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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김훈·조남주는 왜 이 책들을 골랐나

중앙일보 2018.07.27 16:21

명사 45명이 밝힌 '나는 이래서 이 책이 좋다'
 
예상대로 겹치는 책은 별로 없었다. 중앙일보 출판팀이 교보문고와 함께, 소설가·시인부터 정치학자, 정신과 전문의, 음악가, 종교인까지, 책 많이 읽고 글 잘 쓰기로 소문난 각계각층 45명에게 여름 휴가철 읽을만한 책을 추천받은 결과다. 2권이 겹쳐, 43권의 리스트를 얻었다. 소설책이 많은 가운데 서늘한 바이칼호 체험기도 있고, 죽음과 생명의 경계를 탐사한 책도 있다. 언제라도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책 리스트다. 45명은 왜 이 책들을 선택했을까. 이들이 보내온 추천글들을 소개한다. 짧지만 아름다운 산문들이다.  
 
◇김금희 소설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박연준 지음, 알마/에세이)

이 당차고 섬세하며 아름다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을 계산할 틈도 없이 엉엉 울었다. 화가 프리다 칼로를 조명하지만 그보다는 삶의 의지를 보태고 보태 이룩해낸 마음의 경지를 살피는 책. 장담한다. 이 씩씩한 시인의 글을 읽는 순간 “젖지 않는 자두, 그을음을 사랑하는 자두(…) 자두들이 한꺼번에, 여름 책상을 적신다”라는 문장을 담는 순간 당신은 남들과는 좀 다른 여름을 보내리라고. “길에서 흘렸던 내 눈물들이 한꺼번에 내게 달려”드는 듯하다가도 종내는 “모든 불행에도 유년이 있다”라는 말을 쥔 채 힘 있게 가을을 기다리게 되리라고.
 
◇김민정 시인 『시인장의 살인』(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엘릭시르/소설)
삶이 곧 죽음인데 삶이 영원히 삶인 것처럼 우리들은 그렇게들 산다. 결국 우리들을 살게 하는 힘은 그 망각에 있을 것이다. 와중에 소설을 왜 읽는가 하면 부지불식간에 좀비가 와서 다음엔 너야, 하고 등을 치는 현실의 오싹함을 상기하고 싶어서일 텐데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소설의 주제는 열라 재미나게 풀어쓴 우리들의 ‘역사’가 되렷다. 어제 사라진 사람의 뒤를 밟아야 오늘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 라는 건 우리들의 이기가 아니라 본능이렷다. 술술 읽히는 만큼 술을 부르는 소설이렷다. 밤에 읽고 맞은 아침은 어딘가 다른 빛의 밝음이기도 하렷다. 더운데 추운 거, 뜨거운데 차가운 거, 삶과 죽음이 그러하듯 이 책의 온도가 그러하렷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삼귀(미야베 미유키 지음, 북스피어/소설)
여름에는 역시 귀신 이야기다. 기이한 일을 겪은 이들이 찾아와 자초지종을 털어놓는 흑백의 방. 억울한 일도, 분노와 슬픔도 그녀에게 말하고 나면 조금은 나아진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와 사건들도 세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던 에도 시대의 쓸쓸하지만 따뜻한 풍경이 『삼귀』에서 그려진다. 그리고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지 알려준다.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대표 『굿 라이프』(최인철 지음, 21세기북스/자기계발서)
『프레임』으로 잘 알려진 최인철 교수가 들려주는 ‘행복한 삶’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언제부터 행복이란 단어를 사용했을까, 행복의 어원부터 유전적, 환경적 영향 등 그간의 다양한 연구를 통해 얻은 ‘행복 최고 권위자’의 통찰을 접할 수 있다. 어쩌면 ‘행복’이란 말을 더 자주 쓰고, 더 많이 생각할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번 휴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행복’이란 무엇인지, 또 ‘좋은 삶(굿 라이프)’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김별아 소설가 희망의 발견: 시베리아의 숲에서(실뱅 테송 지음, 까치/에세이)
간명한 슬픔 때문에 독자들은 이 책을 치유의 이야기로 읽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엔 보드카가 간절했고, 지금 지치고 아픈 (나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독주의 숨결로 속삭이고 싶어졌다. “저기, 이 세상의 어느 숲에, 삶의 행복과 아주 멀지 않은 무엇인가가 가능한 오두막 한 채가 있다는 사실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김사과 소설가 『사촌 베트』(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동해/소설)
발자크는 신기한 작가다. 인생사의 온갖 역경, 가난과 질병, 질투와 증오, 배신과 복수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끝내 안도와 희열의 감정을 선사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주색에 빠진 남편, 희생밖에 모르는 아내, 질투심에 불타는 사촌, 실패한 예술가, 교활한 수전노를 줄줄이 엮어 한바탕 고약한 이야기를 들려주더니 기묘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김연수 소설가 『열하일기』(전 3권, 박지원 지음, 돌베개/인문서)
여름이니까 이 책을 추천해도 좋겠다. 여러 판본을 읽어봤는데 김혈조 선생의 한문 번역이 제일 낫다. 『열하일기』는 말하자면 박지원이 청나라 문물을 홈비디오 카메라로 찍듯 모조리 기록한 여행기다. 비문(碑文) 등 지루한 부분은 건너뛰고 본격적인 여행기 부분만 읽어도 굉장히 재미있다. 날것 그대로의 당대 중국이 보인다. 그 시절 정보가 이런 식으로 유통됐구나, 알 수 있다.   
 
