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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셔버려도 다시 집 짓는 치열함, 거미 너 참 대단하구나

중앙일보 2018.07.22 07:01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30)
오늘 동호회 카페 회원이 얘기하기를 어느 라디오 아침 방송에서 “일에 대한 열정이 더위보다 더 뜨거우면 지금의 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하더란다.
 
푹푹 찐다는 말이 딱 맞는 요즘이다. 더워도 너무 더운데 습도까지 높아 불쾌지수가 짜증을 부른다. 아파트에선 에어컨만 틀어놓으면 잘 넘길 수 있다지만 단독주택은 해충으로 인해 여름이 힘들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해충으로선 여름 한 철 장사다. 그 열정이 사뭇 더위보다 더 뜨거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이겨 내질 못한다.


모기 거미 노래기로선 여름 한 철 ‘장사’
경북 경산시 하양읍 청천리 한 건물 외등에 깔따구를 비롯한 날아다니는 위생곤충(인간에게 직ㆍ간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유해곤충)이 떼를 지어 모여들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경산시 하양읍 청천리 한 건물 외등에 깔따구를 비롯한 날아다니는 위생곤충(인간에게 직ㆍ간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유해곤충)이 떼를 지어 모여들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모기 한 마리 때문에 밤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 전쟁을 치렀다. 아무리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어 온방에 약을 뿌리고는 도로 누웠다. 이번엔 약 냄새에 잠이 오지 않아 어스름한 새벽에 밭에 나가 풀을 뽑고 있으려니 깔따구(모기같이 생겼는데 모기보다 더 센 곤충)가 떼로 달려든다. 머리엔 망을 써서 피한다고 하지만 옷도 뚫고 공격한다.
 
모기보다 더 가렵고 아프다. 많이 물리면 온몸에 열이 올라 한참을 쉬어야 한다. 모기도 깔따구도 여름 한 철 야간 근무조다. 열심히 일하다가 해가 뜨면 어디로 퇴근하는지 사라진다.
 
눈을 돌리니 이번엔 거미줄이 난리다. 아침에 문을 열면 거미줄을 걷는 게 일과다. 거미줄에 목맨다는 속담처럼 별로 실속이 없지만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날마다 훼방을 하며 철거를 해도 묵묵히 제 할 일에 열중하는 거미가 어느 땐 높이 보인다.
 
경기도 연천 임진강변에서 장마속 한땀한땀 엮어낸 거미줄. 조문규

경기도 연천 임진강변에서 장마속 한땀한땀 엮어낸 거미줄. 조문규

 
이때쯤엔 노래기라는 곤충도 떼로 습한 땅을 뚫고 습격해 오는데 비 온 다음 날이면 출정 명령을 받은 부대처럼 까맣게 몰려나와 덩치 큰 사람도 기겁한다. 온갖 약을 독하게 뿌리지만 죽을 놈은 죽고 어디 숨어 있다가 나오는 건지 무리 지어 다시 쳐들어오는 그 열정이 경이롭다. 벌레지만 고약한 냄새를 풍겨 제 몸을 보호하니 닭도 안 쪼아 먹는 곤충이다. 천적이 없지만 햇살에 나오면 얼마 후 수명을 다하는데 인간은 그 며칠을 참을 수 없다.
 
뜨거운 여름엔 쌀자루에도 열정적인 쌀벌레가 나방이 되어 날아다닌다. 참 신기하다. 꽁꽁 싸매고 묶어놓은 자루에 어느 틈으로 들어가 벌써 알을 낳고 쌀도 다 건드려 놓았다. 아직 벌레가 일지 않은 쌀을 밀봉 통에 옮겨 담고 한 됫박쯤 되는 벌레 생긴 쌀을 햇살에 널어놓으니 벌레가 빌빌거리며 기어 나온다.
 
이 풍경을 보는 여섯 살 손자의 한마디가 듣는 이를 기함하게 한다. “할머니 그럼 우리가 벌레에게 진 거예요? 벌레가 일등으로 먹고 우리는 이등으로 먹는 거예요?” 헉! 더워서 짜증이 확 올라오는데 그 한마디가 웃음과 함께 작은 반전을 준다.
 
‘벌레보다 못한 인간’은 좀 그렇다. 그래도 사람인데 밥맛도 없는 더운 계절에 벌레 먹고 난 맛없는 것을 먹는 궁상은 떨지 않기로 했다. 도로 거두어 개밥 용으로 봉지에 담았다. 부지런한 쌀벌레 덕분에 개는 한동안 쌀밥을 먹게 생겼다.


치열하게 사는 곤충 보며 살아가는 힘을 배워
폭염의 날씨에 농가의 농민이 장렬한 태양아래서 수확한 고추를 말리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폭염의 날씨에 농가의 농민이 장렬한 태양아래서 수확한 고추를 말리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렇게 폭염이 지속하는 여름이면 농작물에도 온갖 해충이 창궐하고 농부들은 밤낮없이 해충과 전쟁을 치르느라 얼굴이 새까맣게 탄다. 직업 중에 가장 숭고한 일이 농사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휴가를 가는 뜨거운 여름에 그들은 열정적으로 태양과 싸우며 밭을 지킨다.
 
그리고 이 뜨거운 날에 도로 위에서 아스팔트 공사하는 사람들도 경이롭다. 지난날 20년이란 시간을 뜨거운 불을 끌어안고 네온사인을 만들며 참 열심히 일했다. 열정을 다해 일했기에 지금의 소박한 행복이 온 거라 나 스스로 ‘엄지 척’을 해준다. 이롭든 해롭든 여름이면 치열하게 사는 곤충을 보면서 짧은 운명의 순간을 살아내는 힘을 배워본다.
 
대단한 폭염이다. 가난한 사람은 대한·소한 잘 넘기면 얼어 죽지 않는다고 하지만 7월 여름도 잘 넘겨야 살아남는다고 한다. 이왕 여름다운 여름, 날씨 신기록을 세워보고 그렇게 온갖 벌레들과 싸우고 뜨거웠다고 나도 소소한 일기를 기록해 놓아야겠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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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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