면 다시 탄산가스 함량이 높아질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변성수 이장은 “청주시가 매년 초정약수 축제를 개최하면서 정작 약수 보전 방안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며 “초정약수 보호를 위한 민·관 협치기구나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시는 초정문화공원에 행궁 조성사업을 진행 중이다. 최종권 기자

청주시는 초정문화공원에 행궁 조성사업을 진행 중이다. 최종권 기자

초정약수를 받아 놓으면 가스가 올라와 주둥이가 부풀어 오른다. 최종권 기자

초정약수를 받아 놓으면 가스가 올라와 주둥이가 부풀어 오른다. 최종권 기자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