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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상대는 피곤해" 협상은 구관이 명관

중앙일보 2018.07.21 17:00
[더,오래] 류재언의 실전협상스쿨(21)
직장생활을 할 때 유사한 내용의 보고서를 누가 보고하느냐에 따라 상사의 반응이 달라지는 경우를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중앙포토]

직장생활을 할 때 유사한 내용의 보고서를 누가 보고하느냐에 따라 상사의 반응이 달라지는 경우를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중앙포토]

 
송 대표는 김 상무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기분이 언짢아진다. 반면 권 상무가 들어설 땐 옅은 미소가 번진다. 권 상무에 대해 신뢰가 두터운 송 대표는 권 상무가 하는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인부터 한다. 반면 김 상무가 보고하는 동안 송 대표는 인상을 찌푸리며 듣다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 유사한 내용의 보고서를 누가 보고하느냐에 따라 상사의 반응이 달라지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메신저 효과(Messenger Effect)’라 한다.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인지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에 대한 신뢰와 호감이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협상에선 메시지보다 메신저가 더 큰 영향력
협상에서도 메시지보다 메신저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즉, 아무리 완벽한 협상 전략을 짜고 협상 스킬을 구비해도 상대가 당신을 전혀 신뢰하지 않으면 협상은 결렬된다. 반대로 협상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더라도 상대가 오랫동안 당신에게 호감을 가져왔고 깊이 신뢰한다면 협상을 하지 않고도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와 호감과 같은 인간적인 요인이다. [사진 Freepik]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와 호감과 같은 인간적인 요인이다. [사진 Freepik]

 
많은 사람이 성공적인 협상을 이끄는 결정적인 요인과 관련해 전문 지식이나 계약 내용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와튼스쿨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는 협상에 있어 성공적인 합의를 이끈 결정적인 계기가 전문 지식이나 계약 내용과 관련되는 경우는 불과 8%밖에 되지 않으며, 협상 절차가 가지는 중요도가 37%에 달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신뢰, 호감, 감정 등이 성공적인 합의를 이끄는 데 무려 55%의 기여를 한다고 밝혔다.
 
결국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와 호감과 같은 인간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기업들이 새로운 업체와 거래를 꺼리는 이유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세일즈 상황을 제외하고) 새로운 업체와 거래를 시작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새로운 업체와 거래를 시작하려면 내부적으로 거쳐야 하는 결재 과정이 복잡해 기업 담당자가 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은 상대와 거래와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피곤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은 상대와의 협상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상대가 제시한 정보가 맞는지, 상대가 지속적인 거래가 가능한 업체인지, 상대가 우리 측의 요구사항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매 순간 의심의 눈초리로 검증하고 되묻고 확인하는 과정이 계속된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기업의 담당자는 상당한 긴장감과 피로를 느끼게 되고, 결국 거래의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은 상대와의 협상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은 상대와의 협상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반면 오랜 시간 동안 신뢰를 쌓아온 상대방과 협상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현저히 적고 시간도 적게 걸린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서로가 신뢰를 중요시한다는 사실에 공감하면 협상은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된다.
 
불신은 협상 비용을 증가시킨다.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드는 시간, 비용, 에너지, 인력 낭비는 생각보다 크고 이 과정에서 협상 담당자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면 지속적인 신뢰관계를 형성해온 사람과의 협상은 이런 비용을 현저히 줄이고 서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는 협상 결과의 만족도와 직결된다. 그래서 우리는 오랜 기간 거래를 지속해와 신뢰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를 선호하고 이러한 상대방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말단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골드만삭스의 사장까지 오른 도키 다이스케는 저서 『왜 나는 영업부터 배웠는가』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영업 일선의 세일즈맨들에게 고객과 자신의 신뢰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그래프를 만들어 신뢰도가 몇 단계에 있는지 확인해볼 것을 주문한다.
 
5단계 신뢰 관계도. [출처 도키 다이스케, 김윤수 옮김 『 왜 나는 영업부터 배웠는가 』]

5단계 신뢰 관계도. [출처 도키 다이스케, 김윤수 옮김 『 왜 나는 영업부터 배웠는가 』]



고객과의 신뢰도 높아야 비즈니스 성사 가능성 커
4 이상의 신뢰도가 쌓이지 않았음에도 성급하게 비즈니스를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출처 도키 다이스케, 김윤수 옮김 『왜 나는 영업부터 배웠는가』]

4 이상의 신뢰도가 쌓이지 않았음에도 성급하게 비즈니스를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출처 도키 다이스케, 김윤수 옮김 『왜 나는 영업부터 배웠는가』]

 
도키 다이스케에 따르면 5단계로 구성된 이 그래프에서 본인과 상대의 신뢰도가 적어도 4 이상이어야 비즈니스가 성사될 수 있다. 4 이상의 신뢰도가 쌓이지 않았음에도 성급하게 비즈니스를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신뢰 쌓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퇴근 후 고객 회사를 만나 저녁을 먹고, 또 주말에 골프를 치고, 명절 때 선물도 보내는 일련의 행위는 1~3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신뢰도를 4~5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라 볼 수 있다.
 
독자 여러분도 자신의 비즈니스 인맥 또는 사적 인간관계가 위의 신뢰 관계도 상에서 어느 영역에 분포돼 있는지 따져보기 바란다. 1~5단계까지 여러 유형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비즈니스 관점에서 또는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 것이 도움될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글로벌협상연구소장 류재언 변호사 yoolbonla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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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언 류재언 글로벌협상연구소장, 법무법인 율본 변호사 필진

[류재언의 실전협상스쿨] 은퇴 이후엔 생활 전역에서 당혹스런 일들에 부딪힌다. 매 순간 일어나는 사건마다 협상을 잘 해내야 조화롭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상황에 대해 비즈니스 협상 전문가가 들려주는 성공 전략을 시리즈로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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