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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 대사의 제자는 왜 왼팔을 잘랐을까

달마 대사의 제자는 왜 왼팔을 잘랐을까

중앙일보 2018.07.22 09:00
 
 
 
달마대사와 제자 혜가. 마흔 살이 넘어서 출가한 혜가는 왜 자신의 왼팔을 잘랐을까. 쑹산=백성호 기자

달마대사와 제자 혜가. 마흔 살이 넘어서 출가한 혜가는 왜 자신의 왼팔을 잘랐을까. 쑹산=백성호 기자

 
중국 허베이(河北)성의 쑹산(嵩山)은 높았다.  
봉우리만 72개나 된다.  
경운기를 타고 오솔길을 따라 산 기슭까지 갔다.  
가파른 돌계단을 헉헉거리며 1시간 동안 올랐다.  
1500여년 전, 달마는 이 길을 어찌 오르내렸을까.  
계단도 없던 시절, 밥은 또 어찌 해결했을까.  
기록에 따르면 달마대사가 며칠째 수행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산 아래 절에 내려가 밥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중국 선종의 2조 혜가가 달마에게 잘라 바친 팔의 상처를 양생시키며 조심을 했다는 쑹산 이조암 옆의 양비대. 넓은 자연석 바위가 있고 서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중앙포토]

중국 선종의 2조 혜가가 달마에게 잘라 바친 팔의 상처를 양생시키며 조심을 했다는 쑹산 이조암 옆의 양비대. 넓은 자연석 바위가 있고 서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중앙포토]

 
쑹산의 정상 바로 밑에 작은 바위 동굴이 있었다.  
그곳이 ‘달마굴’이다.  
어른 서너 명이 앉을 만한 좁은 공간.  
달마대사는 여기서 9년간 면벽 수행을 했다.  
안으로 들어섰다.  
캄캄했다.  
그게 달마대사가 헤쳐갔던 어둠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 달마는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리하여 내가 쑹산이 되고, 쑹산이 내가 되는 경지에 들었다.  
 
 
달마가 보낸 9년 수행의 치열함은 산 아래 소림사에 ‘전설’처럼 남아 있었다.  
달마대사가 마주 봤다는 동굴의 벽면 바윗돌이다.  
유리관 속에 보관된 바윗돌에는 달마의 얼굴과 수염, 좌선하는 모습의 윤곽이 보인다.  
오랜 세월, 꿈쩍도 않던 달마의 그림자가 바위에 물든 것이라고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놀라울 뿐이다.
 
달마대사는 중국 선불교의 ‘첫 씨앗’이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제자가 있어야만 중국땅에서 선의 맥을 이을 수 있음을 말이다.  
달마에게 필요한 건 ‘딱 한 명의 제자’였다.  
숱한 이들이 달마대사를 찾았으나 그는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땅에서 싹을 틔우려면 척박한 땅보다 강한 법맥, 제대로 된 제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달마대사가 9년 면벽 수행을 한 `달마굴`. 쑹산의 정상 바로 아래에 이 동굴이 있다. 쑹산=백성호 기자

달마대사가 9년 면벽 수행을 한 `달마굴`. 쑹산의 정상 바로 아래에 이 동굴이 있다. 쑹산=백성호 기자

 
어느 해 겨울이었다.  
마흔 살이나 된 신광이란 스님이 가파른 산을 타고 달마굴을 찾아왔다.  
그는 유교와 도교에 정통한 ‘고수’였으나, 삶의 밑바닥에 깔린 불안은 어쩌지 못했다.  
눈이 펄펄 날리는 동굴 밖에서 그는 꼬박 사흘 밤을 샜다.  
드디어 달마가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구하느냐?”

뭇 중생을 건져주십시오.”

만약 하늘에 붉은 눈이 내리면 법을 주겠다.”  

 
 
달마대사는 그렇게 거절했다.  
푸른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릴 일은 없었다. 
 
이에 신광은 칼을 뽑아 자신의 왼팔을 잘랐다.  
사방으로 피가 튀고, 주위의 눈밭이 붉게 물들었다.  
 
이 광경을 본 달마대사가 말했다.  
“부처나 보살도 몸으로 몸을 삼지 않는다. 목숨으로 목숨을 삼지 않으니 법을 구할만 하다.”  
 
소림사 안의 입설정에 서 있는 내 달마 대사와 혜가의 입상. 혜가는 소매 안으로 팔을 집어 넣고 있다. 아무리 살펴봐도 왼팔은 보이지 않았다. 쑹산=백성호 기자

소림사 안의 입설정에 서 있는 내 달마 대사와 혜가의 입상. 혜가는 소매 안으로 팔을 집어 넣고 있다. 아무리 살펴봐도 왼팔은 보이지 않았다. 쑹산=백성호 기자

 
깨달음의 걸림돌은 나의 몸과 마음이다. 그걸 비워야만 온 우주의 몸과 마음, 본래 면목이 드러난다. 달마는 팔을 자른 신광의 ‘무모함’에서 ‘비움의 싹’을 본 것이다. 그래서 신광에게 법명을 내렸다. 그가 바로 2조 혜가다.
 
 
소림사 안에는 입설정(立雪亭)이 세워져 있었다.  
눈 속에 서있던 혜가선사를 기리는 곳이다.  
전각 안에는 달마대사 곁에 소매 사이로 팔을 넣은 혜가대사의 입상이 있다.  
가까이 갔다. 아무리 봐도 왼팔은 보이지 않았다.  
 
 
혜가는 달마의 제자가 됐다.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아무리 수행을 해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혜가는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고, 뒤늦게 머리 깎고 출가해 달마의 제자가 됐다.  
게다가 세월은 쏜살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공부에는, 수행에는 진전이 별로 없었다.  
불안한 혜가가 다시 달마대사를 찾아가 물었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혜가)

불안한 마음을 내놓아라.” (달마)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혜가)

네 불안한 마음이 모두 없어졌느니라. 너는 보는가.” (달마)

 
 
달마대사의 유명한 안심(安心)법문이다.  
짓고 부수는 내 안의 숱한 마음이 본래 없는 것임을 알라는 얘기다.  
그래서 마음이 없어진 자리, 거길 보라는 뜻이다.  
빈 채로 차있고, 찬 채로 비어있는 나의 본질, 그 삼라만상의 바탕으로 들라는 의미다.
 
비단 혜가 뿐만 아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온갖 문제와 마주치며 예민해진다. 불안해진다.
그런 ‘예민’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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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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