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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날 먹어도 좋아”…영화보다 극적인 ‘세기의 생존’

중앙일보 2018.07.24 02:00
  
“기적인지 과학인지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우루과이 럭비팀 인육 먹으며 72일 버텨
우물 빠진 18개월 아기 58시간 만 구조

최근 태국에서 펼쳐진 각본 없는 드라마를 두고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깜깜한 동굴에 갇혔다 17일 만에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축구팀 소년 12명과 코치의 이야기인데요. 사흘간의 작전 끝에 임무를 완료한 태국 당국이 밝힌 소감이었습니다. 
 
그만큼 보고도 믿기 어려운 얼떨떨한 순간이었다는 거겠죠. 과학이 동원된 기적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시계추를 돌려보면 이런 ‘세기의 생존’ 사례가 꽤 된다는 사실, 알고 계시는가요. 감동과 희망을 전파했던 순간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볼까 하는데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에서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죽으면 나를 먹어도 좋다”
안데스 산맥 항공기 추락 사고 생존자들. [EPA=연합뉴스]

안데스 산맥 항공기 추락 사고 생존자들. [EPA=연합뉴스]

먼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때는 1972년 10월, 불길하게도 이날은 ‘13일의 금요일’ 이었습니다. 우루과이 럭비팀 등 45명을 태운 비행기가 칠레에 도착하기 전 안데스 산맥을 넘다 추락했죠. 
 
날개와 꼬리가 잘린 채 동체만 남은 비행기는 해발 약 4000m의 눈 덮인 산악지대에 고립됩니다. 영하 40도의 혹한에 공기마저 희박한 이곳에서 살아남은 33명의 처절한 생존투쟁이 시작됩니다. 구조 당국은 이들이 사망했을 것이라 판단하고 수색을 일찌감치 포기했죠. 시간이 지날수록 한 사람씩 쓰러져 최후의 생존자는 16명으로 줄었는데요. 죽음의 기로에 선 생존자들은 결국 극한의 선택까지 하게 됩니다. “눈 위에 있는 건 그냥 고깃덩어리야, 식량!” “난 안 할래. 차라리 죽겠어.” 논쟁 끝에 죽은 동료의 인육을 먹기로 한 건데요. 이들은 결국 “내가 죽으면 나를 먹어도 좋다”라는 말까지 하게 됩니다. 
안데스 산맥에서 항공기 생존자들이 사망한 동료의 무덤에 흙을 뿌리는 모습.[AP=연합뉴스]

안데스 산맥에서 항공기 생존자들이 사망한 동료의 무덤에 흙을 뿌리는 모습.[AP=연합뉴스]

생존자 중 한명인 로베르토 카네사는 훗날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I had to survive)』란 제목의 회고록에서 “살기 위해 친구를 먹어야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내 친구가 자신이 갖지 못한 생존 기회를 내게 주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는데요. 당시 교황청에서는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발표하기도 했죠.
 
장장 72일간의 사투를 끝내고 이들이 구조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건 로베르토와 난도 파라도가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열흘간 걷고 또 걸어 산을 내려가면서입니다. 칠레 쪽 마을에 도착해 이들은 산속에 14명이 살아있음을 알렸고, 즉각 출동한 헬기가 나머지 동료들을 구해낸 겁니다. 
당시 의대생이었던 로베르토는 현재 심장병 분야의 유명한 전문의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추락사고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일깨워줬답니다. 이들의 꿈 같은 생존은 1993년 영화 ‘얼라이브(Alive)’로도 제작됐습니다. 
 
전설의 33인, 희망을 쏘다 
 
“Mucha fuerza(꿋꿋이 버텨라).”  
 
태국 동굴 소년팀에 스페인어로 이런 메시지를 보낸 이가 있습니다. 마리오 세풀베다인데요. 그는 8년 전 칠레 산호세 광산에서 붕괴사고로 지하 700m(후에 구조 대기장소인 지하 622m 지점으로 이동)에 매몰됐다 생환한 33명의 광부 중 한 명입니다. 누구보다 소년들의 심경을 잘 알았겠죠.
지난 2010년 칠레 광산에 매몰됐다가 구출된 광부 마리오 세풀베다가 태국 동굴에 고립됐던 소년들과 코치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010년 칠레 광산에 매몰됐다가 구출된 광부 마리오 세풀베다가 태국 동굴에 고립됐던 소년들과 코치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AFP=연합뉴스]

당시 칠레 정부가 추정한 광부들의 생존 가능성은 2%였습니다. 마리오도 “우리는 죽음의 대기실에 있었다. 차분히 죽음을 기다렸다”고 회고했었죠. 이들을 구조하는 작업은 “700m 거리에 있는 모기를 맞히려고 총을 쏘는 것 같았다”는 게 지질학자 마카레나 발데스의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구조대가 지하로 내려보낸 줄에 “피신처에 있는 33명 모두 괜찮다”란 쪽지가 딸려 옵니다. 매몰 17일 만이었죠. 칠레의 한 작가는 광부로부터 절반의 권리를 얻어 이 쪽지를 지적재산권으로 등록까지 했다고 하네요. 
세바스찬 피녜라 전 칠레 대통령이 매몰된 광부들이 스페인어로 ’피신처에 있는 33명 모두 괜찮다“고 써서 지상으로 올려 보낸 쪽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세바스찬 피녜라 전 칠레 대통령이 매몰된 광부들이 스페인어로 ’피신처에 있는 33명 모두 괜찮다“고 써서 지상으로 올려 보낸 쪽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광부들을 구하기 위해 단단한 암반을 뚫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칠레의 기술력으로는 구조까지 최소 넉 달 이상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왔었죠. 69일 만에 모두 탈출에 성공한 건 전 세계에서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된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광부들을 한 명씩 태우고 올라온 지름 54㎝, 높이 2.5m, 중량 250㎏의 구조 캡슐 ‘피닉스(불사조)’는 칠레 해군이 미 항공우주국(나사)의 도움을 받아 고안했다고 하죠. 땅속에 있는 생존자들에겐 나사가 개발한 특수 음식도 제공됐는데요. 
 