◇김영하 소설가 『밀레니엄』(전 4권, 스티그 라르손 지음, 문학동네/소설)

범죄율이 매우 낮고 정치는 안정돼 있으며 소득이 최고 수준으로 높은 나라에 사는 이들은 길고 긴 겨울밤을 어떻게 보낼까. 최고의 방법은 벽 난롯가에 놓인 소파에 앉아서 범죄 소설을 읽는 것이다. 전 세계에 난데없는 스칸디나비아 스릴러 붐을 일으킨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김용택 시인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울라브하우게 지음, 봄날의책/시)
심심하고 또 심심하고 다시 또 심심하라. 심심하면 다 보여서 심심하지 않다. 눈에 뜨이는 나무 한 그루를 자세히 보라. 나무는 정면이 없다. 나무는 경계도 없다. 나무에 바람이 불면 나무는 '바람 부는 나무'가 된다. 올라브 하우게의 시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얼마나 당당한가 어린 나무들은/ 바람이 아니면/ 어디에도 굽힌 적이 없다". 
 
◇김혜남 정신과 전문의 『몸은 기억한다』(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을유문화사/심리치료서)
크고 작은 트라우마 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그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는 책.
 
◇김훈 소설가 『한국 1950 전쟁과 평화』(박명림 지음, 나남/역사)
6·25 때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쓴 책이다. 이번 여름에 우리가 평화의 씨앗을 잉태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 닥친 최대 문제다. 이 책은 한국전쟁 동안에 우리가 우리에게 저지른 죄악을 증언한다. 악의 진앙이 사람의 마음 속이다. 우리는 남쪽이건 북쪽이건 울면서 이 책을 읽자. 평화는 울음의 진정성 위에 깃든다. 
 
◇문유석 판사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스티븐 핑커 지음, 사이언스북스/교양서)
내 책 『개인주의자 선언』이 이야기하는 합리주의, 비관적 낙관주의, 현실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본주의’를 석학이 과학적 근거를 일일이 붙여 1300페이지나 쓴다면 이런 책이 된다. 인류가 어떻게 수천 년에 걸쳐 폭력성을 억제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진화시켜왔는지에 관한 실증적 분석. 유발 하라리 책들이 커피면 이 책은 티오피. 인류 역사는 거들뿐. 
 
◇미산 스님 『마음은 이미 마음을 알고 있다』(한자경 지음, 김영사/불교철학)

한자경 선생은 독일에서 서양철학, 그중에서도 칸트철학으로 학위를 하고 동국대에 와서 불교의 유식 철학을 공부했다. 그동안 수행 관련 책을 많이 썼는데, 수행을 직접 체험하고 나니까 그간의 수행이 너무나 많은 언어의 장난 속에 빠져 있었다는 자각을 한 것 같다. 계급장 다 떼고 이해하고 체험한 마음공부를 매우 명료한 언어로 쓴 게 이 책이다. 내용이 깊다.  
 
◇박상준 SF기획자 『완전사회』(문윤성 지음, 아작/SF)

페미니즘과 젠더 평등의 이상이 실현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 소설은 바로 그런 내용을 정공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50년 만에 재간된 책이라는 것. 『완전사회』는 1967년에 처음 출간되었던 한국 최초의 성인용 창작 장편 SF소설이다. 이 작품은 과학 기술적 상상력도 상당하지만 사회적, 철학적 상상력이 두드러진다. 게다가 지금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만큼 스토리텔링도 흥미진진하다. 한 방송의 앵커 브리핑에서도 언급할 만큼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색다른 이야기이다. 한국 소설의 독특한 경지를 추구한 걸작. 
 
