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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하극상→데스매치…계엄문건 3가지 시나리오

중앙일보 2018.07.27 00:13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은 어떤 경위로 작성됐을까. 미국에서 귀국하지 않고 있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이 문건을 작성했을까. 지난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충돌을 빚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이석구 기무사령관 가운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국방위에서 기무사 고위 간부들의 폭로와 송 장관의 감정 섞인 발언으로 사태는 더욱 커졌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기무사 압수수색과 함께 장성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국회 청문회도 열린다. 그래서 궁금증들을 정리해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작성 경위=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은 지난해 탄핵 정국이 정점이었던 2017년 3월쯤 작성됐다. 그때 대규모 촛불 집회가 수시로 열렸다. 당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될 경우 탄핵에 찬성하는 군중들이 청와대로 몰려갈 분위기였다. 상황은 예측불허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문서가 위수령·계엄령 검토 문건(8쪽)과 참고자료(67쪽)다. 기무사 출신 예비역 대령인 김한경 시큐리티팩트 총괄 에디터는 이 문건이 작성된 경위로 3가지 시나리오를 들었다.
 
첫째는 이철희(민주당) 의원의 위수령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지시로 작성됐다는 주장이다. 한 전 장관 측은 “해당 문건은 이철희 의원이 위수령 문제를 질의해와 비상시 위수령과 계엄령의 법적 요건 및 절차를 살펴본 내부 검토 자료”라고 말했다. 한 전 장관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실과 합참에 검토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진 괜찮다. 문제는 기무사가 끼어들면서 발생했다. 당시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우리도 위수령을 검토해보겠다”고 제안했고 한 전 장관은 승낙했다고 한다. 그런데 조 전 사령관은 기무사로 돌아가 계엄령 위주로 검토시켰다는 것이다. 기무사 참모장 소강원 소장은 지난 24일 국방위에서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한민구 국방부 장관 지시라고 했다”고 밝혔다. 기무사는 을지훈련 때마다 합동수사본부 역할을 자처하며 계엄훈련을 해와 익숙한 일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과거 쿠데타에 가담한 전력이 있는 기무사가 계엄령 문건을 작성한 것은 오해 소지가 있다. 더구나 계엄과 같은 중대한 사안은 국방부 정책실이나 합참 계엄과에서 검토하는 게 맞다. 그래서 한 전 장관이 조 전 사령관에게도 계엄령 문건 작성을 허락한 경위는 의문이다. 한 전 장관이 그 이유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
 
둘째는 조 전 사령관이 청와대로부터 언질을 받고 소강원에게 작성을 지시했을 가능성이다. 그 과정에서 이철희 의원 질의에 답변을 준비하는 한 전 장관을 슬쩍 걸치면서 기무사도 작성에 참여했을 수가 있다. 기무사 출신이 아니었던 조 전 사령관이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과정에서 말들이 많았다. 최순실-우병우 라인과 연관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조 전 사령관은 조속히 귀국해 사실관계를 해명해야 한다.
 
셋째는 한 전 장관이 청와대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고 기무사의 계엄 검토를 지시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평소 가던 돌다리도 소리가 이상하면 되돌아올 정도로 신중하고 중립적인 한 전 장관이 이를 수용했을 가능성은 작을 것으로 보인다.
 
◆시행 가능한 문건인가=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을 두고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25일 “12.12쿠데타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0일 계엄령 참고자료를 도표까지 만들어 상세하게 발표했다. 이 브리핑은 마치 박근혜 정부가 친위 쿠데타를 모의한 듯한 인상을 줬다. 청와대는 이 자료를 내란음모 시행계획 수준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래서 한 전 장관을 내란음모 혐의로 어제 출국금지했다. 실제 성난 군중들을 경찰력으로 제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이 자료는 계엄령을 시행하는 데 도움이 됐을지 모른다.
 
내란음모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우선 기무사는 계엄령을 시행하는 법적 기관이 아니다. 설사 기무사가 강제력을 동원해도 현재는 응할 군 조직이 없다. 과거처럼 군 사조직도 없다. 오히려 요즘 군대 문화로는 기무사가 제압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군 내에서 기무사의 비중도 떨어졌다. 그런 점에서 이 문건 작성을 두고 내란음모로 몰아붙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기무사가 실제 계엄령을 모의했다면 일반부대와 세부 시행방안을 주고받았을 텐데 아직 그런 문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또한 실제 계엄을 실시하려면 국무회의를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초안도 안 되는 이 문건은 대폭 수정될 수밖에 없다.
 
이 세부자료의 특징은 2급 비밀로 된 계엄업무편람의 내용을 발췌하고 과거 사례에다 기무사의 의견을 더한 내용이라는 게 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의 분석이다. 따라서 말 그대로 참고자료로 보인다. 더구나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문건이었다면 조 전 사령관이 존안 지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 꼼꼼했던 조 전 사령관의 업무 스타일도 이 자료를 계엄령 시행 문건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다.
 
◆송 장관의 인식=송 장관은 올 3월 16일 이 사령관으로부터 계엄령 문건을 보고받고도 청와대에 석 달이나 늑장 보고한 의심을 사고 있다. 또 위수령 검토는 문제가 안 된다는 인식도 갖고 있었다. 기무사령관이 위중한 사안이라고 했는데도 송 장관은 자료를 놔두고 가라고 했다. 물론 그때 송 장관의 일정이 바빴던 이유는 있다. 송 장관은 또 늑장 보고한 이유로 지방선거와 4.27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과거에도 정부 내에선 큰 행사가 있으면 다른 사안은 로-키(Low Key)로 하라는 보도지침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송 장관의 행동과 인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면 송 장관으로선 해명이 쉽지 않다. 계엄령은 주로 육군 소관이고 해·공군은 관심 밖이라는 점도 해군 출신인 송 장관의 태도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이석구 기무사령관의 송 장관에 대한 보고 시간 진실공방, 그리고 국방부에 파견된 기무사 민병삼 대령의 송 장관에 대한 공격은 육·해·공군 사이의 갈등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또한 송 장관의 인식이 청와대와 차이가 있다는 내용의 민 대령 폭로로 송 장관이 궁지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송 장관과 기무사의 다툼으로 군 지휘권은 땅에 떨어졌다. 이를 두고 보는 육군 출신 일부 예비역 장성들은 민 대령을 참군인이라고까지 칭찬했다. 개혁 대상이었던 기무사가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그러나 어제부터 여당이 송 장관 구하기에 나섰다. 또 업무 공유와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국회 국방위에서 공개한 민 대령의 행동은 부적절하다. 일반적으로 간담회에선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어 대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분란은 군 내부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오죽하면 국회에서 군 핵심부 간 골육상쟁이 벌어진 직후 곧바로 차기 국방부 장관을 점치는 찌라시가 나돌 만큼 우리 군은 콩가루 집안이 돼 버렸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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