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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킹콩을 들다' 그곳…순창 역도 부활 으랏차차

중앙일보 2018.07.22 00:01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 선수들이 지난 10일 순창고 역도장에서 알통을 자랑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대혁(중 1), 지진석(중 1), 유동현(중 2), 이종언(중 3), 임병진(중 3), 이경록(고 2), 박성민(고 2), 유찬규(고 2)군. 순창=김준희 기자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 선수들이 지난 10일 순창고 역도장에서 알통을 자랑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대혁(중 1), 지진석(중 1), 유동현(중 2), 이종언(중 3), 임병진(중 3), 이경록(고 2), 박성민(고 2), 유찬규(고 2)군. 순창=김준희 기자

몸무게 2배 넘는 바벨 드는 소년 역사(力士)들  
 
웃통을 벗은 남학생들이 '무거운 쇳덩이'를 번쩍번쩍 들어 올린다. 얼굴은 앳되지만, 하나같이 어깨가 떡 벌어졌다. 

2000년 전국체전 금 14개 싹쓸이
순창고 역도부 실화 각색한 영화
당시 흥행몰이로 역도 '반짝 관심'

18년 지나도 여전히 비인기 종목
순창북중 2명, 올해 소년체전 3관왕
윤상윤 감독, 27년째 역도인 배출

 
지난 10일 오후 3시 전북 순창군 순창읍 순창고등학교 역도장. 같은 재단(옥천학원)인 순창고와 순창북중 역도부 선수 8명이 방과 후에 역도장에 모여 묵묵히 바벨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다음 달 8일 충남 서천에서 열리는 '제4회 한국중고역도선수권대회'를 앞두고서다.   
 
영화 '킹콩을 들다' 포스터. [사진 영화사 숲]
영화 '킹콩을 들다' 포스터. [사진 영화사 숲]
영화 '킹콩을 들다' 스틸 사진. [사진 영화사 숲]
영화 '킹콩을 들다' 스틸 사진. [사진 영화사 숲]
영화 '킹콩을 들다' 스틸 사진. [사진 영화사 숲]
영화 '킹콩을 들다' 스틸 사진. [사진 영화사 숲]
순창고는 지난 2009년 개봉한 영화 '킹콩을 들다'(감독 박건용)의 배경이 된 곳이다. '킹콩…'은 시골 중학교에 부임한 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 이지봉 코치가 어려운 환경의 소녀들을 모아 역도부를 만든 뒤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그린 성장 드라마다. 관객 126만 명의 심금을 울린 이 영화는 순창고 역도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화제가 됐다.  
 
올해 소년체전 남중부 62kg급에서 3관왕(인상 100kg, 용상 121kg, 합계 221kg)에 오른 유동현(순창북중 2학년)군이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올해 소년체전 남중부 62kg급에서 3관왕(인상 100kg, 용상 121kg, 합계 221kg)에 오른 유동현(순창북중 2학년)군이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올해 소년체전 남중부 69kg급에서 3관왕(인상 111kg, 용상 131kg, 합계 242kg)에 오른 임병진(순창북중 3학년)군이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올해 소년체전 남중부 69kg급에서 3관왕(인상 111kg, 용상 131kg, 합계 242kg)에 오른 임병진(순창북중 3학년)군이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영화에 영감 준 순창고 역도부 감동 실화 
 
순창고는 2000년 부산에서 열린 제81회 전국체전 여자 고등부 역도 경기에 선수 5명이 출전해 총 15개의 금메달 중 14개를 휩쓸었다. 금메달 1개를 놓친 것도 주장 손지영(36)씨가 인상에서 같은 무게(82.5㎏)를 들고도 상대보다 체중이 200g 더 나가서다.    
 
배우 이범수가 열연한 이지봉 코치는 이제는 고인이 된 정인영 교사와 윤상윤 감독, 김용철(현 전남 보성군청 역도팀 감독) 코치 등 세 지도자를 합친 캐릭터다. 당시 순창여중에서 체육을 가르치던 정 교사가 '될성부른 떡잎'들을 뽑아 순창고로 보냈고, 윤 감독과 김 코치가 재목으로 키워내 '전국체전 사상 단일 팀 최다 금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나 정 교사는 체전이 끝난 이듬해인 2001년 8월 뇌출혈로 쓰러져 4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를 지도하는 윤상윤(58) 감독(가운데)이 지난달 충북에서 열린 소년체전 남중부 역도 경기에서 각각 3관왕에 오른 유동현(왼쪽)군과 임병진(오른쪽)군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순창북중]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를 지도하는 윤상윤(58) 감독(가운데)이 지난달 충북에서 열린 소년체전 남중부 역도 경기에서 각각 3관왕에 오른 유동현(왼쪽)군과 임병진(오른쪽)군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순창북중]

역도부원 30명→8명…女선수는 0명
 
당시 영화가 흥행하면서 역도도 '반짝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비인기 종목 신세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순창북중은 지난달 충북에서 끝난 소년체전에서 남중부 69㎏급 임병진(15·중 3학년)군과 62㎏급 유동현(14·중 2학년)군이 인상·용상·합계에서 각각 3관왕에 올랐다. 선수가 고작 5명인 시골 중학교 역도부가 파란을 일으킨 셈이다. 여기엔 18년 전 부산 전국체전에서 기적을 일군 윤상윤(58) 감독의 공이 크다.  
 