일본 항공우주당국은 지하 습기에 강한 우주인용 속옷을 보냈다죠. 당국은 전화나 편지 등 통신수단으로 지하생활을 버틸 수 있게 애썼는데 한 광부는 이때 여자 친구로부터 프러포즈를 받기도 했답니다. 어둠에 익숙한 이들을 위해 구조작업은 밤중에 진행됐습니다. 
 
무엇보다 긍정의 힘으로 상황을 이겨낸 광부들이 기적을 일군 주인공일 텐데요. 특히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의 리더십에 전 세계가 찬사를 보냈죠. 태국 동굴에서 소년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축구코치처럼 말입니다. 그의 지휘 하에 기록, 유머, 의학 담당이 생길 정도였는데요. 10인이 열흘간 먹을 식량으로 17일을 버틴 탓에 평균 8㎏씩 체중이 줄었지만요. 
매몰 광부 중 한 명은 볼리비아인이었는데 오랜 시간 사이가 안 좋았던 양국은 마음을 합해 돕다 관계를 회복했단 뒷얘기도 들립니다.  
 
‘우주 미아’ 될 뻔한 3인의 생환 드라마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 못지않게 우주 탐사 역사상 길이 남을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70년 4월 쏘아 올려진 미 우주선 아폴로 13호의 생환 이야기인데요.
무사 귀환한 아폴로 13호 승무원들. [사진 미 항공우주국(NASA)]

무사 귀환한 아폴로 13호 승무원들. [사진 미 항공우주국(NASA)]

달에 근접했을 무렵 갑자기 우주선의 산소탱크가 터지죠. 우주 미아가 될 처지에 놓인 3명. 이때부터 달이 아닌 지구 귀환을 목표로 악전고투를 벌입니다.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당시 텍사스 휴스턴의 나사 지상 관제본부에 선장 짐 러벨이 무전으로 전한 말은 미국에서 관용어로 쓰일 만큼 유명합니다. 산소와 전력 부족, 궤도 수정의 문제 등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가장 심각한 건 이산화탄소가 쌓이는 것이었고, 그것은 우리를 죽일 수 있었다”는 게 짐 러벨의 말인데요. 이산화탄소를 걸러내기 위해선 직사각형의 깡통을 원형 장치에 끼워 넣어야 했는데 우주선에 있던 비닐봉지, 테이프, 양말, 골판지가 힘을 발휘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비행사들의 양말, 테이프, 골판지 등을 이용해 만든 이산화탄소 제거 필터인 ‘메일 박스(Mail Box)’. [사진 미 항공우주국(NASA)]

비행사들의 양말, 테이프, 골판지 등을 이용해 만든 이산화탄소 제거 필터인 ‘메일 박스(Mail Box)’. [사진 미 항공우주국(NASA)]

 지상 요원들은 이 도구만을 가지고 임시 에어 필터인 ‘메일 박스(Mail Box)’를 만들 수 있도록 우주인들에게 알려줬습니다. 이후에도 고비는 있었지만, 결국 우주선은 무사히 태평양 상에 떨어지게 되죠. 이 과정은 전부 생중계됐는데 영국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이를 숨죽여 본 시청자는 2860만명에 달했다고 하네요.
 
물웅덩이 빠졌다 구출된 두 살배기
7m 아래 우물에 빠졌던 제시카 맥클루어가 구조될 당시의 모습. [AP=연합뉴스]

7m 아래 우물에 빠졌던 제시카 맥클루어가 구조될 당시의 모습. [AP=연합뉴스]

1987년 10월 14일 미국 텍사스주 한 집의 뒷마당에서 놀던 18개월의 제시카 맥클루어는 지름 20㎝의 구멍에 빠져 약 7m 아래 작은 우물로 떨어졌는데요. 구출되기까지 58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제키사는 체중이 1.5㎏가량 빠졌다고 하죠. 
 
“미국인 모두가 제시카의 대부, 대모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을 지킨 국민을 상대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서른을 넘겨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제시카는 정작 당시 기억이 없다고 하네요.
 
 나이지리아 출신 20대 청년인 해리슨 오케네는 2013년 5월 대서양에서 선박이 전복돼 바다 밑에 갇혔지만, 에어포켓(선체 내 산소가 확보된 밀폐된 공간) 덕에 생존해 사흘 만에 구조됐죠. 탄산음료를 마시며 60시간을 버틴 것으로 전해집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임상심리학자인 제니퍼 와일드는 태국 동굴 소년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게 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칠레 광부는 “광산의 기억이 불로 지진 듯 지워지지 않는다”며 많이 자도 4시간이면 눈을 떠 결국 수면제에 의지한다고 토로하기도 했었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들의 생환 스토리가 끝까지 해피엔딩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갈 길이 아직 남았다는 얘기일 겁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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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연 황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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