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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화장 가는 딸 바라보는 부모 "아, 진짜 떠나는구나"

중앙일보 2018.07.25 15:01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5)
2018년 봄, 딸의 손을 잡고 식장으로 걸어가는 신부 아빠. [그림 홍미옥(by 갤럭시 노트5/ 아트레이지)]

2018년 봄, 딸의 손을 잡고 식장으로 걸어가는 신부 아빠. [그림 홍미옥(by 갤럭시 노트5/ 아트레이지)]

 
신부보다 더 떨고 있는 아빠의 발걸음
아마도 밤새 울었나 보다. 듬직하기만 하던 김 선생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불안한 걸 보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호탕하게 웃어가며 하객을 맞던 그였다. 하지만 정작 식장에 들어서자 어느새 낯선 곳의 문을 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아이 표정이 되고 말았다.
 
지난봄, 4월의 거리는 분홍빛 꽃들이 춤을 추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듯했다. 그런 봄날에 딸아이의 손을 잡고 나선 그는 한겨울 벌판의 외로운 나무처럼 쓸쓸해 보이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그날은 김 선생의 딸아이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 한 달 전부터 가슴 한가운데에 에어컨을 틀어 놓은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서늘했다는 그와, 딸아이의 신접살림에 쓰일 예쁘고 작은 양념 통을 챙기며 펑펑 울었다는 그의 아내.
 
결혼식 당일 아침 신부 화장을 하러 미리 집을 나서는 딸아이의 뒷모습에 ‘이제는 진짜 가버렸다’며 통곡했다던 김 선생 부부다. 고운 한복과 멋진 신사복으로 가슴엔 꽃을 달고 웃고 있지만 그 섭섭한 마음속은 짐작하고도 남을 터였다.
 
신부 아빠의 떨리는 발걸음과 엄마 같은 아내가 되라는 울음 섞인 덕담을 듣던 순간이었다. 난 마들렌과 홍차를 맛보며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아득한 예전 어느 골목길로 들어가고 말았다.
 
1973년 여름, 내 어릴 적 골목길의 풍경. [그림 홍미옥(by 갤럭시 노트5 S노트)]

1973년 여름, 내 어릴 적 골목길의 풍경. [그림 홍미옥(by 갤럭시 노트5 S노트)]

 
유난히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의 잔상! 당시엔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난 열한 살 5학년의 언니였고 동네 이쁜이로 통하던 동생은 겨우 세 살이었다. 자꾸만 내 손아귀를 벗어나려는 어린 동생을 달래던 난 한창 쑥쑥 자라던 시기여서 모든 옷이 저렇게 금세 작아지고 짧아지기만 했다. 그림 속의 젊은 아빠는 집 앞 골목에서 두 딸을 카메라에 담느라 열심이다.
 
그 시절엔 토요 휴무라는 게 없었으니 아마도 일요일일 게다. 새로운 취미에 빠진 아빠는 귀한 휴일을 사진 찍기에 통째로 내어준 게 틀림없다. 여름이면 장미와 포도가 대문 위에 넝쿨을 만들던 그 집은 젊은 가장의 땀으로 이뤄진 아담하고도 뿌듯한 보금자리였다. 당시 중국집에 자장면을 배달시킬라치면 주소를 말하는 대신에 골목 끝 포도나무 집 혹은 장미꽃 피는 집으로 말하곤 했던 낭만적 일화도 생각난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던 아빠는 열한 살 큰딸과 자꾸만 달아나려는 세 살 먹은 막내딸을 예쁘게 담으려 한여름 뙤약볕에 서 있다. 이상도 하지, 남의 결혼식장에서 느닷없이 몇십년 전 그 옛집 골목길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르니 말이다. 그때의 햇빛도 바람도 그리고 냄새까지도 마치 어제 일처럼 지나간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부터 오늘 아침의 일조차도 생각이 나지 않는 일이 허다한데 옛날 일들은 이다지 선명할까?
 
동생 친구였던 은전이네 집 시멘트벽 위엔 도둑 방지용으로 깨진 병 조각이 박혀 있고, 골목 끝 내 친구 인경이네 집 앞 나무 전봇대엔 개 조심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다. 목줄도 없이 돌아다니던 제법 크고 사나웠던 누런 개가 전봇대 아래에 버티고 서 있는 날엔 집에도 못 가고 골목 입구를 서성거렸던 일도 함께 떠올랐다. 
 
당시 유행이던 구멍 뚫린 벽돌을 담장 위에 장식해 놓았던 왕눈이 영희네 집, 장독대 위에 무시무시한 철조망으로 철저한 방범을 준비했던 모범생 문원 언니네 집 등. 뜬금없이 결혼식 축가가 연주되는 도중 도중에 내 어릴 적 골목길 풍경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무슨 까닭일까?
 
나도 손잡아줄 든든한 아빠가 있었다
사실 난 아빠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는, 그 흔한 걸 해보지 못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의 결혼식을 못 보고 떠나셨기 때문이다. 오십이 넘은 지금도 서슴없이 '아빠'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 건 아직도 저 골목길에서 동생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열한 살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귀로는 결혼식 축가를 듣고 눈으로는 신부 아버지의 떨리는 발걸음을 보면서 마음으론 내 어릴 적 저 골목길로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난 결혼식 혼주 자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중년의 아줌마다. 내 그림 속 젊은 아빠보다도 훨씬 나이가 들어버린 딸인 거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식도 품을 벗어나고 주위 모든 것들이 멀어져 간다. 하지만 가슴속 어딘가에 담아 두었던 소중하고 귀한 추억은 이렇게 불현듯 나타나 내 손을 꼭 잡고 말해 주는 것 같다. ‘힘내’라고. 그날, 아름다웠던 신부와 못내 섭섭한 신부 아빠의 뒷모습을 그리면서 몇십년 전 내 어릴 적 골목길도 함께 그려 보았다. 현장 사진과 내 기억 속 장면을 작은 화면 위에 되살리며 한마디! 그래, 나도 손잡아 줄 든든한 아빠가 있었다!
 
[오늘의 드로잉 팁]
ArtRage앱 레이어(layer)기능. [사진 홍미옥]

ArtRage앱 레이어(layer)기능. [사진 홍미옥]

지난번 4회에서는 아트레이지(Art Rage) 앱을 이용해 그리는 법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싶은 사진을 화면 위에 불러와서 대략의 스케치를 하고 밑바탕을 채색한 후엔 좀 더 차분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때 가장 많이 애용되는 기능이 레이어(layer)인데 쉽게 말하면 그림 위에 겹쳐서 그리는 투명종이 혹은 트레이싱 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그리고 싶은 사진 위에 투명 종이를 올려놓고 선을 따거나 할 때도 유용하다.
 
사진 속 오른편 상단에 종이를 겹쳐 놓은 모양의 버튼이 레이어 메뉴인데 클릭 후 갤러리에서 이미지를 가져오면 불투명도까지 자동으로 조절, 배치가 이루어진다. 기본선 스케치 작업을 마친 후 눈 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하면 사진이 사라지고 선 스케치만 남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는 쉽고도 유용한 기능이다. 그다음엔 아트레이지의 다양한 브러시를 사용해 본인의 취향에 맞는 색을 찾아 채색해 보자. 이번 그림 중 결혼식 그림은 에어 브러시와 잉크 펜 브러시를 주로 사용했다.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keepan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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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옥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필진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 둘도 없는 친구인 스마트폰과 함께 세상 이야기를 그리는 중년 주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중년도 아직 늦지 않았음을 그림을 통해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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