1992년 순창북중 역도부를 창단한 윤 감독은 올해까지 27년째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를 이끌고 있다. 역도 선수 출신인 윤 감독은 베이징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배영(현 역도 국가대표팀 코치)과 지난해 세계선수권 우승자 서희엽 등 수백 명의 선수와 지도자를 배출했다. 윤 감독은 "전성기엔 중·고교 통틀어 역도부원이 30명이 넘었지만 현재는 순창북중 5명, 순창고 3명 등 8명뿐"이라며 "한때 여자 역도가 강했지만, 지난해 이후 여자 선수 명맥이 끊겼다"고 했다.

 
윤상윤(58) 감독이 순창고 역도장에서 역대 전국체전 및 소년체전 메달 현황판을 가리키고 있다. 영화 '킹콩을 들다'의 모티브가 된 2000년 부산 전국체전 기록(금 14개, 은 1개)도 적혀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윤상윤(58) 감독이 순창고 역도장에서 역대 전국체전 및 소년체전 메달 현황판을 가리키고 있다. 영화 '킹콩을 들다'의 모티브가 된 2000년 부산 전국체전 기록(금 14개, 은 1개)도 적혀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바벨 든 지 1년 만에 소년체전 3관왕  
  
올해 소년체전 정상에 오른 임병진·유동현군에 대해 그는 "둘 다 완전히 시합용"이라며 치켜세웠다. 동현군은 애초부터 힘이 남달랐다고 한다. 순창중앙초 6학년 때 순창교육장배 역도대회에서 우승했다. 
 
윤 감독은 "당시 동현이는 힘이 월등히 좋았다. '대선수가 되겠구나' 싶어 역도를 시키려고 했는데 '죽어도 안 한다'고 버텼다"고 했다. 동현군은 순창북중 입학 후 윤 감독의 설득으로 지난해 5월에야 바벨을 들기 시작했다. 윤 감독은 "동현이는 역도를 본격적으로 한 지 1년 만에 나간 첫 전국 대회에서 3관왕이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순창고 역도부 박성무(38·왼쪽) 코치와 순창북중 이시열(38) 코치가 바벨에 쓰이는 철제 원반을 들고 나란히 서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순창고 역도부 박성무(38·왼쪽) 코치와 순창북중 이시열(38) 코치가 바벨에 쓰이는 철제 원반을 들고 나란히 서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순창고 역도부 박성무(38·왼쪽) 코치와 순창북중 이시열(38) 코치가 이배영·서희엽·유동주 등 순창고가 배출한 역도 스타들의 시합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순창고 역도부 박성무(38·왼쪽) 코치와 순창북중 이시열(38) 코치가 이배영·서희엽·유동주 등 순창고가 배출한 역도 스타들의 시합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윤상윤 감독이 역도장에 있는 냉장고 문을 여니 장어즙 팩이 가득하다. 그는 "이선일 순창역도연맹 회장이 줬다. 역도부원들은 장어즙을 1년 내내 먹는다"고 했다. 순창=김준희 기자
윤상윤 감독이 역도장에 있는 냉장고 문을 여니 장어즙 팩이 가득하다. 그는 "이선일 순창역도연맹 회장이 줬다. 역도부원들은 장어즙을 1년 내내 먹는다"고 했다. 순창=김준희 기자
27년째 역도 지도자 외길…제자·아들도 뒤따라 
 
지난해 소년체전 선발전에서 실격당한 병진군도 1년 만에 같은 대회에서 지난해 3관왕 선수를 꺾고 우승했다. 
 
현재 순창북중 역도부 이시열(38) 코치와 순창고 박성무(38) 코치도 윤 감독의 제자들이다. 두 코치는 순창고 동기다. 이 코치는 고등학교 1, 3학년 때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박 코치는 실업팀 '하이트맥주' 출신이다.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 선수들이 윤상윤(맨 오른쪽) 감독과 박성무(가운데)·이시열(맨 왼쪽) 코치와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 선수들이 윤상윤(맨 오른쪽) 감독과 박성무(가운데)·이시열(맨 왼쪽) 코치와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목 밑이 시커멓게 멍든 '인간 기중기', 왜? 
 