◇박형준 동아대 교수 『제4의 혁명』(존 미클스웨이트 등 지음, 21세기북스/정책학)
현대 사회에서 국가의 본질은 무엇인지 글로벌화와 신기술혁명의 조건 속에서 큰 정부, 작은 정부 논의의 구도를 넘어 무능한 정부가 아닌 유능한 정부를 위한 국가경영 철학과 비전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지 뛰어난 역사적 통찰력으로 명쾌하게 제시한다. 
 
◇배철현 서울대 교수 『철학의 위안』(보에티우스 지음, 현대지성/교양철학)

고대 로마제국의 사상가인 보에티우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당한 후, 사형을 기다리며 옥중에서 쓴 글입니다. 이 책에는 인간이 아무리 비참하고 불행한 운명에 휩싸이더라도 마음의 평정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와 삶의 실천적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나’로 태어나기 위한 나만의 동력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백영옥 소설가 『내 방 여행하는 법』(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지음, 유유/인문교양)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것이 광적으로 여행을 권하는 사회에 대한 반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책은 1790년대 42일 동안 가택 연금을 당한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에세이었다. 군인이었던 그는 이 책을 계기로 『한밤중, 내 방 여행하는 법』 같은 책을 쓰기도 했다. 『내 방 여행하는 법』은 역설적으로 여행에 넌더리 난 사람들의 치유서일 수 있다. SNS와 온갖 방송에 떠도는 여행지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 관광객이 아니라 창의적인 여행객이 되려다가 실패한 사람들, 어디든 떠나고 싶지만 어디에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책 말이다. 더불어 사물 다시 보기에 관련한 안내서라 말할 수 있다. 매일 보는 물건에 별 뜻 없이 적용하는 ‘보다’라는 동사를 새롭게 재해석한 책 말이다. 누구라도 자기 방에 한 달 이상 감금된다면 방에 놓여 있는 침대와 여행용 외투, 지도, 초상화가 예사로 보이진 않을 것이다.
 
◇성석제 소설가 『아재라서』(전 2권, 김수박 지음, 사계절/만화)
1990년대 초반 남자 고등학교 교실의 세밀한 풍경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내면과 권력 구도의 형성과정을 들여다보게 하는 만화. 쉽고도 간단치 않고 재미있고도 묵직하며 남의 이야기 같은데 내 인생의 한 부분과 절절히 공명케 한다. '믿고 보는' 작가의 수작. 
 
◇손열음 피아니스트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 지음, 문학과지성사/소설)
부정적 뉘앙스의 “교과서적이다”이라는 표현에 나는 자주 반기를 들고 싶어진다. 애틋한 작품 중 교과서에 나왔던 것들이 참 많은데 말이다. ‘메밀꽃 필 무렵’이 그중 하나다. 우리 아빠의, 나의, 또 오늘날 꼬마들의 눈시울을 적셔온 우리의 고전. ‘숨이 막힐 지경으로 흐뭇한’ 메밀 꽃밭의 서사가 ‘등줄기를 훅훅 볶는’ 무더위에 지친 심신을 여전히 ‘청청하게’ 울리나니.  
 
◇신형철 문학평론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허수경 지음, 문학과지성사/시)

독일에서 시인은 아프다. 1992년에 독일로 떠난 이후에도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로 시를 써온 허수경 시인이 많이 아프다. 젊은 시인·노동자·노점상들에게 아부하는 사회에서 살아보는 게 소망이라고 말하는 착한 시인인데, 이런 시인은 안 아프면 안 되냐고 나는 화를 낸다. 무슨 말도 무력하고 무참하게 느껴져 독일로 편지 한 줄 띄우지 못한 채 그저 시인의 시집만 내내 가방에 넣어 다닌다. 나는 본래 읽는 사람이니까, 기도하듯 그의 시를 읽으면 그가 낫기라도 할 것처럼, 그런 사나운 심정으로.  
 
