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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었다"···청렴 강조한 노회찬은 '오세훈법'에 무너졌다

중앙일보 2018.07.24 11:00
서울 신촌 세브란스에 차려진 노회찬 의원 빈소 앞 전광판에 고인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신촌 세브란스에 차려진 노회찬 의원 빈소 앞 전광판에 고인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노회찬(62) 정의당 원내대표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원인은 결국 자신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였다. 
줄곧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던 노 원내대표는 투신 직전 유서를 통해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로부터 4000만원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경공모는 구속수감 중인 ‘드루킹’ 김동원(49)씨가 이끄는 정치 사조직이다.  

특검 수사대로였다면 정자법 위반 처벌 불가피
'오세훈 법' 개인 정치자금 기부만 허용
청렴 강조한 노회찬에게 역설적 작용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노 원내대표의 고교 동기동창이자 경공모 회원인 ‘아보카’ 도 모 변호사를 통해 불법 정치자금 5000만원을 수수했다고 봤다. 시기는 2016년 3월로 노 원내대표가 경남 창원 성산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선거운동자금이 필요했던 때였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법인ㆍ단체의 정치자금법 기부 행위는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오직 개인 한도로만 2000만원 이내에서 정치인 후원회를 거쳐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다. 2004년 제정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이른바 ‘오세훈 법’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국회의원 시절 발의한 법안으로 이를 통해 차떼기ㆍ떡값 등의 논란을 빚었던 ‘3김 시대’까지의 정치자금 수수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다.  
 
오세훈 법은 역설적으로 청렴을 강조했던 노 원내대표를 코너에 몰리게 했다. 경공모 또는 느릅나무 출판사 같은 특정 단체를 통해 정치자금을 받았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노 원내대표는 범법자가 되기 때문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후원회를 거치지 않았을뿐더러 단체를 통해 정치자금을 받았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처벌 대상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총선 직전이었기 때문에 공직선거법 위반까지 적용됐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16대 국회의원 시절인 2004년 이른바 '오세훈 법'을 발의했다. [연합뉴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16대 국회의원 시절인 2004년 이른바 '오세훈 법'을 발의했다. [연합뉴스]

실제로 대법원은 2015년 이모 전 진보신당 사무총장 등이 SK브로드밴드 노조, LIG손해보험 노조 등에서 거둬들인 정치자금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해 이들에게 벌금 500만~1000만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당시 대법원은 노조 집행부가 노조원에게 정치 기부금을 모은 행위도  '단체 형태'로 건넨 불법 정치자금으로 봤다. 실제로는 노조가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진보 정치권 안팎에선 오세훈 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노동조합ㆍ시민단체를 통한 단체 후원금 제한 규정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재 정치자금법 체계에선 정몽준ㆍ안철수 같은 부호 정치인만 마음껏 정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차떼기 사건’으로 대표되는 불법 정치자금 차단을 목적으로 했던 오세훈 법이 대의 민주주의의 본질을 위축시켰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오세훈 법을 완화할 경우 정치인들이 검은돈을 암묵적으로 받았던 관행이 부활될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노 원내대표의 비극적 소식을 접한 직후 한 전직 지검장 출신 변호사는 “국회의원 특수활동비 폐지를 주장했던 노 원내대표가 스스로 정치자금 문제로 발목이 잡혔으니 얼마나 도덕적 부담이 컸겠느냐”면서도 “그분의 정신을 받들어서라도 정치자금법은 기준을 엄격하게 세우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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