윤 감독의 장남 범석(31)씨도 역도 국가대표 출신이다. 현재 전주용소중 역도부 코치를 하며 아버지 뒤를 이어 지도자 길을 걷고 있다. 윤 감독은 "내년 소년체전에는 부자(父子)가 양쪽에서 3관왕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임병진·유동현군은 목 아래 부위가 검게 멍들어 있었다. 매일 자기 몸무게의 2배가 넘는 바벨을 들어 올리느라 생긴 '훈장' 같은 상처다. 두 선수는 역도의 매력으로 "기록을 깨뜨리는 맛"이라고 입을 모았다. 병진군은 "'이게 들리나' 하던 기구를 들면 기분이 짜릿하고 신기하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인상 25㎏, 용상 35㎏을 들던 병진군은 지금은 인상 115㎏, 용상 131㎏을 든다.  

 
임병진(순창북중 3학년)군이 지난달 소년체전 남중부 69kg급에서 3관왕에 오른 뒤 윤상윤(왼쪽 넷째) 감독과 류종선(오른쪽 셋째) 옥천학원 이사장, 교육청 관계자 등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윤 감독은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가 지금껏 명성을 유지해 온 것은 류종선 옥천학원 이사장의 관심과 지원 덕분"이라고 말했다. [사진 순창북중]

임병진(순창북중 3학년)군이 지난달 소년체전 남중부 69kg급에서 3관왕에 오른 뒤 윤상윤(왼쪽 넷째) 감독과 류종선(오른쪽 셋째) 옥천학원 이사장, 교육청 관계자 등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윤 감독은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가 지금껏 명성을 유지해 온 것은 류종선 옥천학원 이사장의 관심과 지원 덕분"이라고 말했다. [사진 순창북중]

역도를 하면 키 작아진다? "근거 없는 선입견" 
 
동현군은 "병진이 형 기록을 잡으면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두 선수도 처음엔 역도를 싫어했다고 한다. 친구들과 같이 놀 수 없어서다. 또래들은 여전히 같은 이유로 역도를 꺼린다. 
 
일부 부모는 "역도를 하면 다칠 수 있고, 키가 작아진다"며 말린다. 이에 병진군은 "선입견이다. 내가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역도를 시작할 때는 키가 1m49㎝였는데 지금은 1m70㎝"라고 했다.
 
순창북중 1학년 지진석군이 원반이 없는 빈 바를 가지고 역도 연습을 하고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순창북중 1학년 지진석군이 원반이 없는 빈 바를 가지고 역도 연습을 하고 있다. 순창=김준희 기자

'고추'가 유명한 순창이라지만 역도부까지는 좀…
 
병진군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를 자주 본다. "세계적인 역도 스타들의 시합이나 훈련 장면을 따라 하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고민은 없을까. 병진군은 "요즘은 스포츠 뉴스에서도 역도 대회는 잘 안 다룬다. 작은 대회엔 관중도 거의 없다"고 아쉬워했다. 동현군은 사춘기 소년답게 "(순창고) 역도장은 고추밭이다. 남자밖에 없다. 여자와 같이 운동하는 학교가 부럽다"고 했다.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 선수들이 지난 10일 순창고 역도장에서 근육을 자랑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대혁(중 1), 지진석(중 1), 유동현(중 2), 이종언(중 3), 임병진(중 3), 이경록(고 2), 박성민(고 2), 유찬규(고 2)군. 순창=김준희 기자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 선수들이 지난 10일 순창고 역도장에서 근육을 자랑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대혁(중 1), 지진석(중 1), 유동현(중 2), 이종언(중 3), 임병진(중 3), 이경록(고 2), 박성민(고 2), 유찬규(고 2)군. 순창=김준희 기자

"보기엔 뼈 부러질 것 같지만 도전해 볼래요" 
 
이들의 꿈은 '올림픽 금메달'이다. 그 이유는 조금씩 달랐다. 병진군은 "멋있는 집을 사서 예쁜 아내와 결혼해 살고 싶다"고 했다. 동현군은 "연금 받으면서 수영장 있는 집을 사고 싶다"고 했다.

 
덩치가 큰 선수들 사이로 마른 체격의 두 남학생이 원반이 없는 바(봉)와 씨름했다. 역도부 막내 지진석군과 김대혁(이상 13·순창북중 1학년)군이다. 이날 처음 역도장을 찾은 순창중앙초 6학년 박찬익(12)군이 심란한 표정으로 형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봤다. 박군은 "(역도를) 하면 뼈가 부러질 것 같다. 그래도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윤 감독은 "선수 확보가 가장 어렵다"면서도 "처음엔 힘들어 하다가도 선수들이 기록이 늘고 흥미를 느끼면 하지 말라고 해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순창=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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