◇심보선 시인 『페소아』(김한민 지음, 아르테/인문교양)
포르투갈 시인 페소아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 평전이자 비평서이자 여행기이자 그 외의 모든 것인 책.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쾌락의 정원』(이어 지음, 글항아리/동양고전)
17세기 중국의 지식인이 쓴, 유쾌하고 멋지게 인생을 사는 방법. 화장법, 옷을 입고 신발 신는 법에서부터 집 꾸미고, 가구 장만하고, 음식 즐기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쾌락을 즐기는 방법과 체험과 욕구를 거침없이 설명했다. 문밖에서 벌어지는 정치나 사회는 모르겠고, 내 취향의 정원에서 물질의 풍요를 즐기겠다는 점에서 현대와 이어진다. 제목의 쾌락이란 말에 너무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유현준 건축가 『초공간』(미치오 카쿠 지음, 김영사/교양물리)
이보다 더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는 책은 없었다. 한 차원 높은 시각을 갖게 하는 책. 
 
◇은희경 소설가 『파리의 여자들』(장미란 지음, 문학동네/에세이)
여성, 프랑스, 심리학이 만나는 흥미로운 이야기. 심리학자인 저자가 파리에 오래 살면서 깊이 사귀어온 프랑스 여성들의 삶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했다. 부유층 아파트의 관리인에서부터 고성에 사는 남작 부인까지 다섯 개의 이야기 속에 깃든 역사와 문화, 3대에 걸친 가족사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디테일은 풍부하고 섬세하며 문장은 담담하고 정확하고 아름답다. 학자다운 냉철함 뒤에 인간을 다각도로 이해하려는 따뜻함과 품위를 만나게 된다. ‘때로 내려놓고 싶어지는 이 삶에 대해 어쩐지 경건해지더라’며 이 책을 소개해준 친구가 고맙다.
 
◇이경미 영화감독 『아웃』(전 2권, 기리노 나쓰오 지음, 황금가지/소설)
이 이야기는 한 여성이 끝내 자유를 찾아 홀로 서는 이야기다. 여기 여성들에게는 연대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아주 비정하고 이기적이며 오로지 자기 욕망에 충실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작가의 솔직하고 대담한 시선에 충격받을 것이다. 때론 부끄럽지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낄 것이다. 파멸의 에너지가 이렇게 매혹적이다. 
 
◇이기주 작가 『동양방랑』(후지와라 신야 지음, 작가정신/에세이)

바캉스는 ‘텅 비어 있다’는 뜻의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에서 유래했다. 진정한 휴가는 무작정 쉬는 것이 아니라 어깨를 짓누르는 무언가를 비워내는 일이다. 휴가 때 펼쳐볼 만한 책으로 『동양방랑』을 추천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고민이 행간 곳곳에 녹아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릴지도 모른다. 
 
◇이문열 소설가 『백경』(허먼 멜빌 지음, 홍신문화사/소설)

19세기 바다에서 벌어지는 그리스 비극의 잔영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젊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의 화자 이스마엘은 성경에서는 지금 아랍인의 조상이다. 추방된 자, 떠도는 자를 상징한다. 그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 죽을 줄 알면서, 그래도 가서 싸우다 죽는 것, 그게 바로 그리스 비극의 정수인데, 모비 딕을 쫓는 선장 에이허브의 비극을 목격한다.  
 
◇이승우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의 말』(파스칼 키냐르 등 지음, 마음산책/인터뷰집)

왜 그의 글이 시가 되려 하고 음악에 이르려고 하는지, 어떻게 그 시와 음악이 마침내 침묵에 닿게 되는지 알 것 같다. 그의 글들을 이해하기 위한 꽤 친절한 자습서. 그러나 천천히 음미할 것. 왜냐하면 한마디 말이 천 개의 문장에서 나오고 한 개의 문장이 천 권의 책에서 나온 것이니까. 
 
◇이병률 시인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장석주 지음, 달/에세이)
세상의 모든 맑은 에너지가 곱게 배어 있는 책, 자기를 돌보며 쉬엄쉬엄 살라 하는 책, 마음속 푸른 지도 위에 동선을 그어주는 책, 여기 이 책, 장석주 시인의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는 자신의 내면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외친다. 화내지 말고, 바쁘지 말고, 제발 자기 좀 챙기란 말이에요!! 
 
◇이외수 소설가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류근 지음, 해냄/산문집)

류근 시인의 글은 다소 애교 섞인 과장은 있더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인간과 만물에 대한 측은지심, 가없는 사랑이 느껴져 울컥 목이 멜 때가 많습니다. 그 안에는 형언할 수 없는 인내심과, 형언할 수 없는 자괴감과, 형언할 수 없는 억울함과,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저는 서슴없이 류근을 진짜 글쟁이라고 소개합니다.  
 
