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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배움의 끈…대구피란학교 선생님을 찾습니다

중앙일보 2018.07.21 13: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27)
'서울피난 대구연합중학교' 2학년 3반 단체사진. [사진제공 대구교육박물관]

'서울피난 대구연합중학교' 2학년 3반 단체사진. [사진제공 대구교육박물관]

 
“처음에는 화장터 근처 언덕 큰 나무에 칠판을 걸어 놓고 공부했습니다.”
안병영(76) 전 교육부총리의 6·25 전쟁 당시 체험이다. 그는 당시 서울에서 초등학교 4학년을 다니다가 대구로 피란 와 있었다. 안 전 부총리가 증언한 노천 교실은 ‘서울 피란 대구성남국민학교’의 모습이다.
 
전쟁 속 판자촌에 세워진 ‘대구피란학교’ 
전쟁은 참혹하게 벌어지고 있었지만 학생들은 피란지에서 공부를 이어간 것이다. 전쟁 속에서 배움의 끈을 연결한 ‘대구피란학교’ 이야기다. 지난달 개관한 대구교육박물관은 첫 번째 기획전으로 ‘한국전쟁, 대구피란학교-전쟁 속의 아이들’을 마련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재현된 판자촌 학교가 보인다. 교실 앞에 깡통을 놓고 쪼그려 앉은 아이와 가로등 불빛 아래 신문을 돌리는 학생 조각상이 당시의 고단함을 말해 준다.
 
전시장에 판잣집 모습으로 재현한 '서울피난 대구연합중학교'. [사진 송의호]

전시장에 판잣집 모습으로 재현한 '서울피난 대구연합중학교'. [사진 송의호]

 
6‧25전쟁이 나자 대구로 피란민 40여 만이 모여들었다. 구호물자는 넉넉지 않았다. 피란 학생은 수업이 문제였다. 당시 대구는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군대가 학교 건물을 사용하면서 교육 공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피란 학생을 다 수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노천 수업이 등장한 배경이다. 칠판을 걸 수 있는 나무가 있고 아이들이 앉을 공간만 확보되면 그곳이 바로 학교요 교실이 됐다.
 
중등 과정도 있었다. 1951년 9월 ‘서울 피란 대구연합중학교’가 대구 중구 남산동 일본 육군 관사 자리에 문을 열었다. 임시 교실은 판자로 얼기설기 지어져 여름에는 푹푹 찌고 겨울에는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서울피난 대구연합중학교'의 마크. [사진 송의호]

'서울피난 대구연합중학교'의 마크. [사진 송의호]

 
1952년 피란 중학생이던 마종기(79) 시인은 당시 ‘우리학교’란 시를 남겼다. ‘우리학교는 서울 피난 학교다/쓰러져 가는 하꼬방 집이다/겨울엔 창문으로 무섭고 찬 바람이 불었다/그렇다/배움에 끓는 학도들은/연상 손을 호-호 불면서 공부를 했다/앞날의 희망을 보고…(하략)’
 
마종기는 아버지인 아동문학가 마해송을 따라 대구로 내려왔다. ‘서울 피란 대구연합중학교’는 13개 학급 학생 2425명(중학부 1383명, 고등부 1042명)으로 기록돼 있다. 학생들은 간단한 면접을 거쳤다. “너 서울 어느 학교 다녔어? 국어 선생님 이름이 뭐였지?” 이런 질문에 답을 하면 입학할 수 있었다.
 
교사는 서울에서 교편을 잡다가 피란 온 51명이었다고 한다. 마 시인은 당시 한 선생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키 크고 얼굴이 검던 김소영 선생님인데…세계 명작 소설을 이야기하실 때면 혼을 쏙 뺄 정도로 재미있었다.” 가수 현미도 이 학교에 다녔다.
 
가수 현미도 이 학교 다녀 
조지훈 시인은 '서울피난 대구연합중고교' 의 교가를 작사하고 마종기 시인은 당시를 시로 남겼다. [사진 송의호]

조지훈 시인은 '서울피난 대구연합중고교' 의 교가를 작사하고 마종기 시인은 당시를 시로 남겼다. [사진 송의호]

 
교가도 만들어졌다. 대구에 머물던 조지훈 시인이 노랫말을 지었다. ‘팔공산 높은 봉은 백두산 줄기/삼각산 큰 기상을 여기서 본다/자유 찾아 남쪽 하늘 먼길에 모여…(하략)’
 
뉴욕타임스는 1951년 한국의 전쟁 속 학구열을 세계에 알렸다. ‘학생들은 교외 어떤 산 위에서, 옛 일본 신사에서, 개천에서, 그리고 산골짜기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남한의 어디를 가든지….’
 
뉴욕타임스는 전쟁 속 한국의 학구열을 주목해 기사로 소개했다. [사진 송의호]

뉴욕타임스는 전쟁 속 한국의 학구열을 주목해 기사로 소개했다. [사진 송의호]

 
서울 피란 대구연합중학교는 전쟁이 끝난 1954년 3월 문을 닫았다. 전쟁 속에서도 교육은 계속돼야 한다는 신념이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이다. 내전으로 이국을 떠도는 세계의 난민들이 귀 기울일 만한 우리 현대사의 한 단면이다.
 
대구교육박물관은 당시 대구연합중학교에 근무한 선생님과 관련한 연락처나 자료를 지금도 수소문하고 있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 중앙일보 객원기자 yeeh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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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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