◇이해인 수녀 『단순한 기쁨』(피에르 신부 지음, 마음산책/에세이)
“수도원의 고요한 평화도 분주히 활동 중임을 알라.” 홀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할 것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오직 우리는 영원히 사랑 안에서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산다. 이 길을 끝까지 가도록 서로서로 돕자. 혼자서 어떻게 거기에 이를 수 있겠는가? 이렇게 역설하는 피에르 신부의 말을 새기고 또 새기면서 그의 책을 이 여름에 다시 읽어본다.  
 
◇장강명 소설가 『13계단』(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황금가지/소설)

젊은 전과자와 교도관에게 어느 사형수의 무죄를 밝혀주면 거액을 주겠다는 제안이 온다. 의뢰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사형 집행은 석 달 뒤.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 『13계단』은 흡인력이 어마어마해서, 아무리 덥고 습한 날에 집어 들어도 푹 빠져들 수 있는 책이다. 내게 다카노 가즈아키는 ‘믿고 보는 작가’인데, 그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재미만큼 여운도 크다. 
 
◇장동선 과학자 『열두 발자국』(정재승 지음, 어크로스/인문교양)

여행을 떠나면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새로운 지식? 미래 트렌드? 감동을 주는 통찰? 삶 속 지혜를 담은 에세이? 사실 어떤 책이건 다 못 읽고 돌아올 때가 많다. 하지만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을 펴드는 순간, 당신은 책을 덮지 못한다. 그의 친필로 쓴 것처럼 인간이라는 “미지의 숲”으로 탐험을 떠나면 그 안에 지식과 통찰, 감동과 지혜가 모두 있기에. 
 
◇장은수 출판평론가 『경애의 마음』(김금희 지음, 창비/소설)

1999년 10월 동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에서 친구를 잃은 경애와 상수. 드러낼 길 없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두 사람이 서로 고통을 확인하고 긍정함으로써, 제목 그대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마음을 열매 맺는 과정을 그려낸 수작. 지옥 같은 세계에서도 인생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것을 믿는다면 올여름 이 작품. 역사의 비극과 상처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문학의 애도와 치유의 길이 선명하다. 
 
◇정명화 첼리스트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프랜시스 메이어스 지음, 작가정신/에세이)

가족이 딸린 두 딸과 시간을 같이 보내는 일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탈리아에 가자고 하면 두말 않고 흔쾌히 나선다. 이래서인가. 이탈리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문화, 음식, 패션, 예술과 역사를 탐구하는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지난 6월에도 가족과 토스카나에서 지내며 전에 읽은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수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이탈리아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미국인 메이어스의 자서전이다. 이혼 후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토스카나의 고색창연한 코르토나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평범할 수 있는 이탈리아 음식과 올리브 기름, 와인, 치즈, 그리고 토스카나의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풍광이 어우러져 그의 소박한 일상이 정겹게 다가온다. 오래된 저택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과 역경은 크게 공감하는 대목이었다. 나 역시 40여 년 전 토스카나 인근의 움브리아에서 허물어진 집을 보수하려다 포기한 경험이 있어 저자의 독백이 생생하게 전해졌다.이 책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가족과 마을 중심의 꾸밈없고 소탈한 생활, 신선한 식자재로 만든 음식, 성당을 중심으로 한 마을 단위의 광장 문화.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면 이탈리아는 반드시 가보아야 할 곳이다. 아기자기한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이탈리아에 ‘흠뻑’ 빠진 저자의 말이 귓가에 들려올 것이다. “아 찬란한 여름, 100년이 지속되기를(May summer last a hundred years)."

 
◇정병설 서울대 교수 『서울 문학 기행』(방민호 지음, 아르테/인문교양)

윤동주의 누상동, 박인환의 명동, 이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한국현대문학사의 뒷골목을 찾아 나가자. 
 
◇정유정 소설가 『노란 잠수함』(이재량 지음, 나무옆의자/소설)

휴가에 동반할 책은 아무래도 재미있는 게 좋다. 신나는 로드 픽션이라면 최고로 좋겠고. 여기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가 있다. 불법 포르노를 파는 청년 현태는 만화방을 하는 두 노인과 동네 비행 소녀의 수작에 걸려들어 원치 않는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설상가상 유괴범으로 몰려 경찰의 추적까지 받게 된다. 속도감 넘치는 문체를 엔진 삼아 시속 300㎞로 내달리는, 이 기묘하고 유머러스하며 감동적인 여정에 동참해 보시기를.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의식의 강』(올리버 색스 지음, 알마/교양)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가 남긴 마지막 에세이들이다. 현미경 같은 관찰력과 해박한 지식들, 그리고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진화, 시간, 창의력, 의식 등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룬다. 특히 그가 동경했던 과학자들의 연구를 서술한 부분은 애정이 넘친다. 올리버 색스처럼 글을 쓰고 싶다. 우주와 자연과 생명과 의식을 그처럼 경이로움이 가득 찬 눈으로, 아름다운 문장으로 기술하고 싶다.  
 
◇조경란 소설가 『밧줄』(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 지음, 바다/소설)
이 얇은 소설의 내용은 무척 간단합니다. 어느 날 초원에 놓여 있는 밧줄 하나를 동네 사람이 발견합니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작가는 “엄청난 결과를 야기하는 아주 사소한 동기”에 관한 소설이라고 하는군요. 무더위에는 조금 무섭고 오싹하게 만들어주는 소설이 제격이지요. 게다가 결말에 가서는 앗, 이게 뭐지? 라고 생각하게 하는. 
 
◇조남주 소설가 『베어타운』(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다산책방/소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소설이다. 베어타운의 눈 덮인 숲과 얼어붙은 호수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서 그렇다. 지역사회의 발전과 평온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가장 어리고 약한 여자아이를 짓밟는 평범하고 순박한 소시민들이 섬뜩해서 그렇다. 무엇보다 그 모습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너무 닮아서 그렇다. 
 
◇천운영 소설가 『북극을 꿈꾸다』(배리 로페즈 지음, 봄날의책/에세이)
이 여름엔, 누군가 이 책을 소리 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가만히 누워 듣고. 그러는 것만으로도 북극에 가 있다 느낄 터이니. 듣다 잠이 들어도 북극 꿈을 꿀 터이니. 일각고래와 사향소로 살아보는 시간. 오로라와 빙산의 빛으로 서늘해지는 시간. 사진 한장 없어도 어쩐지 본 것 같고, 알 것 같은. 이것이 바로 언어의 마술. 북극을 꿈꾸는 일은 여름이 제격.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정치철학』(스티븐 스미스 지음, 문학동네/인문)

철학을 거쳐, 루소, 토크빌, 그리고 애국심에 이르기까지 12개의 장을 통해 주요 정치철학자들의 사상과 이론을 다룬 이 분야의 명작 중 하나이다. 서양 정치철학 고전의 핵심내용을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으로 압축하면서 깊이 있게 다뤘다. 또한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하게 쓰였으면서도, 정치철학의 심오함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지닌다.  
 
◇최재천 이대 석좌교수 『상상의 책꽂이』(서현 지음, 효형출판/교양)

저자 서현은 집도 많이 짓지만 그 못지않게 글도 많이 짓는 ‘이상한 마을의 건축가’다. 그가 고른 현대판 ‘사자성어’ 32개가 여러분을 무더위의 찜통으로부터 구원해내 시원한 상상의 마을로 인도할 것이다. ‘개굴개굴’이 정치와 외교에 무슨 연관이 있으며 ‘오토바이’가 과학과 사회에 내뿜는 함의는 무엇일까? 그가 지은 글집에서 세상을 내다보라.  
 
◇표정훈 출판평론가 『희망의 발견: 시베리아의 숲에서』(실뱅 테송 지음, 까치/에세이)

시베리아, 그 이름만으로 여름이 여러 걸음 물러가는 곳. 저자가 2010년 시베리아 바이칼 호숫가 오두막에서 6개월간 쓴 일기다. 영하 30도 추위에다가 가까운 마을이 100㎞ 바깥인 곳에서 사서 고생한 이유는?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이 책의 핵심. 그것은 '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생 질문이기도 했으니 피서와 성찰을 겸하기 좋은 책이다. 
 
◇혜민 스님 『굿 라이프』(최인철 지음, 21세기북스/자기계발서)

내 삶을 좀 더 행복하고 의미 있고 품격있게 살고 싶다는 소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좋은 인생 “굿 라이프”인지 우리는 학교에서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이 책은 최근 심리학계에서 밝혀낸 가장 최신 결과들을 바탕으로 좋은 인생에 대한 정의와 삶의 기술을 가르쳐 드리는 귀중한 책이어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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